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로스:그녀의 손길 리뷰

닿지 못한 손이 새기는 사랑의 문양

by 필름과 펜

영화 에로스: 그녀의 손길 (Film #85)

왕가위는 영화의 문장을 쓰는 시인이다. '중경삼림'의 통조림 유통기한, '화양연화'의 치파오 자락, '2046'의 기억 열차처럼 — 그는 언제나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을 스크린 위에 붙들어 놓는다.

2004년, 이탈리아의 거장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할리우드의 스티븐 소더버그와 함께한 옴니버스 프로젝트 '에로스(Eros)'에서 왕가위는 '에로스'라는 화두를 누구보다 독창적인 방식으로 풀어냈다. 다른 두 감독이 욕망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을 택했다면, 왕가위는 욕망을 감추는 것으로 오히려 더 짙게 드러냈다.


'그녀의 손길(The Hand)'은 이후 단독 특별판으로 재편집되어 공개될 만큼 그 자체로 완결된 작품이다. 56분이라는 압축된 시간 안에 그는 욕망, 헌신, 상실, 그리고 기억이 어떻게 한 인간을 평생 살아 숨 쉬게 하는지를 그려낸다.


이 영화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탄생 배경이 있다. 왕가위는 2003년 초 SARS가 창궐하는 홍콩에서 이 영화를 촬영했다. 당초 상하이 촬영 계획이 무산되었고, 스태프들은 마스크를 쓴 채 작업해야 했으며 서로 신체 접촉을 철저히 피해야 했다.


바로 그 환경 — 아무도 서로를 만질 수 없었던 공포의 계절이 왕가위로 하여금 "촉감에 관한 영화"를 만들게 했다. 그가 베니스 기자회견에서 직접 밝힌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접촉이 가장 금지되었던 시간에, 손길의 영원성을 담은 영화를 낳았다.


1960년대 홍콩, 그리고 몸을 파는 여자의 품위

영화의 배경은 1960년대 홍콩이다. 왕가위가 반복적으로 귀환하는 그 시대이기도 하다. 후아(공리)는 그 도시의 밤을 파는 여자다. 그러나 그녀는 단순한 성적 대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common (4).jpg 샤오장 역의 "장 첸"과 후아 역의 "공리"

고급 콜걸이라는 직업은 이 영화에서 일종의 '권력'을 상징한다. 후아는 전화 수화기를 내려놓지 않은 채 치수를 재게 한다. 그녀의 시선은 항상 딴 곳을 향하고, 그녀의 몸은 항상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를 향해 있다. 샤오장에게 — 그리고 관객에게 — 그녀는 언제나 완전히 소유될 수 없는 존재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에서 1960년대 홍콩은 빠르게 변해가는 도시, 곧 사라질 것들에 대한 예감이며 후아의 전성기와 몰락은 그 시대의 축소판이다. 한때 도시의 밤을 지배하던 여자가 파산과 병마 속에 모두에게 잊히는 과정 — 그것은 곧 왕가위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사라지는 방식이기도 하다.


줄거리

MV5BYmI3ODQxZDQtYWJiZi00N2I1LWIxZTEtNWI5MjI1YmVkMTMxXkEyXkFqcGc@._V1_.jpg

1960년대 홍콩. 재단소의 수습 재단사 "샤오장"은 스승의 중요 고객인 고급 콜걸 후아의 아파트를 치수를 재러 처음 방문한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그는 벽 너머 침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다.

MV5BODM1M2Y0NzAtNTk0OC00YjZhLTk5YjUtOGFjNGEzZmVmNWNkXkEyXkFqcGc@._V1_.jpg

손님이 돌아간 뒤 그가 불려 들어오자, 후아는 긴장한 젊은 남자를 꿰뚫어 보고는 냉정하고 주도적인 태도로 그를 성적으로 자극한다. "이래야 내 옷을 만들 때 나를 기억할 거야"라고 말하면서.


그것이 샤오장의 삶 전체를 지배하게 될 첫 번째 손길이다.

이후 샤오장은 후아의 전담 재단사가 된다. 치수를 재고, 옷을 만들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녀의 문을 두드린다.


세월이 흐르며 샤오장은 수습생에서 벗어나 실력 있는 재단사로 성장하지만, 그의 마음은 언제나 후아에게 머물러 있다. 샤오장은 후아를 위해 남몰래 집세까지 대신 내주는 헌신을 이어간다. 그러나 그녀를 '가질' 수는 없다. 그녀는 늘 전화 통화 중이고, 늘 다른 세계에 있으며, 샤오장을 바라볼 때에도 그를 온전히 보지 않는다.

MV5BNzZjZDFjNmYtMDFkMi00M2U2LWExMDgtNTJhYWE4OTQ1MzM2XkEyXkFqcGc@._V1_.jpg

세월이 흐른다. 후아의 전성기는 저물고, 고객들은 사라지고, 그녀는 병들어간다. 한때 도시 최상류 층의 밤을 주름잡던 고급 콜걸은 점점 더 낮은 곳으로 추락해 결국 거리의 창녀로 전락하고, 파산과 함께 아무도 찾지 않는 쓸쓸한 방에 홀로 남겨진다. 그리고 죽어가는 후아는 샤오장에게 마지막으로 손길을 건넨다 — 처음과 같은 방식으로. 수미상응의 완성이다.


