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대하여- 3
이 글에서는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몇 가지 이슈들과 본질에 대해 다뤄보려고 합니다. 필자는 블록체인의 미래를 통찰할 만큼의 경험이 있지는 않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블록체인에 대한 몇몇 기업, 기관들의 지나친 환상과 인식 오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블록체인은 블록들이 체인처럼 연결돼있는 형태를 빗댄 이름으로, 블록이란 거래 또는 특정 정보를 담은 정보 집합이며 각 블록을 논리적으로 연결한 형태가 물리적 묘사하면 체인과 흡사합니다. 각 블록은 거래정보에 대한 해시 값을 가지며, 다음 블록이 생성될 때 이전 블록의 해시 값을 기록하면서 모든 블록이 이전 해시값을 가지므로 마치 체인처럼 연결된 형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선 블록의 내용이 변조될 경우 2번 블록의 해시값과 일치하지 않게 되므로 위변조를 쉽게 판단해낼 수 있는 구조적 장점을 제공합니다.
이런 특성을 기반으로 장부를 관리하는 집중 시스템 없이 P2P 기반으로 네트워크 상의 모든 노드가 블록체인 장부를 보유하고 거래 정당성을 검증하는 형태로 '탈 중앙화'된 거래가 가능하다는 컨셉 덕분에 다양한 산업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자체는 2008년 10월 비트코인 논문에 의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졌고, 국내에서도 일찍이 연구가 진행되고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생겨나면서 활발한 거래가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처음 예상과 다르게 '비트코인' 및 그 외 암호화폐들(일명 '알트코인')에 많은 자금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이런 현상이 투기냐 투자냐의 대내외적 논의가 활발해지게 됐습니다.
국내에서는 유시민 작가와 정재승 교수의 SNS 논란에서부터 이어진 JTBC 뉴스룸 토론이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리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JTBC 토론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초창기 가장 큰 화두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분리 가능한가?'였습니다. 즉, 암호화폐 거래를 장려하지 않으면서도 블록체인 기술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토론 및 정책 검토의 중심이 됐습니다.
저는 이런 논의가 시작될 때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봤습니다. 논의의 주제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아니라 '퍼블릭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돼야 좀 더 유의미한 논의가 진행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논의 과정에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분리 불가능하다는 전제에는 퍼블릭 블록체인만을 고려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 JTBC 토론에서 보듯이 암호화폐의 부정적 측면이 부각되며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서는 유의미한 토론 결과가 나오지 못합니다.
변경된 질문조차도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암호화폐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가 되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블록체인 기술을 기술 그 자체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퍼블릭과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분리해서 논의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블록체인 기술과 거래소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점 또한 명확히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거래소에 대한 인식 및 규제가 블록체인 산업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초기 정책 방향의 오류가 발생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정부기관에서도 JTBC 토론 이후에서야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에 대한 정책을 구상하느라 급급 했다는 건 아쉬운 대목입니다. 물론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으나, 이제는 그 방향성에 대해 고민해봐야 합니다. 국내는 정권에 관계없이 이런 신기술에 대해 정부 관료가 특별한 통찰력이나 지식이 없음에도 기술증진을 주도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번 블록체인의 경우에도 정부가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됐을 것은 블록체인의 증진을 위한 회의가 아니라,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규제와 통제 등입니다.
며칠 전 업비트의 허위 거래 가능성 문제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현재 거래소는 은행과 같은 지준율에 대한 합리적 규제가 없을뿐더러 실제 블록체인과는 전혀 관계없는 형태로 거래소 서버에서 거래가 진행되므로 동일 코인에 대한 거래소별 시세가 상이한 부분도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정부에서 진행한 것이라고는 국내 ICO를 제한하는 구시대적이고 피상적인 규제뿐이었으며, 최근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자발적으로 통신판매업자 등록을 취소하고 있는 것 외에 공식적으로 이러한 거래소가 어떤 사업자인지는 아직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정부는 암호화폐 거래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거래소들을 효과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현재 개별 암호화폐 자체가 가진 기술력으로 특정 산업을 지배할 수 있느냐에 따라 투자가 이루어지는 형태로 가고 있으며, 암호화폐가 실질적으로 ICO를 하는 스타트업에게는 주식 등 증권과 유사한 의미를 가지므로 이에 준하는 한국예탁결제원 성격의 중앙기관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거래소 측에서는 지나친 규제는 '탈 중앙화'를 모토로 하는 암호화폐 거래에 반하는 조치라고 반발할 수 있으나, 실제 실시간으로 블록체인에 등록하는 거래형태가 아닌 만큼 이미 거래소를 통한다는 것 자체가 탈 중앙화와 관계없으며 거래소별 도덕적 해이에 의해서 사기행위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형태입니다.
