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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Mar 09. 2019

비트코인은 사기가 아니다

프롤로그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 점을 분명히 해두어야겠다. 이 책은 비트코인 투자나 유망한 코인을 선별하는 법, 블록체인 기술에 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역사, 정치, 경제, 사회 등을 다루는 종합 인문학 서적에 가깝다. 다만 기존의 인문학 서적과 다른 점이 있다면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이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또한 수많은 블록체인 지지자들이 믿어 의심치 않는 블록체인 기술의 긍정성이 아닌 부정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도 여타 블록체인 관련 서적들과 이 책의 다른 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비트코인이라는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으로 인해 우리가 새로운 디지털 제국주의의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알리고 싶다.

 

우선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다. 내가 비트코인을 처음 접한 것은 2017년 하반기이다. 그 당시 홍콩에 거주하고 있던 내게 한국에 있는 지인이 비트코인 투자를 권했고 이것을 계기로 나는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에는 김치 프리미엄이 (해외 거래소 비트코인 가격보다 한국 거래소 비트코인 가격이 높은 현상) 상당했고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해외 거래소에서 구매한 비트코인을 한국 거래소에서 비싸게 파는 차익거래를 손쉽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 나는 비트코인 투자에 회의적이었다. 왜냐하면 무섭게 폭등하는 비트코인 가격 차트를 보며 이 랠리가 얼마나 지속될지 의구심이 들었고, 평소에 재테크라고는 관심도 없던 지인들이 불나방처럼 투기열풍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며 이것이 곧 꺼질 버블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2017년 말부터 비트코인의 가격은 급락하기 시작했고 금전적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속출했다. 파티는 끝났다. 여태껏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번 사람들은 감옥에 갈 것이고 드디어 21세기 튤립 버블은 막을 내렸다. 당시에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비트코인에 투자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겼다.


그러나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글로벌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블록체인 사업에 뛰어든다는 뉴스가 끊이질 않았다. 게다가 피터 틸 (페이팔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 창업자), 마크 안드레센 (넷스케이프 창업자), 잭 도시 (트위터 창업자)와 같은 실리콘 밸리의 혁신가들이 비트코인에 대해 극찬하는 것을 보며 이것이 단순한 사기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기술 신봉론자들 뿐 아니라 니얼 퍼거슨 (금융 역사학자)이나 유발 하라리 (역사학자) 같은 세계적 석학들이 비트코인의 잠재력에 대해서 낙관적으로 평가하는 점을 보며 분명 내가 놓치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비트코인 및 블록체인과 관련된 책과 보고서를 닥치는 대로 읽었고 새로운 산업을 알아가는 재미에 흥분되기 시작했다. 탈중앙화, 분권화 등 블록체인의 특성을 나타내는 수식어 중에서 가장 나의 흥미를 끈 것은 ‘가치의 인터넷’이라는 표현이었다. 우리가 현재 정보를 주고받는 TCP/IP 기반의 인터넷이 ‘정보의 인터넷’이라면 이중 지불 문제를 방지하는 블록체인은 중개기관 없이 돈을 주고받을 수 있는 ‘가치의 인터넷’이라 할 수 있다. 나는 가치의 인터넷이 미래 금융 산업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 생각하며 블록체인의 바다에 뛰어들었다. 2000년에 터진 닷컴 버블 이후 인터넷으로 인류의 삶이 획기적으로 바뀌었듯이 (수많은 비관론자들의 저주에도 불구하고) 블록체인도 그러한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참고로 내가 이 분야를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은 책은 <블록체인 혁명, 돈 탭스콧, 알렉스 탭스콧 저>, <크립토 애셋, 암호 자산 시대가 온다, 크리스 버니스크, 잭 타터 저>, <화폐 혁명, 홍익희, 홍기대 저>, <넥스트 머니, 고란, 이용재 저>, <달러는 왜 비트코인을 싫어하는가, 사이페딘 아모스 저> 등이 있다.


태동기답게 아무런 법과 질서가 존재하지 않는 블록체인 산업은 그야말로 서부개척 시대를 방불케 했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가격이 폭등했을 때 차익실현을 해 인생 역전을 한 젊은 부자들은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러다 보니 장기적인 산업의 발전보다는 일확천금을 노리고 블록체인 업계에 뛰어든 사냥꾼, 투자자들을 현혹하는 협잡꾼들이 활개를 쳤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내가 느끼기에 블록체인 업계의 정보 비대칭성과 시장 참여자들의 도덕적 해이는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고무적인 것은 혁신적인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무주공산에서 비즈니스를 키워내는 개척자들이 전 세계에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이들의 도전 정신과 창의성은 내게 상당한 영감을 주었다. 마치 2000년대 초 인터넷 산업의 복합적인 분위기가 – 불확실성, 논쟁, 기대, 환희, 실망, 회의 - 그대로 블록체인 산업에서도 재현되는 것 같아 무척 흥미를 느꼈다.  


