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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붕 May 01. 2024

나는 동생을 질투했다.

동생 - 2

나를 키우며 육아에 대한 경험이 생긴

엄마와 아빠는 동생을 엄하게 키우지 않았다.

동생의 건강이 안 좋게 태어난 뒤로

아빠가 담배 피우는 순간은

냄새로도, 눈으로도 확인할 수 없었다.

동생은 물을 흘려도 혼나지 않았고,

크게 잘못했을 때만 혼났다.

이런 장면들은 어린 나에겐 충격이었다.

'엄마랑 아빠는 동생만 좋아해'라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엄마의 관심을 끌어보려 일부러

나도 관심끌 만한 행동을 던 것 같다.

... 동생이 부러웠다.

그렇게 유하게 자란 동생은 커가면서 점차

엄하게 자라온 나와는 다르게 머리회전에도

한계가 없졌다.

나보다 큰 그림을 더 잘 봤다.

또 다른 점은 나는 무조건 "A면 A다!"라고

배우고 생각하고 행동했다면,

동생은 "A가 된다면 A'도 되는 거 아냐?

왜 꼭 A여야 해?" 이런 느낌이었다.

엄마는 이런 나를 보고

"하나를 알면 하나밖에 모른다"라고 말했다.

내가 했을 땐 안된다며 했던 것이

동생은 됐기 때문에 동생한테

안된다고 했던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경우도 있었다.

틀 안에 갇혀있는 나와는 다르게 그런 동생은

친척집 어딜 가나 야무지다며 

칭찬을 듣기 일쑤였고, 예쁨을 받았다.

반대로 나는 비교를 당하기 시작했다.

"얘는 야무지지 못해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려나 몰라."

항상 저 말은 내 뒤를 쫓아다니는

꼬리표가 되었다.

"누나"라는 그 울림이 이젠 너무 싫었다.

그 비뚤어진 마음은 곧 괴롭힘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동생을 때리고 꼬집고 밀었다.

나한테도 언니나 오빠가 있었으면 했다.

나도 누군가한테 기대고 싶었다.

의지할 곳 없다고 생각한

나는 동생을 괴롭히고 미워했다.

그 재능과 자유로움이 내 거였으면 했다.

그 관심도 원래 내 거였는데.

그런 어린 시절에 내게 관심을 주시던 건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였다.

모두가 동생에게 집중할 때 할머니는

내게 관심을 주셨고 예뻐해 주셨다.

할머니 앞에선 동생을 괴롭힐 필요도 없었다.

동생처럼 나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편하게 있을 수 있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의아하게 생각했다.

"얘는 왜 여기만 오면 동생을 안 괴롭히냐?

참 신기한 애네."라고 말했을 정도.

이때부터 '내 거'라는 것에 대한 소유욕이

강해졌던 것 같다.

동생이랑 같이 물건을 쓰는 것도 싫어서

나는 안 쓰던 떼까지 써가며

내 것도 사달라고 했다.

"이것도 저것도 다 내 거야!

내 거니까 아무도 손 대면 안돼!"

그 감각이 주는 만족감과 안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동생이 유치원생이 되고,

나는 초등학생이 됐을 때였다.

그 당시에 유명했던 게임기를

아빠가 야심 차게 내게 사줬다.

그 당시에 중고로 8만 원대였.

원가로는 10만 원 넘게 웃돌았다.

동생은 그런 내가 부러웠는지 떼를 쓰며

게임기를 사용하게 되었다.

엄마랑 아빠는

"동생이 한다는데 좀 양보해 줘라~"이러면서

내게 양보를 강요했다.

하는 수 없이 동생이 하는 걸 구경했는데..

내 괴롭힘으로 인해 동생은 폭력적인

성향이 많이 드러났었다.

게임을 하면서 자신의 맘대로 안 풀리면  항상

소리치고 화내고 게임기를 던지거나 때렸다.

그렇게 내 게임기는 부서졌다.

동생에게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화를 냈고,

엄마랑 아빠한테도 속상하다며 울었다.

그렇지만 이미 고장 나버린 게임기는

묵묵부답. 화면이 깨진 채 나를 반겼다.

그 이후로 난 "귀찮다"라는 게 뭔지

깨달은 것만 같았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누나"니까 양보해라,

"누나"니까 봐줘라.

그러다가 하루는 내가 사고를 치고 말았다.

동생의 유치원이 끝났는데 나는 좋아하는

만화를 보느라 잊어버리고 안 데려온 것이다.

엄마가 퇴근하고 나한테

"(슈붕)아 동생은 어디 있어???"

물어봤을 때 아차 싶었다.

이것만 보고 가야지 이것만 보고 가야지

했지만 결국 늦은 시간까지 안 간 것이다.

동생은 그 충격으로 한동안 말을 더듬었다.

어린 나이에 충격이 컸을 법하다.

엄마는 나를 혼내면서 달래줬다.

나만 있을 때는 아빠만 일을 다녔지만,

이 당시에 엄마랑 아빠는

맞벌이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거의 정시 퇴근을 했고,

아빠는 직업상 많이 돌아다녀야 하는

직업이기에 항상 8시~9시쯤에 돌아왔다.