블록체인 기술 발전에 대한 고민도 중요하지만, 정부에서 특정 산업분야들의 발전 형태를 논하는 것은 깊이가 없으며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정부는 기업들이 기술로 서비스를 구현할 때 부딪히는 불필요한 규제를 줄이는 방향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그와 별개로 지금은 비정상적인 거래가 발생할 수 있는 거래소에 대한 효과적인 감독방안 마련이 더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블록체인은 현재 1세대를 넘어 스마트 컨트랙트 등이 구현된 2세대에 와있다고들 하며, 3세대 코인이라 칭해지는 암호화폐들도 다수 발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흐름보다, 국내 기업이나 기관에서 블록체인을 도입하려 할 때 염두해야 할 부분에 주목해보려 합니다.
블록체인이 이슈가 된 뒤, 많은 산업에서 이 기술을 만능이며 무조건 도입해야 할 기술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인식에 지나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며, 블록체인이 가진 기본적인 기능과 효과를 통해서 왜 지나친 인식인지를 짚어보려 합니다.
1) 해시값을 연결해 무결성과 불가역성을 제공함
위변조가 불가능하지는 않으나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 가능하며, 이를 통해 기존의 시스템보다는 좀 더 강력한 무결성 제공이 가능함.
2) 분산된 노드의 합의에 의해 생성됨
중앙시스템을 신뢰할 수 없을 경우, 탈 중앙화 된 거래기반을 구축할 수 있음
3) 기밀성을 제공하지는 않음
블록체인은 해시값을 통한 무결성을 제공하나, 기밀성을 제공하지는 못함
기밀성을 제공하기 위해서 기존 중앙시스템 방식보다는 시스템 및 통신에 발생하는 비용이 높아짐
4) 중앙시스템 방식에 비해 속도 저하를 수반함
기술의 발전으로 속도가 개선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다수 노드의 합의 및 검증 기반이므로 단일 원장 방식보다 빠른 속도를 제공할 수는 없음
5) 정보의 연결된 관리가 가능하므로 정보의 추적 기능을 함
하지만 특정 산업 전반을 하나의 체인이 장악했을 경우 효과가 크며, 이를 구축하기 위한 비용 또한 천문학 적인 비용이 소요될 것임.
이런 특성만 가진 것은 아니지만, 이는 블록체인 기술 자체가 가진 본질적인 특성이며 산업에 블록체인을 적용할 때는 위와 같은 본질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위에서 다룬 특징들을 고려하면서 블록체인 도입에 고려해야 할 문제점들을 다뤄봅니다.
먼저, 각 산업에서 블록체인을 사용할 때 해당 기록이 진정으로 변경되는 경우가 없는지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여기서 해당하는 경우는 정상적인 거래의 경우뿐만 아니라 시스템 오류 등으로 그 내역을 바로잡아야 하는 경우 등을 포함합니다. 즉, 어떠한 경우에도 거래기록을 수정할 필요가 없는지를 판단해야 하는데, 제가 경험한 바로는 대부분의 시스템, 심지어 거래의 정확성이 중요한 금융거래 또한 사람이 개발하는 시스템이므로 완벽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특정 경우에는 불가피하게 기록의 변경이 필요하며, 일반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이런 경우는 더 자주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레거시 시스템의 완전한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 중요 거래 등에 블록체인의 도입은 상당히 신중해야 할 문제가 될 것입니다.