한편, 2017년 말 이후 디지털 자산 (비트코인 및 알트코인을 칭하는 용어는 가상화폐, 암호화폐, 암호 자산, 디지털 자산 등 다양하지만 앞으로 이 책에서는 디지털 자산으로 통일하도록 하겠다) 가격 폭락이 장기화되면서 블록체인 업계는 빙하기를 맞았다. 각종 사기 피해와 부작용이 부각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규제가 강화됐고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2018년 1월 법무부 장관은 거래소 폐쇄를 법안으로 준비 중이라고 발언했고 정부는 ICO를 금지하며 디지털 자산을 취급하는 업체들의 숨통을 조였다. 국내 정부는 “가상통화와 블록체인은 별개이다” (현재 글을 쓰고 있는 2019년 3월, 주요 선진국은 비트코인 및 알트코인을 디지털 자산 혹은 암호 자산으로 칭하며 금융 감독 기관이 관리하고 제도화하는 중이지만 한국 정부는 가상통화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며 이를 제도화하고 있지 않다)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디지털 자산은 죽이고 블록체인은 살리는 쪽으로 정책적 방향성을 확실히 정했다.


사실 국내 정부가 디지털 자산을 단순히 투기 수단으로 취급하며 배척하는 것은 일견 납득이 간다. 솔직히 말해서 현존하는 2,000개가 넘는 디지털 자산의 대부분은 쓸모가 없다. 좀 더 과격하게 말하자면, 10년 후 생존할 디지털 자산의 비율은 고작 10%가 안될 것이라는 점이 내 견해이다. 닷컴 버블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는 타당한 추론이다. 맥킨지에 따르면, 1997년부터 2000년 사이 898개의 ICT기업이 미국 증시에 상장됐지만 2010년까지 생존한 것은 이 중 오직 14%인 128개의 기업들뿐이었다. IPO 대비 훨씬 수월하게 자금조달을 했던 ICO의 허술함을 고려하면, 디지털 자산의 10년 후 생존율은 닷컴 버블 때 상장한 인터넷 기업보다 낮을 가능성이 높다.


미디어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디지털 자산의 존재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데 일조했다. 가장 이목을 끌었던 방송 중 하나는 2018년 1월 JTBC가 주최한 유시민 작가와 정재승 교수의 토론회였다. 여기에서 유시민 작가는 “비트코인은 현실적으로 사기”라고 발언하며 이를 바다이야기에 비유했고 특유의 언변으로 토론을 능수능란하게 주도했다. 비트코인을 옹호하는 입장인 나는 유시민 작가의 발언을 듣고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이 “2005년이 되면 인터넷이 경제에 미친 영향이 팩스보다 대단하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1998년에 말한 것이 떠올랐다. 물론 누가 옳았는지는 오로지 시간만이 답해줄 것이다.   


JTBC 토론회를 본 상당수의 시청자 및 관료들은 유시민 작가의 열변에 설득된 것처럼 보인다. 비트코인은 기술 신봉자들이 열광하는 혁신의 아이콘에서 야바위꾼들의 도박 수단으로 취급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투기 수요를 근절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자 블록체인 육성책에 디지털 자산 제도화를 쏙 빼버린 정부의 정책은 명분을 얻었다. 디지털 자산 가격 폭락이 장기화되자 정부의 정책은 더욱 정당성을 얻었다. 미디어는 각종 사기 피해를 다루며 역기능을 부각했고 디지털 자산을 취급하는 업체를 사회악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이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비트코인은 사기가 아니다. 비트코인이 사기면 디지털 자산을 제도화하고 있는 주요국 정부와 치밀하게 디지털 자산 관련 신규 사업을 진행 중인 다국적 기업들은 모조리 바보라는 말인가?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왈, "1000명의 사람이 어떤 조작된 이야기를 한 달 동안 믿으면 그것은 가짜 뉴스다. 반면에 10억 명의 사람이 1000년 동안 믿으면 그것은 종교다." 이를 조금 변형하자면, “비트코인을 100명이 믿으면 바다이야기지만 1억 명이 믿으면 돈이다.” 전 세계에서 비트코인을 쓸만한 경제적 가치를 지닌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다. 추후에 자세히 서술하겠지만 비트코인은 서서히 디지털 금으로 진화하는 중이고 우리는 어쩌면 비트코인 본위제의 출현을 목격할 수도 있다.


