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끝까지 켜두는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by 필름과 펜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Film #99)

기본 정보

원제: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감독: 이태겸
출연: 유다인(정은), 오정세(막내)
개봉: 2021년 1월 28일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111분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수상: 제38회 파지르국제영화제 Eastern Vista 여우주연상 /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배우상(오정세)


이태겸 감독의 시선과 영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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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겸 감독은 2007년 첫 장편 〈소년 감독〉 이후, 오랫동안 차기작을 만들지 못하는 시간을 보냈다. 영화 제작이 무산되어 깊은 우울 속에 있던 어느 날, 그는 한 기사를 읽었다. 사무직 중년 여성이 지방 현장직으로 부당 파견을 당했으나, 치욕적인 시간을 끝까지 버텨냈다는 이야기였다.


감독은 즉시 감정이입했다고 고백했다. 영화를 만들지 못한 감독의 처지와, 일터에서 밀려난 노동자의 처지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세상이 나를 밀어낼지라도 스스로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나를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이 영화를 만들게 했다.


원제는 〈파견: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였다. 2020년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이 제목으로 출품되어 오정세가 한국경쟁 배우상을 수상했다. 이후 '파견' 두 글자를 떼어내고 개봉했다. 그 타이틀 선택이 의미심장하다. 이 영화는 파견이라는 제도적 문제를 넘어,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의지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배경: 만연한 고용 불안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은 OECD 최상위권을 오가고, 간접고용·파견·용역 구조는 노동자를 보호막 없이 계층화한다. '원청'과 '하청'이라는 단어가 단순한 계약 관계를 넘어 신분처럼 작동하는 사회. 누군가는 같은 일터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다른 밥을 먹는다.

극 중, 정은 역의 유다인

영화 속 정은의 상황은 허구가 아니다. 권고사직을 거부하자 원청이 하청으로 파견을 보낸 것, 이것은 오늘날 한국 기업들이 사용하는 전형적인 인력 정리 수단이다. 해고라는 단어를 쓰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내쫓는 구조...


현장 노동의 실체: 우리가 잊고 있는 것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송전탑 보수 작업은 낯선 세계다. 수십 미터 상공, 바람이 부는 줄 위를 맨몸으로 걷는 노동자들. 우리가 무심히 스위치를 누를 때마다 불을 밝히는 전기는, 그 사람들의 생명을 담보로 한 것이다.


이태겸 감독은 실제 송전 노동자들과 접촉하고, 대원전기교육원의 협조를 받아 현장감을 살렸다. 스크린 위에서 흔들리는 줄이 단순한 영상미가 아닌 이유다. 그것은 누군가의 실제 하루다.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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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간 회사에 헌신했던 정은(유다인)은 어느 날 이유도 모른 채 하청 업체 파견 명령을 받는다. 동기는 그녀가 우수사원이었다고 말하고, 인사팀 직원은 "일을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한다.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지만, 1년을 버티면 원청으로 복귀시켜 준다는 조건에 정은은 파견을 받아들인다.


도착한 현장에는 그녀를 반기는 사람도, 앉을자리도, 맡길 업무도 없다. 하청 동료들은 정은을 낯선 존재로 경계하고, 정은 역시 현장 일이 낯설기만 하다. 설상가상으로 그녀의 주된 업무는 송전탑 위를 오르는 것인데, 정은에게는 고소공포증이 있다.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는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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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막내(오정세)가 나타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대리운전을 병행하며 딸 셋을 홀로 키우는 남자. 그는 정은과 경쟁해야 할 이유가 충분한 구조 속에서도, 그녀를 경쟁자가 아닌 동료로 바라본다. 막내의 조용한 도움 속에 정은은 조금씩 현장에 적응해 간다.


그러나 막내는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장례식에 온 세 아이의 어리둥절한 눈빛. 아버지의 부재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그 얼굴들 앞에서, 정은은 무언가를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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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를 잃은 후, 정은은 혼자 송전탑에 오른다. 이번에는 아무도 옆에 없다. 오직 자신만이 자신을 붙잡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불을 밝힌다.


