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할 수 없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연민
내게 홍게찜은 행복한 기억이지만, 다시는 그때 그 맛을 느낄 수 없는 음식이기도 하다.
“오빠, 저기 봐봐.”
‘이곳에서부터 포켓몬GO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속초시’
공무원 사회는 경직됐다는 편견을 깨 주는 신선한 플래카드가, 몇 개를 지났는지도 모르겠는 긴긴 터널들의 행렬을 지나 우리가 어느덧 속초에 다다랐음을 귀엽게 알려주고 있었다.
“오빠, 포켓몬GO 하러 가고 싶지 않아?”
끝이 어딘지 모를 만큼 광활한 아스팔트의 바닥과 제각기 잘났음을 내세우는 빌딩들이 둘러싼 서울은 하나의 거대한 냄비였다. 그리고 그 냄비 한복판에서 하루하루 돈을 벌며 학교를 다니는, 자신이 한 마리의 불쌍한 젓새우인지도 모르고 익어가고 있던 나에게 그녀의 제안은 냄비 밖에서 스며드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같았다. 사실 우리 둘 다 포켓 GO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어쩌면 서울을 벗어나기 위한 그럴듯한 핑계가 필요했던 것 같다.
백만 원이 채 돼 본 적이 없는 통장의 잔고를 다시 한번 점검해보며 어설픈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사실 여행을 가기엔 넉넉하지 않았지만, 지우가 포켓몬 볼에 들어가지도 않는 피카츄 한 마리만 데리고 태초마을을 떠났듯이 우리도 그럴 수 있겠다는 젊은 날의 객기를 부렸다.
만석닭강정 O
속초중앙시장 O
대포항 회타운
물회
홍게
아바이마을 O
아바이순대 ♡
짬뽕 매워 초딩입맛ㅡㅡ
순두부 난 두부 싫어
우리는 가고 싶은 곳과 먹고 싶은 것, 그리고 보고 싶은 것들을 함께 메모지에 빼곡히 적어두고 웃고, 협상하고, 때론 투덕거리며 꼬불꼬불한 동선을 그리면서 속초를 둘러보았다. 아직 서툰 이십 대의 삶과 연애처럼 우리의 여행도 서툴렀다. 사람이 붐비는 닭강정 가게 앞에서는 차를 당최 어디에 대놓아야 할지 몰라 진땀을 흘렸다. 아바이마을을 가는 길은 도무지 어디에서 빠져야 할지를 몰라서 뱅뱅 맴돌다 결국 금강대교에 사는 포켓몬들의 씨를 말려버렸다. 그 와중에 중간중간 꼬렛이나 버터풀을 잡았다고 좋아하며 마냥 천진난만한 그녀는 무척 사랑스러워서 나를 빙긋 웃게 했다.
우리가 가는 길에 살던 포켓몬처럼 내 통장 속의 잔고와 남은 리스트도 정직하게 서로 발을 맞추어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뭔가를 사거나 보기 전에 좀 더 움츠려 들고 눈치를 봐야 함을 의미했다. 진심으로, 지금의 내가 그럴 수 있다면 그때의 우리가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다닐 수 있도록 충분할 돈을 보내주고 싶다. 하지만 기차조차도 뒤로 갈 수 있는 세상이지만, 시간은 뒤로 갈 수가 없다. 그래서 기억은 아름답고 슬프다.
“학생들, 이리 와. 안쪽도 똑같애.”
우리는 쭈뼛거리며 동명항 어귀에서 좌판을 부려두고 홍게와 대게를 파는 첫 번째 가게에 다가갔다. 대포항은 사람도 많고 가격도 비싸다는 말에 조금은 저렴할까 싶어 길을 틀어서 온 동명항이었다. 우리는 대게도 먹고 싶고, 홍게도 먹고 싶고, 팔딱팔딱 뛰는 이름 모를 동해의 활어도 먹고 싶었지만, 통장에는 기십만 원이 채 안 되는 돈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동명항 안으로 자신 있게 걸어 들어갈 용기조차도 앗아가 버렸다.
“사장님, 홍게는 한 마리에 얼마씩 할까요?”
“얘는 삼만 원인데 이런 건 작아서 라면에나 넣어먹는 거야. 오만 원짜리는 두 마리 시켜야 먹을 만 해.”
