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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삼동까만콩 May 21. 2017

디지털 혁명과 인문학

말뿐인 인문학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얼마 전 개인 SNS를 확인하다가 재미있는 내용을 보았다. 최근 한 주변 지인이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초등학생들에게 ‘편지’가 무엇이냐고 묻자 아이들이 ‘손으로 쓰는 E-Mail’이라고 답변했다는 것이다.

시대가 그 여느 때 보다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지난 인류 역사를 통틀어 지난 1세기 동안 가장 많은 발명이 이루어졌다고 하는걸 보면, 우리가 현재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을 듯 하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 흐름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디지털이다.


디지털(Digital)이라는 용어는 손가락을 뜻하는 라틴어 낱말 digit에서 나온 것으로, 숫자를 세는 행위를 의미한다. 디지털 데이터는 0과 1로 짜여진 배열을 뜻하는데, 이는 수치의 의도된 배열에 의해 만들어진다.


데이터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를 비트라고 부르며, 이는 물질의 기본 단위인 아톰(원자)과 달리 자연의 구성 부분도 아니고, 자연의 산물도 아니다. 물질세계가 자연물인 원자로 이루어진 세상이라면, 디지털 세계는 사람이 창조해낸 비트로 이루어지는 세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디지털 세상은 오직 사람의 힘으로만 창조 되어진 세계라고 볼 수 있다.


마치 ‘편지’가 아닌 ‘E-mail’이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 된 것처럼, 어느덧 이 창조의 디지털 세계는 기존의 아날로그 문명을 넘어 이 시대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디지털 혁명의 시대


우리 모두는 지금 그 변화의 중심에서 살아가고 있다. 돌이 킬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는 이 흐름의 변화는 물질적 원자, 즉 아톰의 시대로부터 비트의 시대로 이동하는 ‘혁명의 기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혁명은 우리가 일하는 방식, 공부하는 방식, 노는 방식, 그리고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삶의 방식을 변화시켰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노동력은 기계의 힘과 결합하여 엄청난 생산력의 향상을 실현하였다. 물품은 대량으로 생산되었고 소비도 대량으로 이루어졌다. 기계가 생산해내는 이런 물질의 최소 단위는 아톰이다. 물질은 형태와 무게를 갖고 있으며 공간과 부피를 차지한다. 산업사회의 기계가 인간의 손과 발의 확장이었다면 이제 컴퓨터와 네트워크는 인간의 정신을 확장 한다고 할 수 있다. 컴퓨터 네트워크는 인간의 두뇌를 전 세계로 확장시키게 되는 것이다.


디지털은 우리의 생각을 가공하고 전달하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산업혁명기에 등장한 증기기관의 터빈이 육체의 힘을 확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컴퓨터는 마음과 지식의 힘을 확장시켜준다. 산업혁명기의 기술이 육체적 근력을 확장하였다면 디지털 혁명의 기술은 마음과 정신의 공간을 확장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비트를 통해 새로운 공간과 물질을 창출해내는 이 모든 과정을 우리는 창조(creation)라고 부른다. 그 어느 시대보다도 창조의 정신이 존중되고, 새로운 것을 거리낌 없이 수용하는 현 시대는 이를 살아가는 우리로 하여금 더욱더 그 행위에 매진 할 수 있게 해준다. 이와 같은 창조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도 모르게 지속적으로 비트를 생산해내고 있다. 구글로 검색을 하고, 네이버 지식인에 올라온 물음에 응답을 주고, 또 그런 응답에 점수를 주는 모든 행위가 비트를 만든다. 이용자들의 활동 자체가 비트를 만들고, 비트를 복제하고, 비트를 가져오고, 비트를 소비한다. 메일이나 메신저, 피어투피어(peer to peer) 프로그램으로 비트를 보내거나 받는 단순한 행위도 비트를 낳는다.


비트의 흐름을 이미 아주 오래전, 정확히 말하자면 18년 전부터 예측하고 있었던 사람이 있다. 바로 MIT 미디어랩의 창설자이자 베스트셀러 책 ‘Being Digital’ 의 저자인 니콜라스 네그로폰테이다. 그는 오랜 기간 동안 디지털 시대를 이끄는 정신적 리더이자 선구자 역활을 해왔다.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그는 디지털 시대가 기술과 합리성, 과학과 예술, 왼쪽 뇌와 오른쪽 뇌 사이의 단절을 이어줄 것이라고 한다. 디지털 시대는 복제와 변형의 시대이자 참여와 협동의 시대다. 일과 놀이의 구분이 흐려지고 창조적 취미가 존중되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그는 ‘이런 시대에는 기억 용량이 풍부한 하드가 이미 컴퓨터에 장착되어 있기 때문에 주입식 교육에 길든 딱딱한(하드) 머리(기억장치)는 더 이상 효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네그로폰테는 휴머니즘의 입장에서 컴퓨터를 대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인간-컴퓨터 인터페이스에 관한 그의 관심은 결국 차가운 금속성 기술결정주의의 무쇠로봇이 아니라 부드러운 인간의 모습을 한 휴머니즘적 기술관을 보여준다. 최근 애플 아이폰의 시리(siri)는 그가 예측했던 인간-기계 인터페이스의 발전 방향을 잘 보여 주는 사례 중 하나다.