주제 분석: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현대 사회에서 직업은 단순한 수입원이 아니다. 명함 한 장에 이름보다 직함이 먼저 오는 세상, '나는 어디 다니는 누구'가 정체성의 핵심이 되는 사회에서, 일자리를 잃는 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 홀로 서는 일이다.


정은이 파견을 거부하지 않는 것은 비굴해서가 아니다. 자신의 자리를,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지우지 않겠다는 의지다. 영화 제목은 바로 그 선택을 가리킨다. 세상이 나를 해고하려 할 때, 적어도 내가 먼저 나를 해고하지는 않겠다는 것!...


오프닝의 전구: 꺼져가지만 아직 켜져 있는

영화는 백열등 필라멘트가 끊기기 직전, 껐다 켜졌다를 반복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이미지는 정은의 상태를 압축한다. 언제 꺼질지 모르는 전구처럼, 해고의 경계 위에 아슬아슬하게 켜져 있는 존재.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직 켜져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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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에서 정은이 송전탑 위에서 불을 밝히는 장면은 이 오프닝의 응답이다. 꺼질 뻔했지만 끝내 켜진 불. 그것이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송전탑: 닿을 수 없어 보이는 것들

정은이 송전탑을 볼 때마다 굳어버리는 장면이 반복된다. 너무 높아서, 너무 멀어서, 도저히 오를 수 없을 것 같은 그 구조물. 그것은 단순한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송전탑은 정은이 결코 속할 수 없을 것 같은 세계, 영원히 원청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미래, 그리고 자신의 한계처럼 느껴지는 모든 것의 상징이다. 그러나 영화는 말한다. 혼자서는 오를 수 없어 보였던 그 높이도, 결국 오를 수 있다고.


막내: 구조가 만든 적이 동료가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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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가장 섬세한 지점은 정은과 막내의 관계다. 원청 사무직 여성과 하청 현장직 남성. 인사평가 기준에서 보면 경쟁자여야 할 두 사람이 서로의 인간적 면모를 먼저 본다.


고용 불안 사회는 노동자들을 서로의 적으로 만든다. 내 자리를 빼앗길까 봐, 내 밥그릇을 지켜야 하니까. 그러나 막내는 정은에게 기꺼이 손을 내민다. 이것이 영화가 말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 사회의 씨앗이다. 개인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것은, 결국 그런 손길이 있기 때문이다.


막내의 죽음이 더욱 가슴 아린 이유가 여기 있다. 가장 팍팍하게 살면서도 가장 따뜻했던 사람이 먼저 간다. 그러나 그가 정은에게 건넨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정은이 혼자 송전탑에 오를 때, 막내는 그녀 안에 있었다!...

영화는 하청 동료들이 정은을 경계하는 장면도 솔직하게 담는다. 그들이 악인이어서가 아니다. 시스템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원청의 사람이 내려왔다는 것 자체가 위협으로 느껴지는 구조이며 노동자끼리 서로를 견제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구조적 폭력의 얼굴이다.


영화는 이 갈등을 설명하거나 해결하지 않는다. 다만 그 안에서도 인간적 관계가 싹트는 순간을 조용히 포착한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안고서도, 사람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조명한다.


영화적 완성도

유다인: 무너지지 않는 얼굴의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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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인은 2012년 제13회 프랑스 뚜르 아시안영화제 여우주연상, 2011년 제31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한 배우다. 이 영화로 제38회 파지르국제영화제 Eastern Vista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정은은 잘 울지 않는다. 억울하고 외롭고 무서워도, 그녀는 무너지지 않는 표정을 유지하려 한다. 유다인의 연기는 바로 그 경계를 섬세하게 다룬다. 무너지지 않으려는 사람이 무너질 것 같을 때의 그 미세한 떨림. 대사로 설명되지 않지만, 화면 안에 가득 차 있다.


