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케어 (2020)
세상에 좋은 사람은 없다. ‘악녀’ 하면 무조건 떠오르는 캐릭터, <나를 찾아줘>의 에이미가 한 단계 레벨업해서 돌아왔다. 국민 나쁜 언니 로자먼드 파이크가 태연한 표정으로 침착하고 고요한 카리스마를 시전하는 독보적인 캐릭터를 만났다. 사실 로자먼드 파이크는 꾸준히 훌륭한 연기력을 보여줬지만, <나를 찾아줘>의 에이미 캐릭터가 너무 강렬해서인지 2014년 이후로 좀처럼 돋보이지 못했다. 센 캐릭터를 연기하기도 수차례, 영화 <퍼펙트 케어>로 드디어 에이미를 넘어설 배역이 그녀의 손에 들어왔다.
한때는 열심히 일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던 말라 그레이슨(로자먼드 파이크). 그러나 ‘열심히’만 살아서는 가난을 벗어날 수 없었고, 가난이 체질이 아니라고 판단한 말라는 기발한 사업을 고안했다. 그녀의 직업은 프로 후견인, 은퇴한 노인들을 요양원으로 보내고 재산을 처분하는 일을 담당한다. 후견인을 지정하는 재판도 수십 번 해봐서인지 담당 판사의 신임까지 얻었다. 대외적으로는 친절하고 믿을 만한 프로지만, 말라에게 걸렸다 하면 당신의 노후자금은 어느새 사라져 있을 것이다. 더 무서운 건, 그녀가 절대 법을 어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로자먼드 파이크의 '말라 그레이슨'이 <나를 찾아줘>의 '에이미'와 전혀 겹쳐 보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실망하기엔 이른 것이, <퍼펙트 케어>에서는 배우의 역동성까지 볼 수 있어 한시도 지루할 틈이 없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입을 잘 터는' 고급 사기꾼인 동시에 액션도 수준급, 사랑하는 애인 프랜(에이사 곤잘레스)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는 인물이다. 토론토 영화제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로자먼드 파이크는 말라 그레이슨에 대해 이제껏 맡은 배역 중 유일하게 두려움이 부재하는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동료 배우 에이사 곤잘레스와의 케미에 대해서도 덧붙였는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서로의 연기를 받아들여주었기 때문에 환상의 합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프랜 역의 에이사 곤잘레스는 라틴계의 배우인 자신은 오히려 주로 무자비하고 강한 역할을 맡아왔다며, 처음으로 두려움에 떨기도 하는 캐릭터를 연기해서 새로웠다고 한다. 이렇듯, <퍼펙트 케어>에서는 특정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편견 없는 시선으로 가능성을 열어놓았기에 무슨 일이든 납득할 수 있었다. 스토리의 가능성을 무한히 확장하는 동시에, 개연성을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이다.
감독인 J 블레이크슨은 요양원이 점점 늘어나는 현시대의 상황이 안타까운 동시에, 법을 살펴보면 분명 구멍이 있다는 점이 흥미로워서 영화를 구상할 수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법체계와 여러 번 줄타기를 하지만 결코 선을 넘지 않는, 똑똑하고 고상한 주인공이 탄생했다. 주연배우 외에도 인기 시리즈 [왕좌의 게임]에 출연했던 피터 딘클리지의 활약까지 더해져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심리전을 벌인다.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면서도 왠지 모르게 속이 시원해지는 경험을 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