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_42. 영화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
1.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은 여러 부담으로 어깨가 꽤 무거운 작품이다. 요즘 나오는 MCU 작품 중 어깨가 무겁지 않은 작품이 어디 있겠냐만,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은 그 부담이 조금 특별하다. 단순히 MCU 내에서 흥행이 된다, 안 된다 정도가 아니라, '판타스틱 4'라는 캐릭터가 영화로 받아들여지는 것 자체에서 오는 부담이기 때문이다.
2.
다들 알다시피 '판타스틱 4'는 이전에도 실사영화가 무려 4편이나 제작되었다. 최초 한 편은 애초에 공개가 되지 않았던 작품이니 그렇다고 쳐도 이후 3편에 대한 평가 또한 그렇게 좋지는 못했다. 2005년 제작된 영화 <판타스틱 4>는 그럭저럭 흥행은 성공했으나 이후 제작된 속편 <판타스틱 4: 실버서퍼의 위협>은 전편에 못 미치는 완성도로 시리즈 제작이 취소되었다. 이후 리부트되어 2015년 제작된 조시 트랭크 감독의 영화 <판타스틱 4>는 역대 히어로 장르 영화 역사상 최악의 평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악평을 받았다. 그나마 무난한 평가를 받았던 2005년 <판타스틱 4>를 제외하더라도 3편의 영화가 개봉 취소, 혹은 악평 속에 캔슬되었으니 이 캐릭터들에게 남은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은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캐릭터들의 입지를 생각했을 때 영화화 자체를 포기할 리는 없겠지만)
이런저런 불안과, 특히 2015년 <판타스틱 4>의 여파가 어느 정도 가셨다고 생각했는지, 10년 만에 새로운 '판타스틱 4'가 등장했다. MCU에 새로 편입되어 새 출발을 시작했는데, 이를 기념하듯(혹은 전과의 단절을 의미하듯) 부제 또한 '새로운 출발'로 달고 나타났다. 아무래도 이전 작품과 같은 방식으로는 더 이상 어필이 힘들 수도 있을 거라는 판단이 들어갔을 것이다.
3.
전작과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배경 설정이다.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의 시간적 배경은 1960년대로, 레트로퓨처리즘을 영화의 중요한 키포인트로 잡는다. 1960년대의 향수를 느낄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극단적으로 과학이 발달된, 말 그대로 '복고적인 미래'의 이미지를 충분히 묘사한다. 이를 위해 일상 속 여러 소품들과 세트를 현대 시점과는 색다르게 꾸며냈는데 이는 굉장히 성공적으로 시간 배경을 조성한다. 특히 비서 로봇으로 등장하는 '허비'는 이런 복고적인 과학기술 분위기를 물씬 머금고 있어 등장할 때마다 레트로퓨처리즘을 표방한 영화의 노선을 확실히 각인시켜준다.
이후 얘기할 수 있는 호평들도 대부분 이 '레트로퓨처리즘'에 기인한다. 사운드트랙의 경우, 1960년대 미래의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를 느낄 수 있도록 밝고 희망차고 경쾌한 음악으로 만들어 냈다. 최근 MCU 작품 중 이번 영화처럼 본편과 사운드트랙이 잘 어우러지게 만든 작품을 보지 못했다 느껴질 정도로 일체감이 느껴진다.
4.
또한 배경을 기존 세계관과 다른 지구-828로 옮겼는데, 이 또한 현명한 선택으로 보인다. 이 시리즈 자체가 어쩔 수 없이 하나의 팀업 영화로 수렴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상 타 작품과의 연계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기존 세계관과의 연계를 예고한 영상들까지 쿠키영상으로 나왔으니 이후부터는 더욱 적극적으로 연계될 것이다. 그럼에도 최소한 첫 번째 편만큼은 아예 다른 우주를 배경으로 오로지 '판타스틱 4'의 네 인물들을 소개하는 것에 집중하여 작 중 억지스러운 전개로 인한 질적 하락이나 관객들의 피로도를 줄일 수 있었다.
5.
반대로 아쉬운 점들 또한 물론 존재한다. 이쯤 되면 MCU의 고칠 생각 없는 고질병인 지나치게 허술한 결말이다. MCU 전반적으로 많은 영화들이 몰입을 잘 이끌어오다가 허무하게 결론짓고 '좋은 게 좋은 거지'하고 끝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이번 영화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극 중 압도적 힘을 가진 존재로 묘사되는 갤럭투스는 생각보다 쉽게 처리되며, 한동안 행적을 알 수 없던 실버서퍼가 캐릭터에 대한 몰입이 이루어지기 전에 급하게 갤럭투스와의 전투에 모습을 드러내 도움을 준다.
다른 우주로 간다는 둥, 지구를 옮긴다는 둥 거대한 스케일의 해결책을 모색하고, 범지구적인 갈등을 불러일으킨 것치고는 맥 빠지는 결말임은 부정할 수 없다. 이 범지구적인 갈등 또한 구체적인 해결책보다는 연설 한두 번쯤으로 봉합시킨다는 점에서도 갈등 해소 과정에 그다지 힘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다만, 이렇게 결말로 가는 과정에서 빠져버리는 힘이 제작사의 문제인 것인지, 아니면 개별 작품들이 모이고 보니 이런 문제점을 공통적으로 지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6.
결과적으로는 무난한 새 출발 역할은 충분히 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영화를 끌어들이는 것은 의미는 없다만 역대 '판타스틱 4' 영화들 중 가장 준수한 완성도를 보여준다는 것에서 지난 시간 동안 팬들 마음에 맺힌 한을 풀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영화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이 2025년 7월 개봉이었고, 큰 이변이 없는 이상 다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 개봉은 2026년 7월로 예정되어 있으니 1년이라는 긴 텀이 남았다. 디즈니+를 통해 공개되는 MCU 소속 드라마들도 2026년 개봉 예정이니, 올해 MCU 작품은 꽤 이른 시기인 7월에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로 마무리 짓게 된 것이다. 예전과 같이 MCU의 인기가 절정에 올랐을 때에도 이 정도 텀이면 마지막 작품이 어느 정도 터뜨려줘야 팬들 입장에서는 오랜 시간 기다릴 힘이 날 텐데, 그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오지는 못했다는 점에서도 아쉬움이 느껴진다. 어쩌면 개봉 시기가 조금 달랐더라면 오히려 더 평가가 높았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