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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oung Jun 07. 2018

대치동과 헬싱키

배울건 핀란드의 태도(1) 

2015년 3월, 새학기가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아 대치동에 갔다. 정확히 말하면 오후 4시쯤 대치동 학원가의 맥도날드, 롯데리아, 버거킹에 갔다. 학교 수업을 마친 중고등학생들이 패스트푸드점마다 들어차 있었다. 아마도 햄버거를 먹고 근처 학원에 가서 밤10시까지 공부할 모양이었다.(서울시는 학원 문 닫는 시간을 밤 10시로 정하고 있다.) 청소년이 햄버거 따위로 저녁을 때운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나도 고등학교 때 저녁 시간마다 치즈떡볶이 집으로 달려갔기 때문이다.  


놀라운 점은 따로 있었다. 혈기왕성한 아이들로 가득찬 방과후 햄버거 가게가 조용했다. 아이들은 떠들거나 장난치지 않았다. 일분일초도 아깝다는 듯이 공부하고 있었다. 누가 감시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귀에 이어폰을 낀 채 영어 듣기 문제를 푸는 학생, 수학 문제에 집중하느라 왼손에 든 햄버거에서 야채가 흘러내리는 줄도 모르는 학생... 말을 걸기가 조심스러울 정도였다. 


착해보이는(만만해 보이는) 중3 남학생 넷이 앉은 테이블에 가 물었다. "맨날 햄버거만 먹나요? 매일 이렇게 조용한가요? 아직 시험기간도 아닌데 다들 맹렬한 기세로 공부하네요" 하고. 한 학생이 잠시 연필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학원 숙제를 학교에서 다 못해서요." 학교에서도 학원에서 내준 숙제를 하다가, 미처 끝내지 못해 학원 수업 시작 직전까지 쉬지도 못하고 공부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다른 남학생이 말했다. "맨날 햄버거만 먹는건 아니에요. 옆에 떡볶이집도 있고 어떤날은 찌개에 밥도 먹어요!" 밥상 위에 놓인 책을 들춰보니 고등학교 과정 수학 문제집이었다. 나는 이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내가 왜 서울대를 못갔는지 알겠다'고. 

     

/2017년 4월 핀란드의 한 초등학교 교실

그리고 2017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만난 중3 올리버(15)군이 말했다. "사교육요? 사립학교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사교육 받은 적이 있느냐"는 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은 것이다. 만화 그리는 게 취미라 학교에서 방과 후 미술 활동을 한 적은 있지만, 국·영·수 학원에 다녀본 적은 없다. 사실 학원이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 그런 곳에 다닌다는 친구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고교 진학을 앞둔 올리버의 하루 일과는 이랬다. 오전 9~10시쯤 학교에 갔다가 오후 3시쯤 귀가한다. 집에 오면 숙제를 한다. 보통 30분에서 1시간쯤 걸린다. 이후로는 자유 시간이다. 도서관에서 좋아하는 판타지 소설을 빌려 보거나 친구들과 컴퓨터 게임을 한다. 강아지 산책시키기도 올리버의 몫이다. 늦어도 밤 11시에는 잠자리에 든다. 물론 학기말 시험 기간엔 만사 제쳐두고 공부를 한다. 올리버는 "과목별로 요점을 정리한 뒤 내 생각이나 느낀 점을 덧붙여 써본다"고 했다. 수업에서 배운 주제에 대해 에세이를 쓰는 게 시험이기 때문이다.



핀란드와 한국은 둘 다 OECD 학업성취도평가에서 꾸준히 최상위권에 있는 교육 강국이다. 그러나 사교육에 관한 한 두 나라는 극과 극이다. OECD의 '2012 PISA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의 사교육 참여 시간 평균은 주당 3.6시간에 이른다. OECD 회원국 중 가장 길다. 핀란드의 사교육 시간은 주당 6분으로 가장 짧았다. 사교육이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물리적으로 공부를 두배쯤 더 하는데 비슷한 성적이라면, 우리 교육이 핀란드에 두배 뒤처진다는 이야기 아닌가.  '사교육을 다시 생각하다'라는 기획에 핀란드 이야기를 주문받아 기사를 쓰면서, 나는 어쩐지 자존심이 상했다.


핀란드 애들은 정말 이렇게 살짝 공부하고도 성적이 잘나오는 거야?  핀란드 학부모들은 왜 자녀들에게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거지? 우리는 그럼 뭘 바꿔야 하는거야? 궁금했다. 


