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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냥 Dec 23. 2020

2. 당신의 버드 박스는 무엇인가요?

버드 박스(Bird Box), 보이지 않는 '그것'과 맬러리 이야기

* 본 편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아남고 싶다면 아무것도 보지 말라”  


이 영화는 보이지 않는 그 존재를 보기만 해도 자살해버리게 만드는 재앙에 대해 다루고 있다. 보이지 않는데 보면 죽는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대체 그 존재가 무엇인데 사람들을 홀려버리는 걸까. 맬러리는 그 집에 들어간 이후에 어떤 일들을 겪었을까. 아니, 애초에 그런 곳에서 살아남을 수는 있었을까?  



맬러리의 일기

출처-다음 영화 예고편 영상/ 진찰받는 맬러리

뱃속 아기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동생 제스와 병원에 들렀던 날이었다. 예정일은 9월 말, 누군가와 관계 맺는 것이 싫어서 집에만 있던 나에게 곧 새로운 인간관계가 생기게 된다. 의사는 원치 않는다면 입양을 보내라고 권유하지만 썩 내키지는 않는다. 뉴스에서는 계속해서 러시아의 집단 폭동에 대해 보도하고 있었다. 정신병인 것 같다는데 왠지 불안하다. 역시 밖은 위험해. 얼른 집에 돌아가야겠다.


진료를 받고 복도로 나왔는데 좀 전까지 멀쩡하게 통화하고 있던 여자가 유리창에 자기 머리를 있는 힘껏 박고 있다. 쾅, 쾅, 쾅! 피가 줄줄 나는데도 멈추지 않는다. 러시아에서 퍼졌다는 그 이상한 현상이 벌써 여기까지 당도했음이 틀림없다. 종종걸음으로 제스의 차에 타, 전속력으로 달리라고 재촉했다. 임산부를 태우고 교통법규를 어길 수 없다는 제스는 아주 침착했다. 빨리 집에 가야 한다니까!      


출처-다음 영화 사진/맬러리와 제스

그때 뒷자리에서 울리는 전화 벨소리. “저게 뭐야!” 휴대폰을 찾기 위해 뒷좌석으로 몸을 돌렸을 때 심하게 당황한 제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허공을 응시하며 슬픈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던 제스는 핸들을 마구 꺾었다. 그 모습에 놀란 나는 제발 그만하라고 외쳤다. 결국 우리가 탄 차는 다른 차를 들이받고 간신히 멈췄다.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제스는 차에서 내려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차에 몸을 던져버렸다. 너무 순식간이었다. 뭘 봤기에 늘 밝기만 하던 그 아이가... 도대체 왜?!


그 이상한 현상은 어느새 우리 동네 곳곳으로 퍼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피하는 듯 혼비백산이었다. 도망치는 사람들 틈에 멍하니 서 있던 나를 어떤 여자가 도와주러 달려왔다. 그런데 그 여자도 갑자기 허공을 응시하더니 슬픈 표정으로 “엄마, 제발 가지 마세요.”라는 말을 되뇌었다. 그 사람은 말릴 틈도 없이 불타고 있는 자동차에 들어가 버리더니 폭발과 함께 죽어버렸다. 그때 누군가 얼이 빠진 나를 가까이에 있는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출처-네이버 영화 사진


작품에 퐁당

 

<버드 박스>, 맬러리가 겪은 일들


톰이라는 남자의 손에 이끌려 들어간 그 집에는 아수라장 속에서 살아남은 몇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맬러리는 그들과 함께 지내며 식량을 구하러 근처 마트로 위험한 모험을 떠나기도 하고, 그 집에 있던 또 다른 임산부인 올림피아와 같은 날 아기를 출산하기도 했다. 이 과정 속에서 많은 사람들과 이별하게 된 사건도 있었다. 특히 아이들이 태어나던 그날, 여러 사람들을 잃었는데 새로 합류한 게리라는 남자 때문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존재를 간접적으로 보기만 해도 죽음에 이르렀지만, 범죄자들은 그 존재를 직접 보더라도 죽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기뻐하며 다른 이들의 눈을 벌려 억지로 그 존재를 보게끔 만들었다. 게리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출산으로 집안이 혼란한 틈을 타 집 안의 커튼을 열어젖혔고 이 때문에 아기들과 맬러리, 톰을 제외한 모두가 목숨을 잃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을 잃었지만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었다. 보이지 않는 그 존재가 주위에 있으면, 새들이 시끄럽게 지저귀며 반응한다는 것이었다.      


