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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nja Feb 24. 2018

헬싱키의 회사원이 느끼는 소외감

부제: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요즘 핀란드 날씨는 극강 추위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영하 십도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영하 이십도 아래로 곤두박질 칠 준비를 하고 있다. 덕분에 지난 몇 주 동안 쉬지 않고 내렸던 눈들은 세상 구경을 오래 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저기 쌓여있는 조그만 눈 산들이 아직도 구정물이 되지 않고 오롯이 하얀 자태들을 뽐내고 있다. 두 뺨과 콧속이 아플 정도로 시리지만 아침에 햇살에 눈뜨고 해 질 녘 노을을 볼 수 있다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느끼는 요즘 나날이다.


동네 개울가가 얼었다. 사람들도 바다 위를 걸어 다닌다. (진짜임)


오늘은 핀란드에서 한국인, 아시아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지난 이야기들도 그랬지만, 이번 편은 더욱이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을 바탕으로 써 내려가는 글이라는 것을 염두해주셨으면 한다.



헬싱키에서 회사를 다니면서 인종 차별을 겪은 적이 있나요?
아직은 없어요. 달라서 느끼는 소외감은 있어요.



그럼 헬싱키에서 살면서 인종 차별을 겪은 적이 있나요?
있긴 있죠. 그런데 이 우주에 인종 차별이 없는 곳이 있나요?



우주라 칭한 것은, 곧 우리의 인종적 다름은 지구를 벗어날 것만 같기 때문. 우리가 외계인을 본다면 그들의 생김새나 말투로 그들을 차별하지 않을 것 같나? 말하고자 하는 바는, 주변에서 보던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을 봤을 때 어허 ㅡ 그대도 존엄성을 가진 또 하나의 생명체구나, 하고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거다.

깨랑 까랑 깨랑 까랑 인간들아! 그들도 우릴 차별할 듯



한국만 봐도 그렇다. 한국에서 일하는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다른 ‘부류’로 취급하며 무시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북유럽 국가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해보자면 핀란드 내에서 인종차별은 비교적 없는 편이다. 일단 핀인들은 자신의 감정적 의견을 겉으로 내보이지 않는 편이고 누군가의 겉모습으로 그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속으로 차별할지언정 겉으로 대놓고 표현할 가능성이 적다. 헬싱키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하면서 여러 국가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거나 어울릴 기회가 많았는데, 비교적 핀인들을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지 않는다. 나한테 어디에서 왔냐고 먼저 물어보는 사람도 거의 만나지 못한 것 같다. 하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많이 받았다.


예를 들어 한번은 여러 친구들과 함께 며칠 동안 함께 워크샵을 간 적이 있는데 후에 그곳에서 만난 어떤 여자아이를 우연히 학교에서 만났다는 이야기를 어느 친구가 했었다. 그 여자아이의 이름을 우리 모두 잘 기억을 하지 못했는데, 그 친구를 만났다는 두 명의 핀인 친구들은 그 여자아이를 설명하면서 끝까지 그 아이의 피부색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 그 아이는 흑인이었는데 그 친구들이 흑인이라고 설명했다면 우리 모두 단번에 알아챘겠지만, 우리는 그 아이가 썼던 안경테가 금테였고 말수가 적었지만 미소가 예쁜 아이라는 증거로 그 아이를 알아냈다.



오히려 다인종 국가에서 인종 차별이 많은 듯




나는 이전에 미국의 조지아주에 위치한 애틀란타에서 직장을 다녔던 경험이 있다. 애틀란타라는 도시 특성상 흑인과 백인 사이의 인종 차별에 대한 역사가 드라마틱하게 존재한다.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살던 곳이기도 하면서 백인 우월주의 집단인 KKK의 발생지이기도 하다. 사실 일할 때는 직업 상 다양한 사람들과 일할 기회도 많았고 업무는 업무인지라 백인 우월주의에 대한 차별적 문화를 느끼지 못했지만 오히려 친구들과 어울릴 때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 친구들은 제대로 교육을 받은, 그러니까 로스쿨에 다니거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많았는데, 나를 비롯한 다른 아시아인 친구가 있는 자리에서도 은연중에 다른 인종들을 비하하는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이 '은연중'이 무서운 듯) 나를 겨냥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다른 인종 문화를 비하하는 듯한 발언이 너무 거슬렸었다.


