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TAR 타르 리뷰 권력 정점에서 추락한 자의 초상

by 필름과 펜

영화 TAR 타르 (Film #93)

토드 필드 감독의 귀환과 이 영화의 탄생

MV5BNjcyNDhmNWEtNDA5Yy00YmRmLWFjNGItMDA5M2I0ZmUzNmRjXkEyXkFqcGc@._V1_.jpg 토드 필드 감독과 타르 역의 케이트 블란쳇

감독이 2001년 인 더 베드룸, 2006년 리틀 칠드런 이후 무려 16년 만에 내놓은 세 번째 장편이 바로 TAR 타르다. 기다림이 길었던 만큼, 이 영화는 묵직하게 도착했다. 제79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케이트 블란쳇이 볼피컵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시상식 시즌의 서막을 열었고, 이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세계 최고의 배우임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토드 필드 감독은 이 영화를 기획하며 이렇게 말했다. "오랜 시간 동안 어린 시절의 목표를 위해 달려가고, 그것을 이뤄낸 후 그 꿈이 악몽으로 변하는 캐릭터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무대 위와 아래, 모두에 존재하는 권력 구조를 보여주려 했다." 이 두 문장만으로도 영화의 본질은 충분히 설명된다.


TAR 타르는 클래식 음악계를 배경으로 하지만, 리디아 타르가 반드시 지휘자일 필요는 없었다. 권력을 손에 쥔 자가 그것을 휘두르고, 결국 자신이 파놓은 구덩이에 스스로 빠져드는 이야기는 정치계이건 재계이건 예술계이건 다를 바가 없다. 음악은 이 영화에서 배경이자 언어이자 은유다.


현재의 클래식 음악계, 그리고 권력의 지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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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 타르의 배경은 현재의 베를린이다. 그러나 영화가 다루는 권력의 작동 방식은 시대를 초월한다. 오케스트라라는 조직은 본질적으로 위계적이다. 지휘자는 절대자이고, 단원들은 그 해석을 따른다. 무대 위의 민주주의는 환상이다.


리디아 타르는 이 구조의 최정점에 선 인물이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석 지휘자, 말러 교향곡 시리즈의 완성을 앞둔 거장, 세계가 인정하는 예술가. 그녀는 자신이 시간을 통제한다고 믿는다. 인터뷰에서 그녀는 말한다. "내가 시계를 시작하게 한다." 시간조차 자신의 지휘봉 아래에 있다는 선언이다.


하지만 오케스트라가 무대 위에서만 존재하지 않듯, 권력 역시 그 경계를 넘는다. 타르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관계를 맺고, 이용하고, 버린다. 비서 프란체스카는 부지휘자라는 약속을 믿으며 그녀를 섬긴다. 첫 번째 희생자 크리스타는 타르의 그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다 스스로 생을 놓는다. 새 첼리스트 올가는 타르의 다음 표적이 된다.


줄거리

common (2).jpg 타르 역의 "케이트 블란쳇"과 샤론 역의 "니나 호스"

세계적 지휘자 리디아 타르는 모든 것을 가진 듯 보인다. 권위, 명성, 예술적 재능, 동성 파트너 샤론, 그리고 그들이 함께 키우는 딸까지. 영화는 그녀의 인터뷰 장면으로 시작되며, 타르 스스로가 자신을 소개하도록 한다. 거창하고 자신만만하다. 이 첫 장면 자체가 이미 아이러니다.


그러나 균열은 조용히 시작된다. 비행기 안에서 받은 익명의 소포 속 책에는 낯선 무늬가 그려져 있다. 타르가 오래전 버린 관계, 크리스타로부터 온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주저 없이 쓰레기통에 버린다. 뒤이어 들려오는 소식은 크리스타의 자살. 타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프란체스카에게 명령한다. 크리스타에 관한 모든 이메일을 삭제하라고.

MV5BNjJkOGM2M2UtYmZjOC00MGVjLWE4NDctN2VlYTgwNjI4OWRjXkEyXkFqcGc@._V1_.jpg 프란체스카 역의 "노에미 메를랑"

같은 시간, 타르는 오디션장에서 마주친 젊은 첼리스트 올가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블라인드 오디션임에도 신발 하나를 기억해 가장 높은 점수를 준다. 욕망은 예술보다 먼저 움직인다.


부지휘자 자리를 프란체스카에게 주겠다는 암묵적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이용 가치가 소멸한 순간, 관계는 끝이다. 하지만 프란체스카는 다르다. 그녀에게는 무기가 있다. 크리스타와 타르 사이의 이메일들, 그리고 법정 증언 능력. 사직서를 내고 사라진 프란체스카의 방에는 그 낯선 무늬가 다시 남겨져 있다.


무너짐은 동시다발적으로 온다. 줄리아드 강의에서의 학생과의 설전이 편집되어 인터넷에 퍼진다. 크리스타의 죽음이 파문을 일으킨다. 파트너 샤론도 결국 떠난다. 말러 5번 악보마저 사라진다. 타르는 마침내 해고되고, 무대에 난입하다 끌려 나간다.