살아남은 맬러리와 두 아이, 그리고 톰은 그렇게 5년을 떠돌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먹통이던 무전기 너머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남자는 강을 따라 내려오면 안전한 공동체가 있다는 말을 전했다. 목표가 생긴 맬러리 일행은 새가 들어있는 버드 박스를 들고 강으로 향했다. 강에 도착하기도 전에 톰을 잃는 아픔을 겪어야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 존재, 그것에 홀린 미친 사람, 강의 급류를 모두 이겨내고 안전한 공동체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맬러리의 이야기는 그렇게 막을 내린다.     





출처-다음 영화 사진/톰과 맬러리

사실은 빌런, 히어로 모두 등장?


1편에서 이 영화에는 보이지 않는 빌런만 나올 뿐, 그 존재를 무찌를 히어로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었다. 그런데 영화를 자세히 보면 눈에 보이는 빌런도, 그 존재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는 히어로도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실, 빌런은 순간순간 계속해서 등장했다. 히어로도 한두 명이 아니었다. 타인을 위해 희생한 그들 모두가 히어로였고 본의 아니게 또는 고의로 피해를 주었던 이들은 눈에 보이는 빌런의 역할을 했다.   

   

즉, <버드 박스>의 인물들은 보이지 않는 괴물과 눈에 보이는 인간이라는 빌런 모두를 경계하며 살아남아야 했던 것이다. 이들에 대항하는 사람들은 천둥을 부르는 망치와 하늘을 나는 슈트를 입지는 않았지만 누군가를 지키려는 평범한 모습의 영웅들이었다. 끝까지 아이들을 지킨 엄마 맬러리와 그들을 지키고자 죽음을 자처한 이 대표적인 히어로이지 않을까.     


가장 인상 깊은 인간 빌런은 게리였다. 범죄자인 게리는(원래 미쳐있는, 악함에 물든 사람) 그 존재를 보더라도 죽지 않았으며 아름다운 그것을 함께 보자며 억지로 눈을 뜨게 만들었다. 영화 중간중간에 게리 같은 사람이 종종 나왔는데 이들을 보고 있으니 각성한 조커가 신명 나게 춤추면서 계단을 내려오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모든 것을 놔버리고 광기에 순응하는 것 같은 그런 모습이 겹쳐 보였다. 역시... 사람이 제일 무섭다. 




출처-다음 영화 사진/맬러리와 걸&보이

안전한 공동체에 합류한 맬러리와 아이들


맬러리와 아이들이 힘겹게 들어간 그 공동체는 ‘재닛 터커 시각 장애인 학교’였다. 아,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 결말을 본 분들은 아마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감정을 느꼈을 것 같다. 보이지 않는 괴물이 나타난 대재앙의 상황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곳이 볼 수 없는 사람들의 공동체라니. 보는 사람마다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보이지 않는 '그것의 정체'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들은 악함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는 사람들, 휘둘리지 않는 사람들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영화 전체에서 강조하고 있는 '시각'에 집중한다면 다름에 대한 불필요한 구별 없이, 더 나아가 차별 없이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 속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시선을 끈 점은 그곳이 시각 장애인 학교라는 부분뿐만이 아니었다. 이름 없이 걸(girl)과 보이(boy)로 불리던 아이들에게 안전한 그 공동체에 들어가서야 제대로 된 이름을 지어주던 맬러리도 인상 깊었다. 영화 초반에 맬러리가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것을 꺼려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동생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잃고 난 이후에 이런 두려움은 더 커졌을 것이다. 또 이런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아 아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은 것 같다. 그랬던 맬러리가 아이들에게 각각 올림피아 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는 장면은 다시 봐도 뭉클했다. 이 부분에서는 걸(girl)의 친엄마 올림피아 그리고 그들을 위해 희생한 톰 추억하며, 앞으로는 인간관계 속에서 생길 수 있는 상처 때문에 관계 맺음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맬러리의 다짐이 드러났다. 또한, 아이들의 ‘보호자’ 신분에 그치길 원했던 맬러리가 이제는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심리적인 변화도 드러났다.




