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지직에서 스타크래프트를 본다는 것”

팬과 스트리머, 훈수와 콘텐츠 중심 사이에서

by 김새벽

치지직에서 스타크래프트가 유행하고 있다. –

치지직에서 스타크래프트가 엄청난 시청자를 끌어 모으며 시청자 수 1,2위 행진을 달리고 있다. 스타크래프트를 오랫동안 좋아해 온 입장에서 정말 재밌게 지켜보며 근래 몇 주는 치지직에서 살았다.

스트리머가 실수를 하든 말든, 점점 실력이 늘어가는 과정이 재밌으며, 시청자와 함께하는 콘텐츠도 많아서 스타크래프트의 새로운 바람이 부는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보다 보니, 조금씩 피로감이 쌓이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조심스레 글을 적어본다.


1. 모두가 감독, 모두가 해설자인 채팅창

초보 스트리머가 실력을 키워가려는 시점부터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시청자들의 훈수가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단순한 조언을 넘어선 잘못된 훈수까지 난무한다.

무엇이 옳은 피드백인지 구분하기 힘든 초보 스트리머 입장에선 모든 피드백이 괴롭다. 그리고 보는 입장에서도 점점 불편해진다.


물론 스타가 오래된 1:1 게임이라, 소통 방식이 한정적이라는 점은 이해한다.

장기판에 어르신들이 몰려들어 훈수 두듯, 이 생태계도 그런 문화 속에 있긴 하다.


하지만 가끔은 좀 위험해 보이는 장면도 있었다.


스트리머와 하루 종일 연도기(연습 도와주는 기계)를 잡아주던 시청자가 훈수의 농도가 점차 짙어지더니,

음성통화로 피드백도 가능하다는 적극적인 방식을 보고, 약간 선을 넘는 느낌을 받았을 때도 있었다.

팬심일 수도 있겠지만, 소통의 과정에서 팬과 스트리머 사이의 관계가 이상하게 비틀리는 순간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2. 문제는, 게임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중심축’의 부재

이런 상황이 왜 생기는가?

결국 게임의 유불리를 정확하게 보고, 개인의 실력차에 맞춘 눈높이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중심인물'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치지직에도 초고수 시청자는 있다.

하지만 그들의 피드백은 채팅창 속 수많은 잡음에 묻힌다.

오히려, 옳은 말이라도 한마디를 더 보태는 게 스트리머에게 괴로울 것을 아니까, 아예 조언을 내뱉지 않는 아이러니한 현상도 발생한다.


나는 하이래더 1800 초반 유저다.(평상시 1700대)

나도 내가 진짜 못한다고 스스로 느끼며 스타를 해 왔다. 그런데 치지직 들어와서 래더 1000 이하 유저가 존재한다는 걸 처음 알았고,

그 정도로 지금의 치지직 스타 생태계는 난이도 분포도, 실력 분류도 엉켜 있다.

그러다 보니 래더점수 1700만 돼도 스트리머가 자신이 공부하는 빌드의 교보재 리플레이로 저장하고 싶다며

1700 vs 1700의 경기를 붙이기도 한다.

(본인도 직접 참여했지만, 사실 고수라고 참여한 게 조금 부끄러웠다. 고수가 얼마나 많은데…)


3. 고수 스트리머가 없다 = 콘텐츠 중심이 없다

치지직에도 스타 실력에 따른 계급표 같은 것이 있다.

하지만 0티어라고 초고수로 분류되는 사람들 대부분은 치지직이 주 무대가 아니다.

대부분 유튜브 중심 활동을 하거나, 동시송출만 살짝 걸어둔 수준이다.

즉, 치지직 내부에서 스타라는 게임의 뼈대를 정확히 보고 판단해 줄 '콘텐츠 중심축'이 부재한 것이다.

치지직이 부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당연한 결과이긴 하다.


결국 지금의 치지직 스타문화는

누가 기준을 잡아주는 것도 아니고, 누가 판단을 해주는 것도 아니다.

스트리머도 헤매고, 시청자도 헤매는 상황이 반복된다.


4. 다시 soop으로 돌아가봤다

보다가 피곤해서, 다시 스타크래프트 명가(?) SOOP으로 돌아와 처음 본 것은 BJ들의 스타크래프트 4:4 프로리그 콘텐츠다.

솔직히 마음이 너무 편해졌고, 고향에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생태계의 특징은 조잡한 훈수가 거의 없다. 왜냐하면 훈수를 둘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BJ들은 거의 프로게이머 출신이고, 아니더라도 연습생 혹은 아마 고수 라인이 디코에서 화면공유로 경기를 함께 본다.

그들이 게임을 정확히 봐주고, 비난할 부분은 시청자를 대신해서 정확하게 비난하며 시청자보다 먼저 선수 치기 때문에 시청자는 그냥 '보고 즐기기만' 하면 되는 입장이 자연스레 만들어진다.


