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Supernova
감독: 해리 맥퀸
출연: 콜린 퍼스(샘), 스탠리 투치(터스커)
조연: 피파 헤이우드(릴리), 세라 우드워드(수), 제임스 드레이퍼스
개봉: 2020년 (세계 초연) / 2021년
장르: 드라마 / 로맨스
러닝타임: 94분
촬영지: 영국 레이크 디스트릭트, 케즈윅 일대
수상: 2021년 BAFTA 영국 장편영화상 후보, 2022년 비평가 선정 '21세기 최고의 영국 영화' 선정
해리 맥퀸은 배우이자 작가이자 감독이다. 그의 연출 필모그래피는 많지 않다. '하인터랜드(Hinterland, 2014)'로 데뷔한 뒤, '슈퍼노바'는 그의 두 번째 장편이다. 적은 작품 수가 오히려 그의 진지함을 암시한달까. 수다스런 말보다 침묵을 사랑하는 감독의 영화 '슈퍼노바'는 그런 작가의 감수성이 고스란히 스며든 작품이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원래 콜린 퍼스가 터스커 역을, 스탠리 투치가 샘 역을 맡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두 배우가 직접 논의 끝에 역할을 맞바꾸기로 결정했다. 완성된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그 교환이 얼마나 탁월한 선택이었는지 알 것이다. 스탠리 투치의 침착함이 터스커에게, 콜린 퍼스의 안으로 삭이는 슬픔이 샘에게 정확히 들어맞으니까 말이다.
슈퍼노바(超新星, Supernova)는 수명이 다한 별이 마지막 순간 격렬하게 폭발하며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는 현상이다.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죽음의 상징이자 동시에 가장 찬란한 빛의 이름이다.
영화 오프닝엔 초신성의 모습을 관객이 직접 볼 수 있는데, 영화 속 샘과 터스커는 아마추어 천문 애호가들이다. 별을 올려다보는 포스터 속 두 사람의 모습은, 이미 이 영화가 어디로 흘러갈지를 조용히 예고한다. 터스커(스탠리 투치)의 삶은 슈퍼노바다. 빛을 잃어가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에너지를 한 번에 쏟아내며 작별을 고하려는 별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영화에서는 한 가지 아름다운 사실을 알려준다. 폭발한 별의 입자들은 사라지지 않고 우주를 떠돌다가 새로운 생명의 일부가 된다고! 우리 몸 안에도 이미 수억 년 전 어딘가에서 폭발한 별의 분자가 있다.영화는 그 사실을 은유로 삼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이 곧 소멸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우주 속에 영원히 남는 것이라고.
콘서트 피아니스트 샘(콜린 퍼스)과 소설가 터스커(스탠리 투치)는 20년을 함께 산 연인이다. 두 사람은 낡은 캠핑카에 몸을 싣고 영국 레이크 디스트릭트 일대를 여행한다. 표면적인 목적은 샘의 오랜 지인들을 만나고, 샘이 오랫동안 미뤄온 피아노 리사이틀을 여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 조기 발병 치매 진단을 받은 터스커는 자신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아직 자신이 '터스커'로서 존재할 수 있을 때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싶다. 캠핑카 안에서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고, 웃고, 서로의 몸에 기댄다. 20년이라는 시간이 쌓인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능한, 말 없이도 전달되는 언어들!...
여행 도중 샘은 우연히 터스커의 비밀 계획을 발견한다. 터스커는 샘이 리사이틀에서 피아노를 치는 동안, 스스로 삶을 마감하려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추락을 목격하지 않아도 될 때, 그리고 자신이 여전히 존엄성을 지닌 채 작별할 수 있을 때를 기다렸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안 샘은 무너진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영화의 핵심 대립이 펼쳐진다. 하루라도 더 곁에 있고 싶은 사람과, 그 사람을 위해 지금 떠나고 싶은 사람. 어느 쪽도 틀리지 않았고, 어느 쪽도 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영화의 비극이자 아름다움이다.
엔딩은 열려 있다. 샘이 피아노 앞에 앉아 에드워드 엘가의 '사랑의 인사(Salut d'Amour)'를 연주한다. 카메라는 그의 시선이 고정된 곳을 끝끝내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게 영화는 마무리된다.
샘과 터스커의 갈등은 단순한 삶과 죽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의 두 가지 언어 사이의 충돌이다. 샘의 사랑은 붙잡음이다. 무너지더라도 곁에서 지켜보고, 기저귀를 갈고, 이름을 잊어버린 얼굴 앞에서도 그저 존재하는 것. 터스커의 사랑은 놓아줌이다. 자신이 짐이 되기 전에 떠나는 것, 샘의 기억 속에 온전한 모습으로 남는 것.
영화는 두 사람이 서로의 논리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무수한 감정이 오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분노, 애원, 체념, 그리고 결국은 이해인데, "나도 함께할 거야"라는 샘의 대사는 '네가 어디로 가든 나는 너와 함께 있겠다'는, 사랑의 가장 극단적인 고백인 셈!
터스커의 선택은 존엄사와 자기결정권이라는 현실적 문제를 건드린다. 그는 점점 망가지는 자신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작가로서, 인간으로서의 자아가 사라지기 전에 마침표를 찍고 싶다. 이것을 비겁함이라 부를 수 있을까. 영화는 그 물음을 관객에게 넘긴다.