영화는 샤오장이 사장에게 "후아가 결혼하여 미국으로 잘 떠났다"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의 눈빛은 그 말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암시하며, 동시에 그에게 후아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음을 말한다.


주제 분석: 닿을 수 없기에 영원한 것들

MV5BOTExM2I1N2MtNDM5NS00MmI0LTk1ZjktZGNhNDAwNWFjNTQyXkEyXkFqcGc@._V1_.jpg

이 영화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목까지 가렸으나 속이 다 비치는 시스루 치파오 같은 영화다.

다 벗은 몸보다 비치는 옷감이 더 관능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상상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완전한 노출은 욕망을 완결시키지만, 반쯤 드러난 것은 욕망을 영원히 미완으로 남긴다. 왕가위의 에로티시즘은 바로 이 미완의 상태를 고집한다. 카메라는 결정적인 순간을 항상 비껴가고, 가장 뜨거운 감정은 가장 차가운 표정 아래 숨어있다.


공리가 입은 치파오는 영화의 은유 그 자체다. 전통과 현대, 품위와 욕망, 가능과 불가능 사이에 서 있는 후아의 존재를 그 옷감이 온몸으로 말해준다.


영화 제목 '手(손)'는 단순한 신체 부위가 아니다. 재단사에게 손은 직업적 도구이자 예술적 감각의 원천이다. 샤오장의 손은 천을 재단하고, 바늘을 꿰고, 후아의 몸에 닿았다 떠나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그 손은 결코 후아를 '소유'하지 못한다. 치수를 재는 행위는 몸에 닿되 몸을 갖지 않는 행위다. 샤오장은 후아를 가장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면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이다. 그녀의 몸 치수를 외우고, 그녀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을 만들지만 — 그 옷을 입은 그녀는 늘 다른 남자에게로 간다.


수미상응: 처음의 손길로 시작해 마지막 손길로 끝나는 이야기

영화는 완벽한 수미상응 구조를 가진다. 처음 만남에서 후아가 샤오장의 손을 이끌어 자신에게 닿게 하는 장면과, 마지막에 후아가 샤오장에게 건네는 손길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러나 그 두 손길 사이에는 수십 년의 세월이 있고, 한 여자의 전성기와 몰락이 있으며, 한 남자의 청춘 전체가 있다.


처음 손길은 후아가 샤오장에게 준 것이다. 마지막 손길도 후아가 샤오장에게 준 것이다. 샤오장은 한 번도 먼저 그녀에게 닿지 않는다. 이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사랑의 형태다 —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되, 결코 강요하지 않는!...


전화기: 연결과 단절의 동시성

후아는 언제나 수화기를 손에 쥐고 있다. 샤오장이 치수를 재는 동안에도, 그녀의 몸은 그의 손안에 있지만 그녀의 의식은 전화 너머 어딘가에 있다. 전화기는 후아의 생존 수단이자 샤오장과 그녀 사이의 영원한 장벽이다.


역설적으로, 전화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기도 하다. 후아가 샤오장에게 전화를 걸어 새 옷을 주문할 때, 그 목소리는 샤오장의 일상으로 직접 침투한다. 몸은 닿지 않아도 목소리는 언제든 그의 귀에 닿는다.


영화의 모든 컷에 등불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 불빛은 단일하지 않다. 후아의 전성기 시절 등불은 크고 따뜻하며 안정적이다. 그녀가 몰락해 가는 시퀀스에서 등불은 작아지고 흔들리며 꺼질 듯 위태롭다. 두 인물의 감정 상태를 말로 설명하지 않고 빛으로 번역하는 왕가위식 표현이다.


불은 꺼지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등불은 켜져 있다. 후아가 사라진 뒤에도. 그것이 이 영화의 결론이다.


샤오장이 후아의 건물을 오를 때와 내려올 때, 그의 걸음걸이는 다르다. 기대를 품고 오를 때의 발걸음은 가볍고 빠르다. 상처를 안고 내려올 때의 발걸음은 무겁고 더디다. 계단은 샤오장의 감정 그래프다 — 대사 없이, 얼굴 없이, 오직 발소리와 리듬으로.

MV5BZTFiOTNhNDgtODFlYi00YjA1LWIxYzEtYjQ1OGVjOGJkMTdmXkEyXkFqcGc@._V1_.jpg

가장 에로틱한 장면은 실제 접촉이 아니다. 샤오장이 후아의 옷 안에 손을 넣어 그녀를 상상으로 느끼는 시퀀스 — 여기서 왕가위의 미학이 절정에 달한다. 부재하는 몸을 향한 감각, 실재하지 않는 온기를 찾는 손. 이것은 욕망이 기억과 상상의 영역으로 승화되는 순간이다.


