영화 레벤느망 리뷰 몸으로 쓴 저항

선택할 권리를 위한 투쟁

by 필름과 펜

영화 레벤느망 (Film #82)

common (14).jpg 안 역의 "아나마리아 바토로메이"

아니 에르노의 문학 세계와 영화화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삶을 소재 삼아 쓰는 작가다."레벤느망"은 에르노가 1963년 실제로 경험했던 불법 낙태의 기록이다. 출판은 2000년에 이루어졌으나, 사건은 40년 가까이 그녀의 몸속에 새겨진 채로 있었다.


감독 "오드리 디완"은 이 고통의 기억을 화면으로 불러내면서, 개인의 사건을 사회적 고발로 확장시켰다. 베니스 황금사자상은 그 성취에 대한 국제적 인정이었다.


1960년대 프랑스, 그리고 금지된 선택

프랑스에서 낙태가 합법화된 것은 1975년이다. 그전까지 낙태는 중범죄였다. 시술자도, 시술을 받은 여성도 투옥될 수 있었다. 이는 프랑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한국의 경우 낙태죄는 1953년 형법 제정 이래 유지되다가 2021년에야 비로소 비범죄화되었다. 법이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구조는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반복되었다.


1960년대 프랑스는 겉으로는 현대화의 물결 속에 있었지만, 여성의 신체에 관한 한 여전히 봉건적이었다. 피임에 대한 정보조차 공식적으로 차단되었고, 미혼 여성의 임신은 도덕적 낙인이자 사회적 추방의 사유가 되었다.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은 지하 네트워크에 의존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생명을 잃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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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앙굴렘의 대학가. 안은 문학을 공부하는 총명한 프랑스 여대생이다. 부모님이 작은 바(Bar)를 운영하며 어렵게 뒷바라지하는 이 가족에게 안의 출세는 유일한 희망이다.


하지만 임신을 발견한 순간, 안의 세계는 급격히 수축하기 시작한다. 의사들은 낙태 요청을 거부하거나 오히려 임신을 유지시키는 약을 처방하고, 친구들과 연인은 외면하거나 자신의 안위를 먼저 챙긴다.


안은 혼자 400프랑을 마련해 비밀 시술자를 수소문하고, 두 차례의 위험한 시술 끝에 출혈과 통증 속에 기숙사로 돌아온다. 기적처럼 유산이 되어 감옥행을 면한 안은 결국 졸업 시험을 치르며 자신의 삶을 되찾는다. 그것은 해피엔딩이 아니라, 살아남음의 기록이었다...


주제 분석: 여성의 몸은 누구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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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 동정을 구하지 않는다. 그녀는 두렵고, 외롭고, 때로 무너지지만 멈추지 않는다. 영화는 그 두려움을 가감 없이 담아내면서도 그녀를 수동적 희생자로 놓아두지 않는다. 클로즈업으로 포착된 안의 얼굴, 긴장된 어깨, 굳어버린 손. 오드리 디완은 안의 내면을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의 몸이 직접 말하게 한다.


주목할 것은 안이 끊임없이 능동적으로 움직인다는 점이다. 정보를 수집하고, 돈을 마련하고, 시술자를 찾아가고, 결과를 감당한다. 영화는 그 과정을 영웅서사로 포장하지 않고, 부당한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의지를 냉정하게 기록한다. 안은 "어떻게든 해낼 것"이라는 태도를 반복적으로 드러낸다. 그것이 이 영화를 비극으로만 읽히지 않게 하는 힘이다.


보호해야 할 자들의 배신: 의료와 법의 결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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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가장 분노를 자아내는 장면은 시술 그 자체가 아니다. 의사가 낙태를 돕는 척하며 오히려 임신을 유지시키는 에스트라디올 주사를 놓는 장면이다. 환자를 지켜야 할 존재가 가장 교묘한 방식으로 여성의 신체를 조종한다. 법과 의료 시스템이 서로 기대어 여성에게 선택지를 원천 차단하는 구조. 그것이 1963년 프랑스의 실제 풍경이었다.


교수 역시 이 구조의 일부다. 그는 안에게 성적 경고를 보내며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그러나 그 물음은 진심 어린 관심이 아니다. 답을 들을 준비가 없는 질문이다. 선의처럼 보이는 무관심이 때로 노골적인 적대보다 더 깊은 고립을 만든다.


두려움의 연대: 혼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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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가장 서늘한 것은 주변 인물들의 태도다. 친구들은 감옥이 두렵다며 수동적이 되고 아기 아빠는 함께 만든 생명 앞에서 자신의 앞날을 먼저 걱정한다. 사회 전체가 여성에게만 임신의 결과를 오롯이 짊어지게 한다. 법도 의학도 공동체도 모두 침묵하거나 방해하는 편에 선다.


이 침묵은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아무도 안을 증오하지 않는다. 각자 자신의 안위를 지키려 했을 뿐이다. 그 집합적 무관심이 결국 한 여성을 낯선 아파트의 식탁 위에 혼자 눕게 만든다.