그는 컴퓨터가 우리를 알아듣고, 보고, 느끼고, 대화할 수 있도록 컴퓨터와 인간 사이 인터페이스를 만드는 작업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역할의 핵심을 맡고 있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라고 주장하며 컴퓨터 전공자에게는 사회학적 상상력을, 인문사회 전공자에게는 컴퓨터의 상상력을 불어넣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노력은 디지털 혁명의 또 다른 주인공이기도 한 스티브 잡스를 통해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



스티브 잡스와 인문학


스티브 잡스가 탄생시킨 애플 컴퓨터 이전의 기존 컴퓨터들은 자동차와 달리 외관이나 디자인의 중요성이 그리 크지 않은 품목이었다. 그러나 컴퓨터가 내 손에 항상 들고 다니는 장식품이자 생활용품이 되면서부터 그 의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이 몸의 일부로 될 지경에 이르러 사람들은 아이폰을 손이 닿을 만한 가까운 거리에 두거나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닌다. 애플 제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즐길 뿐만 아니라 제품과 자기 정체성의 일체화라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잡스는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디자인 환경 속에 있기를 원하는지 천재적으로 파악했다. 그는 그러한 기능을 실현할 수 있는 기계를 구상하고 자본과 노동을 결합해 애플의 다양한 기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스티브 잡스는 “어떤 제품을 원하는지 묻지 마라. 어떤 제품을 원할지는 소비자들도 모른다”고 말했다. 잡스는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없는 새로운 것을 그의 상상력과 감수성으로 계속 개발했다. 잡스는 애플의 디엔에이(DNA) 속에 기술과 인문학을 결합하려고 했다. 그는 애플의 기술 속에 인문학적 교양과 인간이 녹아 들어가길 원했다. 스티브 잡스는 PC 이후 시대에 만들어지는 기기에는 기술과 인간이 결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술과 예술을 통합한 디지털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사람들은 “그는 기술과 인문학을 결합했고, 기술과 예술을 통합했다. 그는 천재다”라고 그에 대한 찬사를 바친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는 뛰어난 디자이너이자 엔지니어이자 기업가다. 판단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잡스의 스타일과 개성을 좋아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은 그가 만든 제품을 좋아할 수 있다. 이러한 평가들은 그가 기술뿐만이 아닌 인문학을 더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허울이 가득한 국내 인문학 시장


국내에서도 창조 경제와 함께 기술과 인문학의 융합이 최근 그 여느 때 보다도 주목을 받고 있다. 대기업 CEO 대상의 고가 강좌부터 동네 주민을 위한 구청의 무료 강좌까지, 시중엔 인문학 대중 강의가 넘쳐나고, 서점에는 분야와 상관없이 ‘인문학’을 제목에 내건 책들이 즐비하다. 대통령도 기회 있을 때마다 인문학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문학 열풍의 이면에는 인문학을 경제활성화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자기계발서를 대체하는 교양 상품으로 취급하는 자본주의 시장의 논리가 작동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문학평론가 오창은(43) 중앙대 교양학부 교수는 “정부가 창조경제의 원동력으로 인문학을 강조하는 것도 인문학을 본연의 가치가 아닌 경제적 효용에 한정하는 근시안적 태도”라면서 “정치권력이 인문학에 관심을 갖는 건 좋지만 이는 경제적 이익이 아닌 학문의 자유를 위한 진흥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도 여러 대학들에서는 취업률에 따라 학과가 통폐합되고, 실용수업이 교양 교육을 대체하는 등, 현실에서의 인문학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전문성을 찾기 힘든 대학원 시스템은 학생들을 해외로 발을 돌리게 된다.

말뿐인 인문학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더욱더 심도 깊은 토론과 현실적인 방안들이 필요하다. 인문학을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의 특성과 형태를 이해하고 학생들의 삶에 스며들게 할 수 있어야한다.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융합’이 실현되는 것이다.


디지털 혁명기는 최소한의 자본으로 무한한 창조가 가능했던 인류 역사 중 유일한 시기이다. 정말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 해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지리적으로도, 자원적으로도 여러모로 불리한 한반도의 학생들에게 있어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은 분명 지금도 세계 IT 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러나 도태되지 않고 한발 더 앞서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 조금씩 한층 더 발전된 모습으로, 국내뿐 만이 아닌 미래 세계 경제의 중심에 한국형 창조 인재가 우뚝 서게 되는 그 날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해본다. / 2014.03.01

 

(본문은 2013년 학부 과제로 제출했던 레포트 중 일부를 발췌한 글 입니다.)




참고서적

『디지털이다』, 니콜라스 네그로폰테(Nicholas Negroponte)(1995)

『디지털 혁명을 이끈 인물들』, 백욱인(2012)

『애플을 벗기다』, 안병도(2011)


참고기사

<연합인터뷰> 네그로폰테 MIT교수 <연합뉴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0421302

[글로벌 인터뷰] 니컬러스 네그로폰테 <美 MIT대 미디어랩 소장> <한국경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15&aid=0000434534

인문학의 경제활성화 도구 전락<이순녀 기자><서울신문>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0912022007

박 대통령 “인문학 발전 없이 창조경제 불가능”<전민정 기자><etoday>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773926


참고 글

인문학이 없는 창조경제는 없다

http://blog.naver.com/dongnyokpub?Redirect=Log&logNo=40191357979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디지털이다>

http://librekim.khan.kr/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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