영화적 완성도

MV5BMmU1MjI5NjYtZjY4MC00MDE3LTkzY2MtNDViMjZjYmUyMGRkXkEyXkFqcGc@._V1_.jpg

공리는 이 영화에서 단 한순간도 '피해자'가 되지 않는다. 첫 만남에서 샤오장의 손을 이끄는 것도, 마지막 손길을 건네는 것도 모두 그녀의 선택이다.


그러나 병들고 홀로 남겨진 후반부의 후아는 그 단단함 아래 감춰져 있던 취약함을 드러낸다. 공리는 강함과 취약함이 공존하는 이 복잡한 결을 군더더기 없이 연기한다.


장첸이 연기하는 '장'은 영화 내내 거의 말이 없다. 그러나 그의 눈빛과 손, 걸음걸이가 모든 대사를 대신한다.

MV5BNzRkMzQyOGYtYWZlOS00ZDg3LTlkM2YtNDdiMGEyM2VhOGQ2XkEyXkFqcGc@._V1_.jpg

후아의 몸 위에 손을 얹는 순간마다 그의 얼굴에 스치는 감정 — 경외, 욕망, 슬픔이 뒤섞인 그 표정 — 은 이 영화의 핵심적인 이미지다. 왕가위 영화에서 사랑은 언제나 말하지 못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장첸은 그 침묵의 무게를 온몸으로 감당한다.


왕가위: 감각적 연출의 대명사

common (5).jpg

왕가위는 이 단편에서도 자신의 시그니처를 아낌없이 구사한다. 거울을 통한 간접 심리 묘사, 창문 너머로 포착되는 감정, 슬로 모션으로 연장되는 결정적 순간들. 특히 이 영화에서는 왕가위의 7편의 장편을 함께한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Christopher Doyle)"의 손길이 빛난다.


그의 카메라는 치파오의 천, 후아의 피부, 샤오장의 손 — 모든 것을 만질 수 있을 것처럼 찍는다. 관객은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게 된다.


왕가위 영화에서 음악은 배경이 아니라 또 하나의 등장인물이다. '그녀의 손길'의 음악은 독일 뉴웨이브 영화의 거장 파스빈더와 오랜 협업으로 유명한 작곡가 "페어 라벤(Peer Raben)"이 맡았다.


그의 음악은 1960년대 홍콩의 공기를 복원하면서, 동시에 샤오장과 후아의 관계가 변화하는 리듬을 정확히 따라간다. 화려한 현악과 나직한 선율이 교차하며 두 사람 사이의 메울 수 없는 거리를 소리로 번역한다.


기억이 살아있는 한 죽음은 없다

MV5BY2QxNzRiMmUtZmJjOS00MGQzLThlMzgtY2RkYTA0NTY3YzdkXkEyXkFqcGc@._V1_.jpg

후아의 생사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샤오장이 "후아는 미국으로 잘 갔다"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그가 후아를 어딘가에 살아있게 만들고 있음을 안다.


기억 속에서, 이야기 속에서, 그리고 그의 손이 천을 재단할 때마다. 왕가위는 이것이 사랑의 가장 순수한 형태라고 말하는 듯하다 — 상대를 살아있게 하는 것!...


아쉬운 점

MV5BNjA4ZmYzNzEtMDZhNC00OGQ4LTkwZmUtMmU5OGI3MTQ0ODcwXkEyXkFqcGc@._V1_.jpg

56분이라는 러닝타임은 이 이야기에 충분하면서도 때로는 아쉽다. 후아의 몰락 과정이 다소 압축되어 그녀가 병들고 홀로 남겨지는 과정의 감정적 무게가 충분히 쌓이지 않는다는 느낌이 있다. 단독 장편으로 확장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시대적 배경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관객에게는 1960년대 홍콩이라는 맥락이 다소 낯설 수 있다. 그러나 왕가위의 영화에서 맥락은 언제나 부차적이다 — 감각이 먼저이기 때문에...


'그녀의 손길'은 욕망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이루어지지 않음에 관한 영화다.

다 보여주는 것보다 비치는 것이 더 강렬하다는 것을 이 영화는 56분 동안 완벽하게 증명한다. 공리의 치파오처럼, 이 영화는 모든 것을 가리면서 모든 것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시스루의 결 사이로, 한 인간이 평생을 바쳐 사랑하는 방식이 보인다.


왕가위의 다른 걸작들이 '닿을 뻔한 사랑'을 다뤘다면, '한 번 닿은 뒤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사랑'을 다룬 영화 "그녀의 손길"이었다!...//




#영화 에로스 #영화 에로스 왕가위 #왕가위 감독 #영화 에로스 그녀의 손길 #영화 그녀의 손길 왕가위 #에로스 그녀의 손길 #영화 에로스 리뷰 #에로스 그녀의 손길 리뷰 #에로스 그녀의 손길 해석 #영화 에로스 해석 #에로스 그녀의 손길 왕가위 리뷰 #공리 #장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