그래서 시청자는 ‘게임’이 아니라 ‘사람’을 보는 단계로 한 층 발전한다.

플레이어가 어떤 마인드로 플레이하는지, 어떤 인간적인 심리를 거치는지.

스타크래프트만의 승부에 주목하고 감정이입하며, 그것이 곧 메인 콘텐츠가 된다.

즉, 각자가 선택한 종족 뒤에 있는 플레이어가 가진 스토리와 서사를 주목한다는 것이다.


SOOP 스타크래프트 대학대전에서 여자 BJ들이 게임 기본기가 부족하다고 해도,

시청자는 각 개인이 가진 스토리와 서사, 그리고 코치진들과 함께 준비한 빌드와 준비해 온 마인드의 짜임새를 본다. 유닛과 플레이 양상 속에 그 사람이 보인다.

게임을 정확히 봐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시청자와 콘텐츠의 관계는 더욱 고도화된다.

콘텐츠의 수준이 올라가면, 시청자의 수준도 올라간다.


훈수 대신 해설이 있고,

전략 대신 감정이 있고,

판단 대신 서사가 있다.

그래서 soop의 스타는 확실히 ‘보는 게 즐겁다’.


물론 soop이 무조건 좋다는 말은 아니다.

그쪽 문화도 뜯어보면 꽤나 하드 한 문제들이 있고, 그 얘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또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이어나가야 한다.

그건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고, 새롭게 떠오른 치지직의 스타크래프트 유행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보자.



5. 치지직은 아직 야생이다

치지직은 지금 스타판에서 ‘야생’ 단계에 있다.

시청자도, 스트리머도, 다 같이 배우는 중이다.

그래서 다소 날것이고, 그게 매력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피로하다.


특히 스타를 오래 봐온 사람에게는 더 그렇다.


이 현상이 단지 유행처럼 지나가는 것이라면 이 애증의 마음은 떠나보내야겠다.

하지만, 나는 스타가 정말 오래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이 글을 기록하고 있다.

스타는 아직도 살아 있고, 그걸 치지직에서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고 믿는다.

요즘처럼 오버워치, 롤, 발로란트 같은 팀 기반 게임이 주류인 시대에,

1:1로 인간 대 인간의 승부를 서사로 풀어낼 수 있는 게임은 아직까지 스타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 또한 스타크래프트 골수팬의 지나친 ‘게임성’ 강조일 수 있다.

분명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스타크래프트의 문화가 생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새로운 흐름이 생기기 위해서는 기존의 잡스러운 훈수 문화는 장애물이 된다는 것 정도는 분명히 할 수 있다.


훈수는 게임성과 실력에 초점이 맞춰진 언어다.


자기만의 게임 플레이를 보여주고 싶은 스트리머가 오죽하면

공지에 “제발 훈수두지 말아달라”라고 써놓겠는가.

그게 지금의 현실이다.

(시달림 끝에 내린 어떤 스트리머의 특단의 조치)





6. 그냥 혼자만의 낭만 – 여기서부턴 흘려듣자

치지직에서 언젠가 soop이랑 붙는 콘텐츠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soop vs 치지직. 서로 다른 이미지와 생태계가 서로에게 윈윈일 수도 있고,

서로가 가진 장단점을 부딪혀보고,

그러다 치지직 자체 리그도 생기고,

나중엔 ASL처럼 진지한 토너먼트가 열리는 날도 오고.

(그저 망상.)



7. 개인적으로 겪은 일

나도 치지직에서 스트리머 시참방 들어가서 소매 넣기 한 적 있다.(소매넣기 : 초보자인 상대를 위해 비등비등한 경기 양상을 만들어 완벽하게 져 주는 플레이, 상대방에게 자존감을 심어주는 플레이)

스트리머는 래더 900점대였고, 필살 파워 골리앗 빌드 연습 중이었다.


나는 그 빌드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황들을 미리 다 연출해 주면서,

일부러 져주고, 연습 환경 만들어주고, 그냥 진심으로 도와줬다. (뉴비 살리기)


근데 도네이션으로 자꾸

“발키리를 뽑아보자”, “삼룡이 가스 안 먹고 골리앗이 나옴?”

빌드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 한 이상한 훈수들이 계속 올라오더라.


그걸 다 받아내는 스트리머도 스트레스고,

그 상황을 지켜만 봐야 하는 나도 답답했다.

이걸 보면서 생각했다.


“아, 아직 이 생태계는 진짜 정리가 안 돼 있구나.”


8. 그래서 그냥, 이렇게 남겨본다

이 글은 치지직을 까기 위해 쓴 글이 아니다.

그저 스타를 오래 본 사람,

그리고 지금 이 플랫폼에서도 스타가 살아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한 번쯤 정리해두고 싶었던 이야기다.


누가 맞고, 누가 틀렸다는 얘기가 아니다.

누구를 비난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저, 스타가 앞으로도 잘 자리 잡았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