JTBC토론회에서 유시민 작가는 비트코인 도박판의 승자는 채굴, 거래소, 그리고 투기 자본을 운용하는 주체라고 주장했다. 이는 분명 날카로운 분석이지만 절반의 해석에 그친다. 우리는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현상을 해석할 필요가 있다. 비트코인 열풍으로 가장 큰 수혜를 보 것은 개인이나 기업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국가, 그중에서도 미국과 중국이다. 일찍이 중국은 비트코인 채굴 및 거래소 생태계를 장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 세계 블록체인 산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반면, 중국에 맞서기 위해 미국은 자국의 다국적 기업들을 앞세워 비트코인 도박판의 규칙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설계하고 있다. 그것도 굉장히 사악할 정도로 영리하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왜 페이스북은 왓츠앱 창업자들을 쫓아냈을까? 왜 애플은 골드만삭스와 파트너십을 맺었는가? 왜 제이피모건의 CEO 제이미 다이먼은 비트코인이 사기라고 한 자신의 발언을 후회한다고 했을까? 왜 스타벅스 창업자 하워드 슐츠는 대선 출마를 고려중이라고 했을까? 왜 인터컨티넨탈 익스체인지와 나스닥은 비트코인 실물 인수도 방식 선물 거래소에 집착하는가? 전직 NSA, CIA 요원이었던 스노든이 유출한 기밀문서에는 어떤 내용이 있는가? 왜 미국은 비트메인 (중국 최대 채굴 기업)에 관세 폭탄을 부과했는가? 왜 러시아의 독재자 푸틴은 서둘러 디지털 자산 법제화를 지시했는가? 왜 중국 인민은행은 디지털 화폐를 연구하는가? 중국이 전 세계 블록체인 특허를 싹쓸이하고 있는 상황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내 생각에 이 모든 것은 비트코인 및 블록체인과 연관이 있는데 책을 끝까지 읽은 독자들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탈중앙화라는 블록체인의 철학은 이미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그리고 각국의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 및 이윤 극대화를 위해 정부와 결탁할 수밖에 없는 다국적 기업들로 인해 이는 앞으로 더욱 변질될 것이다. 기술은 중립적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속한 제국의 성장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 기술을 활용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마련이다. 비트코인의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가 누구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비트코인이 탄생함으로써 새로운 디지털 제국주의의 시대가 개막했다는 점이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음모론자들은 사토시 나카모토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중국은 자국에 유리한 방식으로 비트코인을 활용하려 들 것이고 우리는 그들이 설계한 질서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과거, 현재, 미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는 특히 과거의 서술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것이기에, 역사가 전체 분량의 절반 정도를 차지할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해야만 현재를 명료하게 해석하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처칠이 남긴 “뒤를 멀리 돌아볼수록 앞을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다” 명언은 참으로 유효하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느끼는 가장 흥미로운 점은, 지금은 마땅한 시대적 흐름으로 여겨지는 역사의 궤적이 당시에는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변화였다는 것이다. 때문에 인간은 너무나 빈번하게 어리석은 (당시에는 합당하다고 생각했던) 실수를 저질러 왔고 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돌아봄으로써 새로운 디지털 제국주의 시대를 맞아 현재 전 세계에서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다 같이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비트코인의 미래 전망에 대한 가장 진실한 대답은 ‘잘 모른다’이다. 그러나 나는 비트코인을 사기로 치부하고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한국의 현 상황이 미래에 크나큰 역사적 과오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다. ‘세계화’와 ‘디지털화’라는 메가트렌드를 주도하는 미국과 중국이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판을 설계하고 규칙을 강요하면 사실상 나머지 국가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기민하게 대응해 다가올 변화의 파도에 올라탈 준비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익사하고 말 것이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어떤 대비를 해야 하는가? 부디 이 책을 계기로 모두가 지혜를 모아 다가올 변화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기를 바란다.


계획 중인 목차 (바뀔 수도 있음)

#1 진화하는 제국주의

#2 인터넷 - 디지털 제국주의 1.0

#3 비트코인,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4 비트코인 본위제

#5 총성 없는 전쟁 Ⅰ (기업)

#6 총성 없는 전쟁 Ⅱ (국가)

#7 블록체인 - 디지털 제국주의 2.0

#8 기로에 선 한국


추신. 정부의 블록체인 정책이 도저히 단시간에 바뀌지 않을 것 같아 답답한 마음에 책을 쓰기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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