이처럼 오히려 다인종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이민자 문제와 더불어 인종차별적 문화가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프랑스인이나 독일인에게서 아시아인들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들은 적은 종종 있다. 물론 그들과 친해지기 시작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고 나면 나는 더 이상 그들에게 그냥 아시아인이 아니라 그들의 친구가 되기 때문에, 내가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안 이후에는 조심하지만 말이다. 이전에 프랑스계 회사에서 일할 때 나의 프랑스인 상사는 한국인에게 세금 관련 업무를 맡기기를 꺼려했었다. 한국인이 프랑스인보다 일을 못하고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딱 두 달 뒤에 그는 놀라고 말았다. 빠르고 정확한 업무처리에 올랄라를 외치게 된 거지. 그 보스는 세상의 중심이 파리라고 믿는 프랑스인이기에 그 이후에도 모든 면에서 프랑스인들이 우월하다고 생각은 했겠지만, 종종 (말싸움에 가까운) 토론을 통해서 그 우월성의 많은 면을 논리적으로 증빙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거다.


https://youtu.be/XnwOEaRByh4

진짜 재밌게 봤던 프랑스 영화. 평범한 프랑스인 사위를 얻고 싶은 아버지와 다양한 인종의 사위들 이야기.



여기에서도 차별은 존재한다

개인적으로 경험했던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이곳 핀란드에서는 비교적으로 인종차별을 겪을 일이 없었다. 그리고 교육을 받은 정상적 사고를 하는 성인의 경우에는 다른 인종에 대한 매너를 이미 뇌 속에 탑재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이민자 비율이 그리 크지도 않아서일까. 그렇다고 이곳 사람들이 인종 차별을 전혀 하지 않을까? 아니다. 원래부터 여기에 살아왔던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겉모습에 대한 이질감, 그리고 역사적으로 이어져온 백인들의 우월적 마인드는 무시할 수 없다. 아직까지 나는 운이 좋게도 그런 차별을 받아본 적이 없지만, 주변 아시아계, 남미계 친구들이 차별을 받아본 적이 있다고 들었다. ‘너를 상대하기 싫다’는 듯한 반응을 대놓고 아시아계 사람들에게만 한다던가 하는. 멕시코에서 유학 온 한 친구는 부모님이 마약을 팔아서 여기 올 수 있었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마약같은 소리하고 있네. 도끼 어딨니? 니, 내 누군지 아니?


또 언어와 문화적 장벽에서 기인하는 의사소통의 부재에서 오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공부할 때나 일을 할 때 보면, 대체적으로 아시아인들의 영어실력이 여타 다른 유럽인들에 비해 유창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팀워크를 할 때도 대체적으로 아시아인들이 비교적 조용하거나 자기 의견을 제대로 제시하지 않기도 하고, 그저 듣기만 하는 수동적인 모습을 많이 보았다. 그러다 보니 비교적 친해질 기회도 적어지고 그 친구들이 하는 생각에 대해 알기가 어렵다. 그래서 같이 팀워크를 하면 의견은 말이 편하고 자기주장이 센 유럽애들이 던지고, 말 수 적고 일을 열심히 하는 중국인이나 한국인이 실질적 태스크를 묵묵히 해내는 경우를 종종 봤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시아에서 온 친구들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이 생기기 마련인 거다.


여기에서 지내는 다른 한국인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해서 답답해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물론 ‘말하지 않아도 아는’ 마음적 마음과 느낌적 느낌이 있지만, 일할 때에는 논리적인 자기 입장이 있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꿰뚫어 보는 관심법은 지난 고려시대 말 궁예만 가진 것.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ㅡ   네 놈 머리 속에는 마구니가 꼈다!!


말을 해야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외국에서 일하려면 그 직장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적어도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직장 생활이 편하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살아남기에도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이건 외국어에서 뿐 아니라, 모국어로도 익히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배려하면서도 논리 정연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줄 아는 화술은 사회생활의 좋은 무기가 된다.