회식 때문에 많이 늦으면 우리가

자고 있을 때 돌아왔다.

엄마는 내게 "(슈붕)아 너는 엄마랑 같이

붙어있는 시간이 많았잖아..

근데 동생은 엄마가 일 다니면서 많이

못 있어주잖니.. 그러니까 동생 좀 잘 봐줘.."

... 가슴이 저려왔다.

엄마를 쳐다볼 수가 없었다.

"동생이 그렇게 싫어..?

너 동생 그렇게 좋아했잖아.."

.....

"응 알았어.."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도 안타깝고

나도 안타까운 상황이다.

엄마는 나를 생각해서 동생을 낳아준 건데.

심지어 동생은 그 고난을 겪고 튼튼하게

잘 자라주고 있는데.

이제 넷이서 행복하게 살면 되는데.

사람의 마음은 어느 한 명의 뜻대로

되지 않고 계속 갈등만을 조성했다.

엄마는 동생을 잘 돌보라고

하지만 동생이 미웠다.

동생도 자신을 미워하는

나를 아니까 불편해했다.

사실 나만 동생을 미워하지 않으면 해결될

문제라는 걸 나도 알지만 외면했다.

난 언제나 "착한 아이"였고,

그래야만 했으니까.

동생을 향해 부정적인 감정을

품는다는 것 자체가

나는 이미 나쁜 아이였으니까.

동생을 향한 감정은 나에게 있어서,

"내게 존재하면 안 되는 감정"이었다.


지금에서야 미워했다,

질투했다고 말하는 거지,

어렸을 땐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왜 동생만 보면 이렇게 억울한지,

속상한지, 화가 나는지.

속이 터질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냥 답답했다. 동생의 모든 게.


동생과의 사이가 좋아지기 시작한 건

정확한 시기를 말하기가 어렵다.

굳이 특정해서 말해보자면 동생도 나도 각자

자의식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부터인 것 같다.

내가 동생에 대한 감정을 질투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접은 시기부터.

엄마와 아빠도 나를 똑같이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은 그 시기 때부터였던 것 같다.

물론 아직도 농담 삼아

"너 머리 그렇게 쓸 거면 나 줘!"라고 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때처럼 스스로와

동생을 괴롭히지도 않는다.

물론 아직도 내게 붙었던

꼬리표도 붙어있는 상태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정면으로 부딪히며

그 꼬리표와 맞서 싸우고 있다.

나는 서서히 나이가 들면서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들과 상황들을

전달할 수 있게 되었고,

그때서야 가족들과

진지한 소통을 할 수 있었다.

그때서야 그 골이 깊던

갈등들이 풀려가기 시작했다.

각자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행동했는지.

그렇게 대화하고 난 감상은

"결국 나보다 똑똑한

사람이더라도 같은 사람이구나.

나처럼 부족한 모습도 있구나."였다.

난 뭣하러 그 긴 시간 동안 동생에 대한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스스로와 동생을 괴롭혔을까.

지금도 어리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어리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동생이랑 내가 둘 다

컴퓨터공학과이기도 하고

애니메이션 같은 서브컬처도 좋아해서

서로 장난치고 조언도 주고받으며

동생의 친구들과도 친해져서 신나게

수다 떨 수 있을 정도로 친해졌다.

티격태격. 서로 다투기도 하지만

그건 그 순간에서 끝나는 다툼이 되었고,

더 이상 길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나이가 들면서 비로소

"현실남매"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힘든걸 다 견뎌준 동생한테 고마울 따름이다.

수술부터 해서 내 길었던 괴롭힘까지.

좀 더 빨리 용기를 갖고 서로 허심탄회하게 얘기했다면 이 갈등은 좀 더 빨리 해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제는 별 탈 없이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동생도 나도.


솔직하게 말하자면,

회사에 계신 분들을 보면 다 멋있어 보인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멋진 사람이 돼야지!'

라고 생각하게 된다.

난 계약직이기 때문에 그분들의 유대감에

끼어들 틈도 없다는 것도 잘 알지만..

나도 가까이 지내고 싶다.

그러다가도 그분들만의 고생이 눈에

보일 때가 종종 있는데, 이땐 간사하게도

'저렇게 되고 싶진 않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사람의 좋은 것만 부러워하고

질투하게 되는 게 사람인가 보다.

동생의 경우도 지금 와서

잘 생각해 보면 그랬다.

동생의 안 좋은 부분은

"난 누나니까~"라며 이용해 먹고,

(예를 들면 심부름 같은 거)

첫째의 억울함만을 들고 와서

"나도 힘들어!!"라고 하는 내 모습이

엄마한텐 과연 어떻게 보였을까.

질투에 잡아먹히기 전,

'내가 바라는 모습이 정말

저 사람의 모습일까?'

생각해 보고 만약 맞다면,

그 사람과 친해지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옆에서 그 모습들을 지켜보면...

사람은 그 사람을 닮아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 이야기의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친구"편에서 풀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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