한마디로 하면, 핀란드에서도 좋은 성적을 받으려면 열일 제치고 공부를 해야 한다. 핀란드 중·고교에도 시험은 있다. 과목별 학기말 시험도 있고, 선발 고사를 보는 고등학교도 있다. 고교 과정을 마치면 '국가 대입자격시험'을 보고 대학별 고사도 따로 치른다. 그런데 시험 형식이 다르다. 여러 보기 가운데 맞는 것 또는 틀리는 것을 고르는 선다형 문제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주관식 혹은 서술형 문제가 주를 이룬다. 주어진 주제에 대해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써내려가야 하는 핀란드식 시험에서 달달 외우기, 문제 많이 풀기, 실수 안 하기를 가르치는 한국식 사교육은 힘을 쓰기 어려운 것이다. 성적표에서 지필고사 점수가 차지하는 비율도 낮다.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태도,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 친구들과의 협동심이 더 중요한 평가 기준이다. 학교 끝나고 부리나케 학원으로 달려가는 것보다는 학교에 있을 때 토론이나 발표에 열심히 손 들고 참여하는 것이 좋은 평가를 받는 지름길이다. 성적표도 학생들을 일렬로 줄 세우거나 A·B·C로 등급을 매기는 대신, 장단점 등을 서술형으로 기록한다.


교육팀에서 3년쯤 일하면서 나는 '평가 방법이 바뀌어야 수업이 바뀌고, 수업이 바뀌어야 학생과 학부모가 바뀌고, 그래야 사교육이 없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 아이들 인생에 가장 큰 평가는 대학 입시다. 대학 입시는 아이들이 자기 흥미에 따라 원하는 만큼 공부하다 어느 순간 '폭발점'을 찾을수 있도록 도와주는 형태여야 한다.


왜 우리 교육은 효율성이 떨어지는 걸까. 고민을 거듭하던 중 류선정 핀란드교육연구소장님과 대화를 나누다 유레카를 얻었다. 소장님의 설명은 이랬다. 한 학기 동안 배워야 할 학습량이 100이라고 하자. 한국 학교에서는 100을 10으로 쪼개서, 순서대로 10 배울때마다 테스트를 한다. 숫자로 평가 결과가 나온다. 아이는 10을 달달 외우고 테스트받고, 다음 10으로 넘어가 또 달달 외운다. 그러다보면 마지막 10을 배울땐 앞에 한 30은 기억이 안난다. 그러니 100을 모두 채우기 위해서 6년 혹은 12년을 같은 짓을 반복한다. 내가 했던 짓이다.  


지금 나이 40쯤 된 한 선배가 그랬다. 자기는 국민학교 때 고등학교 수학 문제집까지 풀 줄 아는 똑똑한 아이였지만, 평생 수학에 흥미를 가져본 적이 없다고. 지금은 수학과는 1도 관련없는 삶을 살고 있다. 다시 말해 초딩 때도 고딩 문제를 풀고, 고딩 때도 고딩 문제를 풀고, 대학가면 싹 까먹어버리면 되는게 한국식 교육이다.


핀란드 학교에서는 100을 순서대로 배우지 않는다. 선생님에 따라, 학급과 아이의 수준에 따라 학습 진도와 방법이 달라진다. 강의로 절반, 나머지 절반은 게임으로 3분의 1, 실생활에서 활용되는 예를 찾아보면서 3분의 1, 토론이나 발표하면서 3분의 1. 동시다발적이다. 아이들은 여러 방법 중 관심가는 걸 열심히 하면 되고, 선생님은 아이가 어떤 방식의 수업에 흥미를 느끼는지, 그럴때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는지를 성적표에 적어준다. 최근 한국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학생부종합전형과 취지와 방식이 비슷하다. 


그러다보면 어떤 아이는 수학에서, 혹은 사회에서, 과학에서 자기가 더 공부하고 싶은걸 찾아내고, 집에서 혼자 공부한다. 그 시간은 사교육 시간에도 공교육 시간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공부한다'는 의식도 없이 빠져들고, 그러다 어느 순간 지식이 폭발적으로 확장한다.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하는 훌륭한 인재가 된다'. 이게 한국 사람들이 그토록 알고 싶어하는 핀란드 교육의 비밀이다. 물론 전혀 비밀스럽지 않다. 비밀로 간직하고 실현시키지 않을 뿐이지.  (20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24/20170324002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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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자, 前 핀란드 특파원(2016.11~2017.10) 28세에 핀란드에 갔다가 1년 만에 돌아왔더니 31세가 됐다. 성게알을 먹으면 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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