에르노가 회고록에서 가장 날카롭게 포착한 것도 이 지점이다. 고통을 가중시킨 것은 시술의 위험이 아니라 철저한 고립이었다는 사실!...


제목이 품은 뜻: 현재진행형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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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 '레벤느망(L'Événement)'은 "사건"혹은 "일어난 일"이라는 사전적 뜻을 갖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낙태라는 과거의 사건을 가리키지 않는다. 영어 번역 제목인 'Happening'이 현재분사인 것처럼, 이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에르노는 1963년의 기억을 2000년에 글로 썼고, 디완은 2021년에 그것을 영화화했다. 기록되지 않은 것들을 기록하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저항이고, 그 저항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현재의 권리들이 누군가의 고통과 투쟁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 그리고 그 토대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 이 영화가 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영화적 완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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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출신의 아나마리아 바토로메이는 이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을 혼자 짊어진다. 그녀의 연기는 해설하지 않는다. 공포도 분노도 결의도 모두 표정과 몸짓과 침묵으로 전달된다.


특히 시술 장면의 클로즈업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표정은 고통과 의지가 동시에 새겨진, 오래 지워지지 않는 순간이다. 봉준호 감독이 심사위원장을 맡은 제78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여받은 디완 감독은 무대에 바토로메이를 직접 불러 올렸다.


상은 감독이 받았지만, 그 영화는 그녀 없이 존재할 수 없었다는 것을 감독 스스로 알고 있었다.

MV5BNjAwNTU5MjgtYzUzNy00OTQwLTg2ZTgtZDk2ZDExYmNiNTBmXkEyXkFqcGc@._V1_.jpg 오른쪽: 감독 모습

감독 오드리 디완은 이 이야기를 바라보는 시선부터 다르게 설계했다. 4:3 비율의 화면은 인물을 좁고 폐쇄된 공간 속에 가둔다. 넓게 열린 세계가 아니라 법과 시선이 사방을 조이는 현실의 형태로 조명했다. 카메라는 안의 뒤를 따라다니는 대신 그녀의 얼굴 가까이 붙어 있다. 관객은 방관자가 아니라 동행자가 된다.


주목할 점은 시술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면서도 어떤 관음적 시선도 끼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복도의 웅성거림, 의사의 차가운 목소리, 안의 숨소리...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음악은 사라지고 침묵만 남는다. 그 침묵은... 당시 수많은 여성들이 홀로 감당해야 했던 무게와 같은 밀도를 갖는다.


영화는 1960년대 프랑스 대학가의 분위기를 세심하게 복원한다. 강의실, 기숙사, 작은 식당, 골목의 아파트. 색채는 따뜻하지만 그 따뜻함이 오히려 안의 내면과 대비되며 고독을 강조한다. 화면 안의 세계는 아름답고, 안은 그 아름다운 세계에서 철저히 혼자라는 걸 강조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

2021년 이 영화가 베니스 황금사자상을 받았던 해, 한국에 개봉했던 그 해에, 세계는 마침 낙태권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 한가운데 있었다. 1963년의 이야기가 60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형으로 읽힌다는 것, 그것 자체가 이 영화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디완 감독은 영화를 만들며 "내 캐릭터가 겪는 것은 지금도 많은 나라에서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경우도 1953년 형법 제정 이래 유지되던 낙태죄는 2021년에야 비로소 비범죄화됐다. 수십 년 동안 법 앞에서 안과 같은 처지에 놓였던 여성들이 한국에도 있었다. 이 영화는 그 사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이 영화에서 간과하기 쉬운 것은 계급의 문제다. 안이 임신을 지속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학업이 그녀 가족의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작은 바(Bar)를 운영하며 힘겹게 뒷바라지하는 집안에서, 미혼 임신은 계층 상승의 꿈을 단번에 소각한다.


같은 시대, 돈 있는 여성들은 조용히 다른 나라로 가거나 신뢰할 수 있는 의사를 통해 해결했다. 법의 금지는 모든 여성에게 동등하게 적용됐지만, 그 결과는 동등하지 않았다. 불평등한 고통이 법의 이름 아래 은폐됐다.


영화는 과도한 음악이나 감정적 조작 없이, 카메라는 사실을 기록하듯 안을 따라간다.

영화의 강점인 절제와 냉정함은 동시에 정서적 거리감을 만들기도 한다. 안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기보다 카메라가 관찰자로 머무는 순간들에서, 일부 관객은 감정적 연결이 끊기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또한 1960년대 프랑스의 낙태 금지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을 경우 영화가 던지는 질문의 무게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영화는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기 때문에, 아는 만큼 더 보인다.


엔딩에서 졸업 시험지를 받아 드는 안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다. 살아남았다는 안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는 사실의 무게가 동시에 담겨 있다. 그것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역사는 투쟁한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기억한다. 이름 없이 수술대가 아닌, 식탁 위에 누웠던 수많은 여성들, 침묵 속에 고통받았던 이들, 그리고 그 고통 위에서 오늘의 권리들이 세워졌다는 사실을... 그것이 이 조용하고 강렬한 영화가 지금도 유효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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