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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뮤즈 Mar 15. 2021

역류성 식도염 클럽

치킨을 못 먹는 삶



역류성 식도염 클럽


2월 중순쯤 어느 날, 우연히 클럽하우스의 룸들을 살펴보다가 '역류성 식도염 클럽'이라는 타이틀을 발견했다. 열명 조금 안 되는 사람들이 모인 룸엔, 의사 선생님으로 추정되는 한 분과 나머지 역류성 식도염러들의 대화가 한창이었다. 나 또한 얼떨결에 speaker에 합류해 나의 증상을 늘어놓았다. 보통은 들으면 미간을 찌푸리며 놀라고 믿을 수 없어하던 나의 증상들을, '역류성 식도염 클럽'의 멤버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공감하며 들었다. 더불어 다른 역식(역류성 식도염이 꽤 길어 줄여 부르곤 한다.)러 들의 증상이나 팁(?)도 들을 수 있었다. 구토가 나와도 최대한 참아야 하며, 식사 후 눕는 건 당연 절대 금지, 카페인은 독이고 양배추찜과 주스는 도움이 많이 된다.. 양배추환도 있다더라.. 등의 내용들. 아무튼 같은 괴로움을 공유하는 순간이란 조금은 웃기고 신선했다.



역류성 식도염을 위하여


'우웩'

터벅터벅 화장실로 걸어가 가슴팍을 두드리며 답답한 기운을 토해내던 밤.

4년 만에 다시 찾아온 역류성 식도염을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식사를 잘못해서 체한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밤마다 게워내기를 반복하며 연약한 소화력을 탓하면서도 어렴풋이 떠오르는 악몽. 역류성 식도염.



그렇게 2주를 고생하면서 역류성 식도염은 식습관과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하고 약은 정답이 아니라며 고집을 피웠다. 난 꽤 과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그렇다면 이 스트레스가 사라질 때면 역류성 식도염도 함께 사라지지 않겠냐는 오기 넘치는 논리였다. 하지만 결국 심해지는 증상에 두 손들고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은 별다른 진찰 하나 없이 나의 '역류성 식도염인 것 같아요'라는 말 한마디 듣더니 약 처방을 내리셨다. 그리고 몇 장의 종이를 쥐어주셨는데, 역류성 식도염의 A to Z를 써놓은 듯한 인쇄물이었다. 역류성 식도염에 좋지 않은 음식, 좋은 음식, 원인과 증상.. 등 이미 알지만 다시 읽어봐도 착잡한 내용들. 워낙 같은 이유로 찾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인쇄물을 꺼낸 박스에는 복사된 인쇄물들로 가득했다.



제일 맛있었던 샐러드 가게의 샐러드


약 처방을 받은 후, 나는 배달 음식 인생에서 풀떼기 인생으로 급하게 전환하였다. 아예 풀만 먹어야 하는 건 아니었지만, 대체로 당연히 야채는 건강을 살리는 식단이다. 두 달 정도의 재택 기간 동안 집 밖에도 잘 안 나가고 배달 음식과 레토르트 식품에 의존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몰려올 구토감이 두려워서라도 그런 생활과는 거리를 두고 싶었다. 당장 샐러드를 주문했다. 그리고 이후 한 달 동안 하루 한 끼는 샐러드와 샌드위치, 그릭요거트, 선식, 양배추즙.. 등의 건강한 식단으로 유지했다. 그래서인지 다 똑같던 풀 맛을 야채마다 구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한 달 내내 나는 약속도 거의 잡지 않고, 출근을 해서도 점심 식사는 사무실에서 혼자 건강한 식단을 먹으며 역류성 식도염을 위하여 살고 있다. 진짜로 살기 위해서.


'1일 1아메리카노'를 고수하던 인생에서 가장 참기 힘들었던 건 당연 커피였다. 나의 낙, 카페인을 포기해야 한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정말 다행히도 발전된 현대 사회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디카페인 커피가 있었고, 의사 선생님께서도 이는 허락하셨다. 누가 개발한 건진 몰라도 진짜로 감사합니다!




역류성 식도염


역류성 식도염은 우리나라 10%의 국민이 앓을 정도로 흔한 질병이라고 한다.

목의 이물감, 헛트림과 답답한 가슴, 구토 증상.. 아무튼 증상도 다양하게 불편한 질병이다. 한 번 증상이 시작되면 웬만해서 완치란 없으며 결과는 재발의 유무뿐이라는 슬픈 질병이기도 하다.


먹고 바로 눕는 습관,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을 즐기는 것, 과도한 스트레스.. 아무튼 너무 익숙하고 편해서 놓치곤 하는 습관들이 삶의 질을 얼마나 떨어뜨릴 수 있는지.. 


건강은 있을 때 지키는 게 정말 맞는 말이다. 

먹고 싶을 때 언제나 치킨을 먹을 수 있는 삶을 지키고 싶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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