“……. 죄송한데 한 마리도 괜찮을까요?”
두 마리를 채 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 내 얼굴을 홍게처럼 붉게 물들였다. 손바닥만 한 홍게조차 배불리 사줄 수 없는 내가 너무 부끄러웠고, 그런 남자친구만 믿고 속초까지 따라온 그녀가 가련했다. ‘나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과 같은 이런저런 상념들이 머릿속에서 파도치고 있을 때, 사장님의 한 마디가 불쑥 들어왔다.
“학생들이 먹기에 홍게는 좀 비싸. 여기 다리가 한두 개 떨어진 놈들이 있는데 봐볼래? 같은 날 들어온 거라 싱싱한데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다리만 떨어진 놈들이야. 오만 원만 주면 이거 두 마리 아줌마가 맛있게 쪄줄게. 나중에 취직하면 여기 와서 한 번 더 팔아줘. 알았지?”
마치 내 속을 다 들여다본 듯, 사장님은 배려가 가득한 제안을 해주었다. 비록 다리가 두어 개씩 없는 게였지만 한 마리면 요기가 될 정도로 충분한 크기였고, 먼 거리까지 와서 빈속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 눈물 나게 감사했다. 플라스틱으로 된 간이 테이블에 앉아 나무젓가락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빈상에서, 우리는 이다음에 꼭 다리가 다 붙어있는 홍게를, 아니 홍게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커다란 대게를 사 먹자는 약속을 재잘대며 맛있는 비린내를 풍기는 찜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와, 완전 푸짐하다.”
“게딱지는 아줌마가 밥을 비벼줄게. 그렇게 먹는 게 더 맛있어. 밥은 서비스야.”
“감사합니다.”
이윽고 찜기에서 나와 손질을 거쳐 커다란 접시에 먹기 좋게 담긴 홍게의 모습은 실로 장엄했다. 홍게를 처음 먹어보는 것을 눈치챈 사장님께서는 테이블에 붙어 친절하게 먹는 방법을 알려주시며, 밥과 김가루, 참기름을 가져와 게딱지에 비벼주셨다. 크래미와 비슷하면서도 뭔가 다른 듯한 맛과 아직은 조금 남아있는 한여름의 푹푹 찌는 열기와 이따금 불어오는 선선한 바닷바람이 어우러져 조금 이르지만 황홀한 저녁을 우리에게 선사해주었다. 이후에도 홍게는 아니어도 대게니, 킹크랩이니 온갖 게들을 먹어보았지만 이상하게도 이때 먹었던 다리가 부족한 홍게처럼 맛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얼추 우리가 구색을 갖추어가며 먹기 시작하자 사장님께서는 친구로 보이는 분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합석해 같이 대게를 드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윽고 한 부부가 손님으로 왔는데 시부모와 자녀들도 함께 온 여섯 명의 꽤 많은 손님으로 보였다. 흘깃 보고, 게 다리에서 살을 발라내고 있는데 갑자기 큰 고함소리가 들렸다.
“아줌마! 그냥 환불할게요!”
“이미 찜기에 들어간 걸 어떻게 환불해드려요. 그렇게는 못하죠.”
“아니, 환불해달라면 환불해줄 것이지 뭔 말이 그렇게 많아? 나 여기 현지인인데 한번 소문나게 해 드려요?”
“아니 글쎄, 현지인이든 관광객이든 이미 찌고 있는 걸 어떻게 환불해드리냐구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인자했던 사장님의 목소리가 마치 연극을 시작한 배우처럼 날카롭게 변했다. 가만히 듣고 있으니, 밖에서 사 온 회를 함께 먹으려면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는 식당의 규칙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아주머니가 환불을 요구하다 꽤 성이 난 모양이다. 슬픈 멜로 영화 같았던 우리의 저녁도 이상한 분위기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냥 환불해달라면 해달라구!!!!!!”
도저히 집안 어른과 함께 있다고는 믿지 못할 정도의 비명을 질러대며 아주머니는 악다구니를 쓰기 시작했다. 남편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중재는 하지 않고 지켜만 보고 있었는데 아마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닐 성싶었다.
“애기 엄마, 너무 화내지 말고 차근차근 얘기해봐요.”