추락한 그녀가 향하는 곳은 어린 시절 고향 집이다. 그곳에서 레너드 번스타인의 오래된 비디오를 꺼내본다. 그제야, 비로소 눈물이 흐른다. 음악의 본질을 잊고 살았음을 깨달은 자의 눈물이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마지막 장면. 아시아의 어딘가. 타르는 헤드폰을 끼고 지휘한다. 더 이상 자신이 시간을 지배하지 않는다. 남이 만든 시간에 맞추어 팔을 움직인다.


주제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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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 타르는 악인인가? 단순히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녀는 예술에 대한 진정한 열정이 있고, 탁월한 귀와 감각이 있다. 문제는 그 재능이 권력의 언어로만 발화된다는 데 있다. 타르에게 음악은 통제의 수단이고, 관계는 도구이며, 타인의 고통은 가시적이지 않다.


그녀는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능하다. 크리스타의 이메일을 지우는 것은 "불필요한 잡음을 제거"하는 것이다. 프란체스카를 이용하는 것은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올가에게 접근하는 것은 "예술적 교감"이다. 자기기만의 언어는 정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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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시퀀스 중 하나는 줄리아드 마스터 클래스 장면이다. 한 학생이 바흐의 음악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한다. 팬젠더 유색인종으로서, 여성혐오적 삶을 살았던 작곡가의 음악을 어떻게 편히 연주할 수 있느냐고. 타르는 즉각 반박한다. 작곡가와 작품은 분리해야 한다고, 음악 자체로 바라보라고.


이 장면은 영화 전체의 복선이자 핵심이다. 타르 자신이 크리스타 사건으로 무너지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그녀에게 똑같이 묻는다. "당신의 음악과 당신의 삶을 분리할 수 있는가?" 타르가 학생에게 강요했던 논리는 정작 자신에게 돌아왔을 때 아무도 수용하지 않는다.


대본 분량 10쪽이 넘는 이 롱테이크 씬은 단 하나의 컷으로 10분 넘게 이어진다. 케이트 블란쳇이 왜 세계 최고의 배우인지를 증명하는 장면이다.


미투(Me Too)의 시대

TAR 타르는 미투 운동의 시대가 만들어낸 이야기다. 과거라면 권력자의 행태는 소문으로만 돌다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는 기억하고, 편집하고, 퍼뜨린다. 타르가 경멸했던 "소셜 미디어에 지배당한 영혼들"이 결국 그녀를 무너뜨리는 힘이 된다.


영화 속에는 플라시도 도밍고가 잠깐 언급된다. 말년에 미투로 이미지가 실추된 성악가. 그것은 복선이다. 지휘만 잘한다고 되는 시대가 아니다. 예술적 재능은 면죄부가 아니다.


음악적 코드: 엘가, 말러, 바흐의 삼각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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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타르가 말러 교향곡 8곡을 완성했고, 마지막으로 5번만 남겨두었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말러 5번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이다.


많은 이들이 이 교향곡 4악장 아다지에토를 "사랑의 음악"으로 기억한다. 타르도 초반 인터뷰에서 그렇게 정의한다. "비극의 고통에서 탄생한 곡이 아니다. 젊은 날 사랑의 표현이다. 그래서 나는 7분으로 연주할 것이다." 당차고 확신에 차 있다.


그러나 말러 5번은 단순히 알마를 향한 사랑의 세레나데가 아니다. 말러가 이 곡에 새겨 넣은 것은 고독이고, 외로움이며, 관계의 균열이다. 악보 끝에 두 번이나 적어 넣은 지시어 "morendo"는 "죽어서 사라진다"는 뜻이다. 말러와 멩엘베르크가 직접 지휘했을 때는 약 7분이었으나, 현대 연주는 10분에서 15분까지 천차만별이다. 번스타인이 1968년 로버트 케네디 장례식에서 이 악장을 단독으로 연주한 뒤로, 곡은 애도의 음악이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길어질수록 침통해지는 이유가 있다.


타르가 모든 것을 잃고 난 뒤, 그녀는 여전히 7분으로 연주할 수 있을까. 이제 그녀는 이 악장이 사랑의 노래가 아니라 지독한 외로움의 독백이었다고 고백하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그 고백은, 연주 시간을 두 배로 늘려서야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영화는 말러 5번의 진짜 의미를 관객이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해, 타르의 삶을 그 교향곡의 구조와 포개어 놓는다.


또한 말러는 5번 교향곡을 작곡하기 전 바흐의 곡들을 면밀히 분석했다. 그래서 5번에는 다른 교향곡보다 바흐식 폴리포니가 두드러진다. 말러가 비엔나 초연 당시 바흐의 모테트를 먼저 연주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줄리아드 씬에서 바흐가 등장하는 것, 그리고 말러 5번이 영화의 핵심 음악으로 선택된 것, 이 둘은 서로 무관하지 않다.


