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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Mar 10. 2019

최초의 제국

#1-1 진화하는 제국주의 

사람들이 흔히 하는 오해 중 하나는 제국주의가 근대 이후 서구권 열강을 중심으로 발발한 악랄하고 잔인한 전통이라는 것이다. 제국주의자는 최고의 악당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제국주의는 특정 민족이나 국가만의 특성이 아닌 인간의 원초적 본성에 기반한 것으로, 본인이 (혹은 그가 소속된 집단) 처한 상황에 따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뿐이다. 지난 수 천년 간 지구를 평정한 가장 일반적인 지배체계는 제국이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제국의 후예들이다. 우리에게는 제국주의자의 DNA가 있다. 우리의 조상들은 때로는 지배자의 신분으로, 때로는 피지배자의 신분으로 제국의 발전에 기여했다. 역사가 승리한 제국의 시민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과정에서 패자들의 정체성과 기억을 말끔히 지웠을 뿐이다.      

제국주의가 일반적인 이유는 인간의 원초적 본성과 연관이 있다. 많은 점에 있어서 인간은 원숭이와 결코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의 몸속에는 아프리카 초원을 누비던 수렵채집인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수컷 원숭이는 무리에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인기를 얻기 위해 힘자랑을 한다. 무리의 서열을 정하고 우두머리가 되어 뽐내는 것은 동물의 왕국에서 목격되는 지극히 보편적인 현상이고 이는 인간도 마찬가지다. 제국주의자들은 자신이 속한 제국과 본인을 동일시하고 다른 제국과 힘을 겨루며 서열을 정하고 싶어 한다. 힘겨루기에서 승리함으로써 나머지 모두를 자신의 제국에 확실하게 복종하게 만들고 우두머리로 군림하고 싶은 것이다. “무리에서 최고가 되어 보란 듯이 우쭐거리고 싶다”는 동물의 법칙은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따라서 시대에 따라 진화한 제국주의는 양식에 차이만 있을 뿐 앞으로도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제국이란 무엇인가? 제국이 되기 위한 조건은 단순한 인구 수나 영토의 크기가 아니다. 제국은 이질적인 배경을 가진 민족과 국가를 하나의 ‘표준화’된 문화체계로 지배하는 체제를 뜻한다. 최초의 제국은 기원전 2250년경 사르곤 대제의 아카드 제국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출현한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 만들어진 아카드 제국은 주변 도시 국가들을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사르곤 대제는 자신이 세상을 정복했다고 뽐냈을 테지만 사실상 그가 정복한 지역은 오늘날 이라크와 시리아 그리고 이란과 터키의 일부를 포함할 뿐이다. 영원히 번영을 구가할 줄 알았던 아카드 제국을 멸망하게 한 것은 자연이었다. 기후 건조화가 심해지자 곡창지대가 가뭄으로 말라버리고 사람들이 물과 먹을 것을 찾아 아카드 제국을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듯 제국의 붕괴는 외세의 침입이나 내부의 분열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가능하기에, 오늘의 패권국이 100년 후에도 그대로 그 지위를 유지할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거대한 제국이 탄생하는 것은 곧 ‘저들’이 ‘우리’가 되는 과정인데, 이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제국의 형성 -> 상이한 문화를 가진 제국끼리 충돌 (주로 전쟁) -> 한쪽의 승리 -> 승리한 제국의 문화가 식민지에 전파 -> 초기에는 이질적인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갈등을 겪지만 결국 식민지 시민들도 제국의 문화에 동화됨 -> 하나의 제국이라는 명분 하에 식민지 시민들이 동일한 지위를 요구 -> 제국의 시민 모두가 동일한 문화를 공유하고 공통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거대한 제국 형성” 즉, 전쟁에서 패한 식민지 시민들은 초기에는 침략자들과 상당한 갈등을 빚는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흐르고 식민지 시민들도 하나의 거대 제국에 편입되면서 정복자들과 더불어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우리’가 된다. 마치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한 카르타고인들이 초기에는 수치심과 탄압을 견뎌야 했지만 나중에 그들의 후손들은 로마인처럼 생각하고 로마인처럼 말하며 로마인처럼 행동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제국의 특징 중 하나는 지칠 줄 모르는 성장욕에 있다. 제국은 결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더 강력한 제국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제국을 이끄는 왕성한 정력을 가진 지도자들은 평생을 바쳐 강력한 제국의 건설에 헌신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진시황, 칭기즈 칸 등은 모두 시대와 지역만 달랐을 뿐 무자비할 정도로 성공적인 (이들은 제국 시민의 입장에서는 영웅이지만 식민지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학살자이다) 제국주의자들이었다. 제국주의자들은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항상 각종 대의명분과 역사적 사명을 들먹거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핑계일 뿐 사실은 언제나 제국의 성장이 이들의 최대 목적이다. 제국의 성장에 열렬히 헌신하는 제국주의자는 시대에 따라 지위를 달리 할 뿐 언제나 존재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과거에는 왕, 군주, 교황, 황제로 군림했던 제국주의자들이 오늘날 기업인과 정치인으로 그 모습을 바꾸었을 뿐이다. 


제국주의자들은 자신의 제국을 우월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우리 민족은 특별하다’, ‘우리가 모시는 신은 위대하다’와 같은 발상이 이런 예이다. 따라서 제국주의자들은 식민지 시민들을 더 나은 인간으로 교도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식민 지배가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진지하게 믿으며 침략과 착취를 정당화한다. 실제로 페르시아인들은 식민지 시민들에게 “우리가 너희를 정복하는 것은 다 너희를 위해서야”라고 주장했다. 페르시아 정복자들은 피지배자들이 위대한 페르시아 제국에 소속된 것을 영광으로 여기기를 원했다. 또한, 스페인과 포르투갈 제국의 침략자들은 중남미에서 금은을 착취하고 원주민을 학살하면서도 야만인들에게 올바른 종교를 전파시킨다고 굳게 믿었다. 


그렇다고 제국주의를 완전히 나쁘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누리는 다양한 문화적 유산은 곧 제국의 유산이다. 예를 들어,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타지마할은 오늘날 인도 아그라 지역 경제 활성화의 공신이지만, 이는 무굴 제국이 이 지역을 식민지로 만든 뒤 토착민을 학살하거나 노예로 부려먹으면서 세운 것이다. 또한 노예 노동력에 기반한 강성한 로마 제국이 없었다면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평생 물을 기르고 밭을 갈아야 했을 것이고 우리는 그의 위대한 사상을 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동안 실로 수많은 제국들이 탄생과 죽음을 반복했다. 로마제국, 중국 제국, 이슬람 제국처럼 오래 번성한 거대 제국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제국들은 금세 멸망하거나 살아남더라도 사실상 거대 제국들의 식민지 역할을 했다. 제국의 영토가 전 지구적으로 확장되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로마제국은 유럽과 북아프리카, 중국은 아시아, 이슬람은 중동 지역을 지배했을 뿐이다. 제국의 지도자들은 마침내 세상을 평정했고 더 이상 지배할 식민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만족을 모르던 그들의 야망도 한 풀 꺾인 것 같이 보였다. 15세기 모험심 강한 스페인, 포르투갈 탐험가들이 바다로 배를 띄우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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