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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제 Sep 09. 2024

서른 가지의 꿈, 서른까지의 꿈

1살부터 30살까지, 일련의 꿈의 기록

평소보다 눈이 일찍 떠진 늦여름의 아침이다. 여느 아침처럼 플라스틱병의 뚜껑을 열어 미지근한 생수를 마시고, 작게 기지개를 켠 뒤 창문 밖을 바라본다. 얼마 전 준공되어 입주가 시작된 힐스테이트가 풍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저 건물이 생기기 전에 이 집에 살았다면 조금은 더 좋았을까. 아니면 서향이라서 길게 들이치는 햇빛이 눈을 더 괴롭혔으려나. 궁금하다.


서재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이곳저곳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염탐한다. 퇴사한 뒤 가장 먼저 생긴 새로운 습관이다. 오늘은 어떤 글을 발굴할 수 있으려나, 흥미로운 주제가 있나.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대단해. 나만 몰랐던 이야기, 알 수 없었던 이야기 같은 것들을 찾다가 이내 오늘도 같은 질문에 도달한다.


- 나는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까.




어젯밤, 파트너이자 룸메이트인 K와 맥주를 마셨다. 땅콩이 먹고 싶다고 하루종일 노래를 불렀던 터라, 네이버 지도 속을 한참 헤맨 끝에 반건조오징어에 땅콩을 조금 담아서 주는 집을 찾아냈다(그냥 집 앞 편의점에서 사 먹었어도 됐을 것 같다). 며칠 전 퇴사한(정확히는 퇴사일을 기다리고 있는) 나는 최근 술만 마시면 나도 답을 알지 못하는 질문을 K에게 항상 해댔다.


"그래서 나 무슨 글을 쓰면 좋을까?"

"글쎄…? 일단 습작부터 많이 써보면 좋지 않을까?"

"습작? 습작은 무슨 주제로 써야 하는데?"

"딱히 정해진 건 없지. 연습하고 배우는 게 중요하니까."


배우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듣자 가슴이 순간 턱 막혀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반신경질적으로 되물었다.


"뭘 더 배워야 하는데?"

"응? 아니, 글 쓰는 건 처음이니까. 글쓰기 스킬이나 어떤 주제로 써야 흥미를 돋울 수 있는지 같은 것들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 그런가?"

"내 친구 중에 출판 업계에서 일하는 애 있는데 한 번 만나볼래?"

"아냐, 괜찮아."


왜 그랬을까. 인생은 배움의 연속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배움이 없는 삶은 지속되기 어려울지 모른다. 정확히는 정체되고, 같은 일상이 되풀이되겠지. 무언가 배우는 것을 그다지 싫어하진 않는 나인데, 이상하만치 애매한 거부감이 들었다.


"일단은 글을 좀 써보고 싶어."

"그래, 습작을 써보라니까."

"아니, 습작 말고. 글."

"글? 무슨 글?"

"그냥, 글."




그리고 어제 잠들기 전부터 오늘 아침까지, 다시금 질문을 계속해서 되뇌어보았다. 무슨 글을 써야 할까. 왜 그런 거부감이 들었을까. 왜 퇴사하고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이 글쓰기였을까. 그러다 문득 찾아온 말.


- 한 번쯤 정리할 때가 된 게 아닐까?


나는 이제 곧 만으로 서른 살을 앞두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기대수명을 보았을 때 인생의 삼분의 일 정도를 산 셈이다. 나름 바쁘게 살아왔고, 많은 직업과 경험을 거쳤고, 그보다 많은 수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왔다. 그리고 이 모든 생각들은 내 머릿속 어딘가를 정리되지 않은 채 표류하고 있다. 이들을 가지런히 정리해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전부는 아니더라도, 중요한 것들만이라도.


그럼 무엇을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여 어떤 방식으로 정리할까? 늘 계획을 세우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가장 먼저 든 질문이었다. 새로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 이제까지 배워온 걸 정리하면 어떨까. 내가 이제까지 배운 걸 세어보면 정말 많을 텐데(그렇지 않다). 직업을 기준으로 나눠볼까. … 꿈은 어때?


사람은 누구나 꿈이란 걸 갖고 있다. 누구에게나 "너는 꿈이 뭐야?"라고 물으면, 각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자신의 꿈을 내놓는다. 약간 두루뭉술한 표정을 지으면서. 어린 시절의 나에게도 꿈이 있었고, 때때로 변했고, 오랫동안 간직도 해봤지만 결국 이루지 못한 꿈,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도 꿈이 있다.


꿈은 내가 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가보고 싶은 곳, 해보고 싶은 무언가 등으로 설명된다. 지금 당장 내 꿈이 뭐냐고 묻는다면, 글쎄, 행복한 가족 만들기? 결국 꿈은 삶에 반영되어 변화를 만들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왔을 것이다. 그때의 내 선택들은 모두 그때의 꿈을 위해서 했을 테니까.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꿈꿔왔던 것들, 그 시간 속의 내 삶, 내가 마주했던 상황과 시련, 기쁨과 성공, 그리고 슬픔과 행복까지. 나에겐 정리해 나가는 글이겠지만, 누군가에겐 타인의 꿈을 얕게나마 간접적으로 경험해 보고, 공감도 해보고, 또 어쩌면 위로도 받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되길 바라면서 조심스럽게 글을 써보고 싶다.




조금은 생각이 정리되었고, 무슨 글을 쓸지 정했다. 새벽부터 하늘을 가득 메우던 구름이 어느새 걷혀있다. 이제 곧 K가 일어날 시간이다.




p.s) 힐스테이트는 알루미늄복합패널로 외장 마감되어 있는데, 덕분에 우리 집은 서향인데도 불구하고 아침마다 힐스테이트에 반사된 햇빛이 밝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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