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7월마다 학교에서 열리는 큰 전시(Rundgang)는 코로나로 무산되었고, 이렇게 또 지나가듯 싶었으나 10월 말에 열게 되었다. 독일은 수업하는 교수님 밑에서 전시를 하게 되는데, 나는 지난 일 년 동안 일러스트와 이것저것 다른 것들을 해보느라 회화수업을 거의 듣지 않아 전시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그림 하나는 전시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다. 너무 흔쾌히 OK라고 답장이 와서 그렇게 나도 전시를 하게 되었다.
사실 요즘 내내 일러스트나 디지털로만 작업을 했기에 그린 그림이랄 게 뭐가 없었다. 그림 하나를 회화과 공동 클라우드에 올리고 그냥 별생각 없이 다른 할 일들을 해왔는데 설치를 2-3일을 앞두고 전체 메일을 받았다. 각자 전시할 곳과 그림의 개수가 정리되어있었는데 내 이름 밑에는 4개에서 5개의 그림이 적혀있었다. 전시할 그림이 없던 터라 부랴 부랴 그림을 그리고 작업실이 따로 없어 집이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그렇게 일요일, 그림을 이고 지고 전시장에 가져다 놓았는데 교수님이 그림 더 없냐고 더 가져오라고 하셔서 순간 절망했다. 일단 집으로 다시 복귀를 했다. 너무 피곤했는지 쓰러지듯 잠들었고 새벽쯤에 일어나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월요일, 새롭게 그린 그림들을 또 가져다 놓고 배치를 하기 시작했다. 워낙 작은 사이즈의 그림이 많아서 자리를 배치하는데 애먹었다. 3-4시간 동안 못질하며 계속 위치를 보고 수정하고 확인했다. 햇빛이 가득할 때 나와서 집에 갈 때쯤에는 모든 게 어두캄캄했다.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 캔맥주 하나와 병맥주 그리고 쌀국수 컵누들을 사 가지고 집으로 왔다. 술을 거의 마시지는 않지만 왜 고된 노동 끝에 술 생각이 간절해지는지 알 것 같은 밤이었다. 요 근래 복작복작하고 바빴지만 행복했다.
다가오는 금, 토, 일 전시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