치매는 단지 기억을 앗아가는 병이 아니다. 언어를 빼앗고, 관계를 지우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게 만든다. 터스커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자신이 자신이 아니게 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샘이 짊어져야 할 무게다.
영화에서 가장 가슴 찢어지는 장면은 가족 만찬 자리에서 벌어진다. 터스커는 준비한 연설을 읽으려 하지만, 치매가 그 순간에도 그를 가로막는다. 결국 샘이 터스커 대신 그의 글을 소리 내어 읽는다. 그 글에는 샘을 향한 20년의 사랑이 담겨 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자신의 목소리로 전달하지 못하는 작가, 그리고 그의 마음을 대신 읽어주는 연인. 두 사람은 그 순간, 눈물 없이 울었다.
콜린 퍼스는 이 영화에서 절제를 선택했다. 샘은 울부짖지 않는다. 그는 참는다. 모든 감정을 억누르고 일상을 유지하면서, 그 균열이 조금씩 표면으로 번져 나오는 것을 우리는 그의 눈가와 손끝에서 발견한다.
콜린 퍼스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킹스 스피치'가 언어를 찾아가는 이야기였다면, 이 작품은 언어가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보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의 연기는 양쪽 모두 깊고 섬세하다.
스탠리 투치가 구현한 터스커는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다. 그것이 오히려 더 무겁게 느껴진다. 단어를 잠깐 잃어버릴 때도, 그는 마치 잠깐 딴 생각을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투치는 터스커가 자신의 상태를 얼마나 깊이 인식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완벽하게 숨기고 있는지를 눈빛 하나로 표현한다. 이 연기는 화려하지 않다. 그래서 오래 남는다.
두 배우는 실제로도 20년지기 친구다. 2001년 영화 '음모(Conspiracy)' 촬영 현장에서 만나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스크린 위의 20년이 스크린 밖의 20년과 겹쳐질 때, 그것은 연기로 만들어낼 수 없는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촬영감독 딕 포프는, 영국의 자연을 회화처럼 담아내는 방식을 알고 있다.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구릉과 호수, 안개와 늦가을 빛이 그의 카메라를 통해 마치 풍경화처럼 펼쳐진다. 이 풍광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샘과 터스커의 내면이 투영된 또 하나의 언어다.
영화 음악은 싱어송라이터 키튼 헨슨(Keaton Henson)이 맡았다. 피아노와 현악이 중심이 된 그의 음악은 감정을 과잉 표현하는 법 없이 장면 안에 스며든다. 터스커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첼로로 표현했던 심경 묘사는 특히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엔딩에서 콜린 퍼스가 직접 건반 앞에 앉아 연주하는 에드워드 엘가의 '사랑의 인사(Salut d'Amour)'. 이 곡은 원래 엘가가 약혼녀에게 헌정한 곡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말 대신 음악으로 고백하는 곡. 그것을 터스커를 바라보며 치는 샘의 모습은, 이 영화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마지막이다.
'슈퍼노바'는 두 남성의 사랑을 다루지만, 그 정체성을 주제로 삼지 않는다. 두 사람의 섹슈얼리티는 그냥 그들이 가진 삶의 조건일 뿐, 영화가 의문을 제기하거나 설명하려는 대상이 아니다. 가족들도, 마을 사람들도, 그것을 특별하게 다루지 않는다. 그저 20년을 함께 산 사람들로서 받아들인다.
이것은 단순히 '포용적인 영화'의 의미를 넘어선다. 그것은 선언이다. 60대 게이 커플의 사랑과 상실이 특수한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인간이 겪는 가장 보편적인 감정의 이야기임을 영화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한다. 치매, 자기결정, 이별, 그리고 남겨진 자의 삶 — 이것은 모두의 이야기다!
'슈퍼노바'가 던지는 물음은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수명은 길어졌지만, 그 긴 삶의 끝자락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여전히 빈약하다. 치매를 앓는 사람도, 그를 돌보는 사람도 모두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제도와 문화는 어디에 있는가.
터스커의 선택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우리는 한 가지 물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만약 내가 터스커라면? 만약 내가 샘이라면? 영화는 정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그 물음을 삶 속으로 가져가게 만든다.
영화의 전반부는 의도적으로 느리다. 이 느림이 두 사람의 일상적 친밀감을 구축하는 데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극적 긴장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약 한 시간은, 이 영화의 정서와 호흡을 미리 준비한 관객에게는 충만함이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에게는 지루함일 수 있다.
또한 별과 우주를 주제로 한 대화들이 영화의 제목을 뒷받침하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그 장면들이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슈퍼노바'는 조용한 영화다. 소리 지르지 않는다.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두 사람의 얼굴을 오래, 아주 오래 들여다보게 한다. 그리고 관객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들 사이 공기에 스며들어 있다.
이 영화를 본 뒤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대사가 아니다. 터스커가 연설을 읽지 못하던 순간 샘의 눈빛이고, 캠핑카 안에서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정경이었다! 절제미, 영상미가 탁월했던 영화 "슈퍼노바"였다!...
별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형태를 바꿀 뿐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명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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