특히, 대부분 산업에서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자사의 서비스 등에 블록체인 도입을 추진하는데, 이럴 경우 탈 중앙화는 의미 없는 특성이 됩니다. 참여 가능한 노드는 제한되고, 식별되며 그들의 단체 합의에 의한 위변조 또한 얼마든지 가능한 환경이 됩니다. 탈 중앙화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해서 블록체인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나, 탈 중앙화라고 어필하는 기업이 있다면 고객기만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규모 블록체인의 경우(예를 들어 특정 보험사와 의료기관 협약에 의한 보험금 자동 지급) 블록체인을 추진한다는 홍보효과 외에 큰 의미는 없다고 봅니다. 보험금 자동청구와 같은 방식은 현재도 간단한 전문 처리와 서비스를 통해 가능합니다. 기관 사용자의 식별, 통신의 암호화, 거래의 자동처리까지 모든 프로세스가 가능한 상태입니다. 이 경우 블록체인 구현이 좀 더 강력하게 제공하는 것은 거래내역의 무결성 제공인데, 기존 시스템 또한 위변조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지 않으며, 소규모 블록체인의 경우 얼마든지 위변조는 가능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정부에서 발표하는 문서들을 보면 블록체인이 비용 측면에서 효율적이며 보안성이 뛰어나다고 명시돼 있는데, 이 또한 기술 인식의 오류로 볼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블록체인 그 자체로는 기밀성을 제공하지 않으며, 이를 암호화하기 위해서 단순한 기록을 암호화하고 통신하는 것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다수의 노드가 합의를 해야 하는 만큼 통신 비용이 증가하며, 각각의 노드가 분산된 원장 기록을 위해 서버를 유지해야 하므로 서버 비용 또한 증가합니다. 이런 경우 기업 내부의 비용이 증가하면 이에 대한 비용전가가 고객에게 될 소지가 있으므로, 블록체인이 무조건 효율적이라고 홍보하는 정부의 행태는 분명히 잘못된 부분이 있습니다.
그다음으로, 속도에 대한 문제도 존재합니다. 블록체인은 근본적으로 기존의 중앙시스템 보다 느린데, 이는 시간이 지나서 개선이 될 수는 있으나, 변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런 부분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실시간 거래를 블록체인 기반으로 제공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 삼성증권 주식 오류 발행 사태 후 주식 거래를 블록체인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금융거래에서 트랜잭션의 속도는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블록체인의 속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현재까지는 실시간 거래에 블록체인을 적용하는 것은 효용보다 비용이 훨씬 큰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블록체인의 활용 목적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특정 산업분야의 내역 추적 기능입니다. ICO설명회 등을 가보면 의료 산업분야에서 약품의 추적을 제공하겠다는 업체도 있고, 최근 아마존의 경우 식료품의 유통과정 추적을 블록체인을 통해 제공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렇게 특정 산업에 블록체인을 활용하려고 할 경우의 문제는 결국 비용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보통은 특정 산업이 아니라 여러 산업이 연계된 사업이 많기 때문에 상상한 것보다 더 큰 스케일의 사업이 될 것이고, 비용 또한 천문학적 일 것입니다. 아마존과 같이 자금력 있는 기업의 경우 이런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해낼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스타트업에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즉, 블록체인을 통한 산업의 발전은 여러 산업에 기반 시스템을 제공하는 정부의 투자가 있어야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도 접근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기존에 대형 플랫폼을 보유한 기업 및 단체들(국내의 경우 삼성, 카카오, 네이버, CJ 등)또는 각 산업의 대형 기업들의 컨소시엄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정부의 전폭적인 투자는 사실상 불가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며, 이런 우려 때문에 현재 ICO 및 거래소를 통한 거래가 몇몇 암호화폐를 제외하면 상당히 불안정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기업 및 기관은 위와 같은 블록체인의 특성을 명확히 인식해야 하고, 이를 고려했을 때에도 블록체인 기반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효용이 존재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외부 이슈에 반응해서 홍보용으로 '가짜 블록체인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아닌, 진짜 필요에 의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며 그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현재 단계에서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특정 산업의 기관들이 합심하여 공통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금융업권 컨소시엄에서 블록체인 기반의 인증 서비스 제공을 추진 중인데. 이런 서비스는 인증서가 변경될 때마다 각 금융기관에 일일이 등록해야 했던 불편을 없애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글은 제목처럼 정부나 기업이 블록체인에 지나친 환상을 갖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작성했습니다. 블록체인에 대한 장점이나 이상향은 각종 강연이나 세미나를 통해 전파되는데, 그런 논의에서 비판적인 시각은 많이 배제돼있다고 느꼈고,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기 전에 그 본질과 한계에 대해서 예측하는 것도 필수적인 요소인데 한계를 예측하려는 노력은 좀처럼 없지않나 싶은 마음에 글을 작성하게됐습니다.
좁은 시야나 예시를 통했지만, 이제는 기업이나 정부가(특히 정부가) 블록체인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나 맹목적인 믿음에서 벗어나서 현실적인 적용 방안을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기업에서는 무리하고 무의미한 시도를 통해 내부 직원들이 불필요한 업무를 하게 되는 일이 없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