정은이 고소공포증을 안고 줄 위를 걷는 장면은 이 영화의 절정이다. 약도 소용없던 두려움을 몸으로 밀어붙이는 순간. 유다인의 눈빛과 호흡이 그 두려움과 결의를 동시에 전달한다.


오정세: 가장 작은 자의 가장 큰 따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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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세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로 한국경쟁 배우상을 수상했다. 막내는 영화에서 가장 고단하게 사는 인물이다. 딸 셋을 혼자 키우며 편의점과 대리운전을 겸업하는 하청 노동자를 맡았다.


그러나 오정세가 연기하는 막내는 결코 불쌍하지 않다. 그는 자신의 삶을 비관하지 않으며, 타인에게 무심한 친절을 건넨다. 그 자연스러움이 이 캐릭터를 살린다. 선한 사람을 선하게 연기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오정세는 그것을 해냈다.


이태겸 감독은 과잉 설명을 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정은의 뒷모습을 자주 따라간다. 그녀의 내면을 직접 보여주는 대신, 걸음과 어깨와 호흡으로 감정을 전달한다.

대원전기교육원에서 촬영된 송전탑 장면들은 실제 현장감을 살린다. 흔들리는 줄, 아래로 펼쳐지는 시야, 바람 소리. 이것은 CG가 아니라 실제 높이가 주는 두려움이다.

동시에 영화는 '빛'을 일관된 모티프로 사용한다. 시작의 꺼져가는 전구, 중간의 어두운 현장, 그리고 끝의 켜지는 불. 정은의 여정은 곧 빛이 꺼져가다 다시 켜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현대적 울림: 왜 지금 이 영화인가

정은의 이야기는 특정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열심히 일했는데도 이유 없이 밀려난 경험, 새로운 환경에서 처음부터 다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피로,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날들. 그것은 우리 중 많은 이들의 이야기다.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선언은 영웅적이지 않다. 거창하지도 않다. 다만 오늘도 출근하고, 오늘도 버티고, 오늘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평범한 결의다. 그 평범함이 이 영화를 보편적으로 만든다.


위험의 외주화: 보이지 않는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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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로치 감독의 〈미안해요, 리키〉가 플랫폼 경제의 이면을 고발했다면, 이 영화는 한국적 맥락에서 간접고용의 구조를 들여다본다. 위험하고 힘든 일은 하청에게, 안전하고 편안한 자리는 원청이 차지하는 구조. 그 구조 안에서 누군가는 매일 목숨을 걸고 줄 위를 걷는다.


영화를 보고 나면 거리의 송전탑이 다르게 보인다. 당연했던 전기가 소중해진다. 그 인식의 변화가 이 영화가 만드는 가장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함께라는 것의 의미

막내가 없었다면 정은은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정은은 혼자서도 끝까지 버텼을 것이다. 그러나 막내라는 존재는, 혼자 버티는 것과 함께 버티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준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명제가 진부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영화는 그것을 이론이 아닌 인물과 장면으로 증명한다.


아쉬운 점

영화의 전개는 느리고 건조하다. 노동 영화의 미학적 선택이기도 하지만, 극적 재미를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진입 장벽이 될 수 있다.


또한 정은이 파견을 받게 된 구체적 배경이 영화 안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이것이 의도적 선택임을 알면서도, 맥락을 더 알고 싶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녀가 왜 이 회사에서 7년을 버텼는지, 파견 이전 그녀의 삶이 어떠했는지가 더 있었다면 감정 이입이 깊어졌을 것이다.


이 영화는 노동 영화이지만, 그것을 넘어 자기 존재를 지키는 것에 관한 영화다. 세상이 우리를 밀어낼 때,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붙잡을 것인가. 그리고 그 싸움에서 우리 곁의 '막내' 같은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보여준 영화 "나는 나를 허락하지 않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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