타르가 올가에게 접근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곡이 엘가 첼로 콘체르토다. 여성 첼리스트의 역사에서 이 곡은 자클린 뒤 프레의 이름과 불가분이다.


짧은 삶을 살다 간 천재 첼리스트의 전설적 연주로 이 곡은 불멸이 되었다. 타르가 이 곡을 올가에게 배정하는 행위는, 예술적 판단인 동시에 감정적 접근이다. 욕망은 예술의 언어로 포장된다.


타르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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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가 자신의 정체성으로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것은 시간을 지배하는 능력이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의 시간을 통제한다. 빠르게도, 느리게도, 멈추게도 한다.


하지만 영화는 조금씩 그 통제권이 무너지는 것을 보여준다. 메트로놈이 제멋대로 짤깍이기 시작하는 장면에서 타르는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자신의 시간이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예감!...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헤드폰을 끼고 지휘한다. 외부의 템포에 자신을 맞춘다. 이것은 굴욕이다. 동시에 구원의 실마리일 수도 있다. 자신이 시간을 지배한다는 오만함을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음악의 진짜 흐름이 들리기 시작하는 것처럼...


영화적 완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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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블란쳇은 이 역할을 위해 지휘를 배우고, 독일어를 연마하고, 첼로를 익혔다. 하지만 기술적 준비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녀가 구현한 내면의 지형도다. 타르는 대사로 설명되는 인물이 아니다. 눈 깜빡임, 미세한 입술의 움직임, 타인을 바라볼 때의 계산적인 시선, 혼자 있을 때 스며드는 불안. 이 모든 것이 언어 없이 전달된다.


줄리아드 씬의 10분짜리 롱테이크는 그 자체로 전설이다. 한 컷 안에서 타르는 교육자, 예술가, 권력자, 협박자를 모두 오간다. 블란쳇이 아니라면 이 역할을 상상하기 어렵다.


필드 감독은 서두르지 않는다. 158분의 러닝타임은 분명 느리다. 하지만 그 느림이 불안을 조성한다. 설명하지 않고 암시한다. 관객이 타르의 과거를 유추하게 하고, 크리스타와의 관계를 상상하게 하고, 무너짐이 언제 올지 기다리게 한다.


특히 음향 설계가 탁월하다. 음악이 없는 순간, 일상의 소리들—발소리, 문 닫히는 소리, 종이 넘기는 소리—이 긴장을 대신한다. 클래식 음악에 관한 영화이지만, 정작 클래식이 흐르는 시간은 의외로 짧다. 그 공백이 의미를 만든다.


영화의 공간은 타르의 심리를 반영한다. 화려하고 정돈된 베를린 필하모닉의 내부, 세련된 타르의 아파트, 그리고 누군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작업실. 조깅 도중 들리는 고함 소리는 환청인지 실재인지 불분명하다.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오기 시작할 때, 공간은 이미 적으로 변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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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 타르는 픽션이다. 리디아 타르는 가상의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가 보여주는 권력의 작동 방식은 실재한다. 정치계, 재계, 문화예술계 어디에나 크리스타가 있고, 어디에나 침묵을 강요당하는 프란체스카가 있다.


타르가 몰락하는 것은 어쩌면 이 영화가 그나마 정의에 가까운 결말을 선택한 덕분이다. 현실에서는 유감스럽게도 내리막이 존재하지 않는 권력자들이 더 많다. 그 씁쓸함 속에서도 이 영화는 묻는다. 당신은 어느 편에 서 있는가? 침묵하는 오케스트라 단원인가, 아니면 크리스타인가.


아쉬운 점

긴 러닝타임은 분명 도전이다. 극적 긴장보다 분위기와 심리를 선호하는 영화이기에, 클래식 음악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는 관객에게는 지루함이 올 수 있다. 또한 크리스타와 타르의 관계가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되었다면, 타르의 죄의식이 더 깊이 전달되었을 것이다.


TAR 타르는 조용한 공포다. 화려한 액션도 명확한 반전도 없다. 한 인간이 자신이 구축한 권력의 구조 위에서 스스로 균형을 잃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불편하고, 느리고, 그러나 오래 남는다.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는 단어로 표현하기 어렵다. 토드 필드의 연출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한다. 말러와 엘가와 바흐가 짜여 이룬 음악적 구조는 이야기의 층위를 더 깊게 만든다.


레너드 번스타인의 비디오를 보며 눈물 흘리는 타르의 얼굴은 오래 기억된다. 음악의 본질을 잊고 권력만을 쫓았던 자가, 모든 것을 잃고서야 그 본질로 돌아오는 순간. 너무 늦었지만, 그것이 비로소 진짜라는 것.

이 영화는 클래식 음악 영화가 아니다. 인간이 권력 앞에서 어떻게 변형되는지, 그리고 그 변형이 얼마나 조용히 이루어지는 지에 관한 영화다. 우리 모두 어떤 의미에서는, 타르이거나, 크리스타이거나, 침묵하는 단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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