아까 사장님이 동석했던 테이블에 앉아있던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께서 드디어 이 싸움의 중재자로 나서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나서지 않았다면 조만간 회나 바가지 등이 우리가 먹는 테이블 근처로 날아다닐 것이 확실했기에 아저씨는 우리의 평화로운 저녁을 지켜주는 수호자 같았다. 이윽고 아저씨는 사장님을 설득해 추가 비용을 받지 않고, 그냥 회와 홍게를 같이 먹는 꽤 그럴싸한 중재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계속 환불만을 고집했다. 딱히 누구 편을 들려는 생각은 없었지만, 이미 조리를 한 홍게를 팔 수는 없는 것 같았고, 우리에게 무척 친절했던 사장님 쪽에 마음이 기우는 것도 사실이었다.
“애기 엄마, 아무리 화가 나도 이미 찌고 있는 홍게를 환불해줄 수는 없잖아요. 안 그래?”
“난 모르겠고 그냥 돌려달라고, 아저씨가 환불해 줄 거야?”
도대체 어느 부분이 심기를 건드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저 말에 아저씨는 마치 보름달을 본 늑대인간처럼 돌변했다.
“아니, 근데 내가 팔았어 이 년아? 그냥 쳐 먹으라고 좀!”
신사 같은 태도로 조곤조곤 설득하던 아저씨의 돌변에 나와 여자친구는 거울처럼 둘 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사실 좀 웃기기도 한 상황이었지만 웃었다가는 저 무시무시한 싸움에 우리도 말려들어갈 것만 같아서 방금 전의 슬픈 생각을 떠올리며 간신히 웃음을 참아내었다. 그리고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아주머니의 남편을 보았다. 남편은 마치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먼발치에서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시부모는 아주머니의 뒤에 서서 아까 내가 홍게를 사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때의 그 얼굴색을 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아저씨의 급발진이 효과가 있었다. 결국 쪄 낸 홍게를 포장해가는 것으로 이 긴장된 상황은 해결이 되었다. 도대체 이게 이렇게 화낼 일인가 싶어서 어이가 없었고, 또 한편으론 인자하게 우리를 맞아주던 사장님이 절대 물러서지 않으시는 모습을 보며, 역시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딱지에 소복이 담긴 고소한 게딱지 밥과 유리병에 담긴 사이다 한 잔을 끝으로 우리의 저녁 식사도 끝이 났다. 충분히 배가 불렀기에 회를 먹을 필요는 없었고, 우리는 소화도 시킬 겸 테트라포드가 잔뜩 기대어 있는 방파제를 손을 잡고 거닐었다. 이제 해는 뉘엿뉘엿 넘어갔고, 아련한 열기와 선선한 바닷바람, 그리고 처음 보는 듯한 연보라색의 하늘이 우리를 감싸주었다. 꽤나 날씨가 맑았는지 서둘러 나온 몇몇 별과 조각달이 연보라색의 하늘에 수를 놓고 있었다.
“하늘이 진짜 예쁘다. 아까 부끄럽게 해서 미안해. 이다음에 취업하게 되면 내가 꼭 다시 와서 대게를 배불러서 남길 만큼 사줄게.”
“안 남길 건데? 더 먹을 건데?”
내 마음을 달래주려는 듯 오히려 농담으로 받아주는 그녀가 고마웠다. 그런데 갑자기 무언가에 홀린 듯 이상한 기분이 들며 갑자기 울적해졌다. 왠지 우리는 이곳에 다시 오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었다. 그리고 이런 예쁜 연보라색의 속초 하늘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생각에 빠져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 미래를 맞고 싶지 않았기에 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오빠, 걱정하지 마. 오빠 꺼도 남겨줄게.”
그녀가 나를 보다 깜짝 놀라 달래주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울려했던 이유를 끝까지 그녀에게 말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우리의 끝이 다가올 때 한 번씩 그녀는 내게 속초에 다시 가고 싶다는 말을 하곤 했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끝끝내 속초를 다시 가지 않았다. 이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그날의 내가 속초에서 본능적으로 마지막인 것을 느꼈던 것처럼 그녀 또한 사실 속초가 가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때의 우리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이걸 이제야 알아서 가슴이 먹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