우린 같은 시대를 다른 곳에서 살았군요


또 유럽인들과 유년기에 공유하는 문화가 정말 다르기 때문에 문화적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유럽 전반적으로 공유하는 그 시대를 향유하는 음악, 아티스트, 패션에 대한 기준이 있다. 유럽뿐 아니라, 남미지역 또한 북미 문화를 전반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이걸 보면 아시아권 국가들이 얼마나 독자적 문화를 우리끼리 잘 공유하고 또 풍부한 콘텐츠가 많은지 알 수 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음악을 공유하는 한 페이스북 그룹이 있는데, 그들이 말하는 2000년대 초반은 내가 아는 2000년대와 많이 다르다.


우린 토토가 보면서 울컥한단 말이다.....


음악뿐 아니라 TV show, 아티스트 이름에서 나는 기억 못 하는 많은 할리우드 셀럽들의 이야기들을 그들은 지들 나라 연예인처럼 말한다. 그래서 같이 가라오케를 가도 굳이 핀어로 된 노래가 아니라 팝송을 불러도 얘네가 지네 때 유행한 그런 팝송이 있는 거다. 그리고 나를 제외한 모든 유럽인들이 그 노래를 안다. (생각해보니 그냥 세대차인가…? 엔싱크와 보이즈 투맨은 그들에게 단군조선급)


아... 세대 차이....


포켓몬도 그렇다. 얘네가 부르는 포켓몬 이름은 북미권에 수출된 이름인데 파이리 꼬부기 이런 귀여운 이름이랑 매우 다르다!! 그래서 포켓몬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나를 제외한 다른 모든 아이들이 하나가 된다. 꼬부기는 꼬부기처럼 생겼는데 왜 Squirtle이냐... 내가 꼬부기 이름을 가르치자 충격을 받았던 다수 핀인 친구들의 얼굴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Hi I am Squirtle! 안녕? 나는 꼬부기야. 꼬부기란 이름 넘나 찰떡같이 잘 어울리는데.


이런 문화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가끔 친구들과의 대화에 너무 신명 나게 참여하지 못해서 소외감을 느낄 때도 있지만 사회생활로 돌아가 업무를 할 때 인종차별적인 부분이 있냐고 물어보면, 아직까진 없다. 그리고 없을 것 같다. 내가 나중에 매니저급이 되어서 임원이 되고 싶은데! 그때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유리천장이 존재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지금까지는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없다. 오히려 나에게 한국어를 배우려는 옆자리 동료 아저씨도 있다. 아침마다 나한테 ‘좋은 아침~’으로 인사해준다. 처음에 말했을 때 최나친? 무슨 사람인 줄 알고 그게 누구냐고 물어봤었다.


응? 최나친이 누구야?


외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불편함은 어디에서나 존재하니까. 그리고 어쨌든 나는 이 곳에서 이방인이니까.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평생 산 내 친구도 한국인 얼굴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너 어디에서 왔냐는 질문을 아직까지도 받아본 적이 있다고 한다.


어디서 왔니? 어, 나 DC. 아니, 어디에서 왔냐고. DC라고. 아니 그러니까~~ 아이씨 나 DC에서 태어났다!!!! (워싱턴DC를 말한다)


지구촌 마을이란 단어가 고리타분할 정도로 세계화의 속도는 빠르게 진행 중이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서로 아주 많이 다르다. 핀란드는 비. 교. 적. 차별이 덜하긴 하지만 시내 중심부를 벗어난 동네에서 꼬마들이 멀리서 곤니찌와~ 하는 경우를 본 적도 있다. 마치 10년 전 프랑스 여행을 했을 때 파리에서 곤니찌와 니하오를 수없이 들었던 것처럼. 점점 나아지려나 싶지만 지금 미국의 꼴이나 각종 테러를 보면 오히려 이상한 몰골의 극으로 우리는 달려가고 있는 것 같다.



헬싱키에서 사는 한국인이 겪는 차별과 소외감 편

핀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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