출처-다음 영화 사진/그 존재를 목격하고 충격에 빠진 제스


생각에 퐁당


‘그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기이한 현상이 등장하면 어쩌다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려주는 장면이 나오곤 한다. 그런데 <버드 박스>에는 그런 언급이 전혀 없다. 보이지 않는 그 존재의 정체가 무엇인지, 왜 사람들을 죽게 만드는 것인지 그 이유가 정말 1도 나오지 않는다. 정체가 대체 뭘까. 실험실에서 탈출한 실패작일까? 아니면 피할 수 없는 죽음 자체를 의미하는 걸까? 그 존재를 접하는 사람마다 공통적으로 슬퍼 보이긴 했지만, 보이는 형상과 들리는 소리가 각각 달랐다. 맬러리를 도와주려던 어떤 여자는 그 존재를 엄마로 보았고, 맬러리는 그 존재를 보진 않았지만 죽은 톰의 목소리로 인식하며 혼란을 겪었다. 그렇다면 그 존재는 악령인 것일까?  


영화를 볼수록 든 생각은 보이지 않는  존재를  가지로 정의할  없겠다는 이었다. 그 존재를 접하게 되면 무언가 보이거나 들리는데, 모두 저마다의 약한 부분을 건드리는 정서적인 공격이었다. 결국, '그것'의 정체는 '마음의 연약한 부분을 자극하는 여러 가지 형태의 '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점이 하나 있다. 범죄자들은 왜 그 공격으로부터 멀쩡했을까? 아마 공감능력이 결여된 상태이기 때문일 것 같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범죄를 저지르려면, 피해자가 당할 고통을 무시해야 한다. 고통에 공감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누군가를 죽이는 등의 극악무도한 행위를 할 수 없기 마련이다. 게리 같은 범죄자들은 타인이 어떻게 되든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기에 연약한 부분을 들쑤시고 다니는  존재와 코드가 아주  맞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출처-다음 영화 사진/강을 따라 내려가는 맬러리와 아이들

<버드 박스>, 제목의 의미


버드 박스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새가 들어있는 상자를 뜻한다. 영화 속에서는 위험한 그 존재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을 의미했다. 새들의 반응을 확인하지 않는다면 언제 보이지 않는 그것에 사로잡힐지 모른다. 새가 들어있는 그 박스가 없다면 무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암울한 세상 속에서도 그 존재를 피하도록 도와주는 새들을 데리고 다녔다는 것은 살고 싶다는 본능이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아이들을 지킬 수 있게 의지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는 희망을 뜻하기도 한다. 맬러리 일행에게 있어서 버드 박스는 생존본능과 살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 맬러리에게는 걸과 보이가 버드 박스이지 않을까. 두려운 세상 속에서도 아이들을 보호해야 하기에 살아남아야 했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 아이들을 보며 초인적인 힘을 낼 수 있었던 맬러리에게는 아이들이 버드 박스였던 것 같다.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이기적인 인물도, 배려심이 깊은 사람도 아니었다. 지킬 것이 있는, 버드 박스를 가지고 있는 인물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출처-네이버 영화 사진/맬러리와 새

현실의 삶과 버드 박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현실에서도 몸과 마음을 다치게 만드는 요소가 정말 많다.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연약한 부분을 자극하는 것들도 많고, 기이한 그 존재가 어쩌다 생겨났는지 알려주지 않았던 <버드 박스>처럼 이해할 수 없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도 종종 일어나곤 한다. 이런 세상 속에서 지켜야 할 것 없이, 목적 없이, 희망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산다면 작은 진동에도 무너져 버리기 십상일 것이다.


강을 따라 안전한 공동체로 이동하던 맬러리 일행이 그 과정에서 겪은 보이지 않는 그 존재, 그 존재에 홀린 미친 사람, 아찔한 급류는 그 인생으로 보았을 때 우리를 뒤흔드는 정서적인 공격, 사람으로 인한 고통,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어려움이라고 볼 수 있다. 인생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이런 어려움들 속에서도 지킬 것이 있고 그것으로 인해 희망을 가지고 있다면, 나를 흔드는 세상 속에서도 내가 지킬 것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면 맬러리처럼 강인해질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삶에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일까? 누군가에게는 맬러리처럼 소중한 사람들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자존감, 신념, 가치 또는 신앙심일 수도 있다. 내가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무엇이 나의 버드 박스가 되어주는지 깊이 고민해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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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가진 버드 박스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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