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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지은 Feb 13. 2019

무슨 일 하세요?

어떤 날 #18




안녕하세요.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면 사람들은 서로 통성명을 할 때 보통 세 가지 정보를 주고받는다.


첫째, 이름

둘째, 나이

셋째, 직업


그리고 간혹 어떤 사람들은 사적인 자리에서도 '명함'을 먼저 건넨다. 그 대신 이렇게 말해주면 어떨까.


"안녕하세요. 저는 홍길동이고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틈만 나면 여행 다니는 게 취미예요."


만약 누군가가 나를 처음 만났을 때 이런 식으로 자신을 소개한다면 정말 멋질 것 같다.


뭐,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이야기일 테고, 실제로 우리 사회의 통상적인 만남은 내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


취업 전인 청춘이라면 지난 설에 친척들로부터 "넌 요즘 뭐하고 지내니?", "취업 준비는 잘 돼가니?" 같은 인사를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재미없어도 어쩌겠는가. 곰곰 생각해보면 이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자연스럽게 학습되어온 인사 형식이다. 이를테면 이런 인사말이다.


"저는 00 중학교 3학년 아무개입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소속(+직업)과 이름을 밝히는 것을 당연스레 학습하며 자라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런 식의 통성명 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와 함께 이 질문도 오래도록 계속될 것이다.



무슨 일 하세요?



『저 청소일 하는데요?』


  


무슨 일 하세요?



누군가 당신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지금 당신의 입에서 튀어나올 말은 무엇일까.


이 책은 청소업을 하는 20대 여성의 대답을 담은 툰 에세이다. 저자인 김예지 작가는 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라는 꿈이 있었다.


직장에 다닌 적도 있었지만 퇴사 후 재취업에 실패했다. 그러다가 엄마와 함께 청소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작업 의뢰는 거의 없지만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도 버리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지금은 작업 의뢰가 많아지지 않았을까?)


수입의 유무와 상관없이 그녀의 마음속에는 두 개의 직업이 있는 샘이었고, 당연히 사람들로부터 무슨 일 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청소일'과 수입은 거의 없지만 자신의 꿈인 '일러스트레이터' 둘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 말할 것인지.  






그녀는 청소일을 하면서 비로소 꿈과 직업을 동일시하며 성장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때로는 꿈이 없는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꿈에서 멀어지고 청소일에서도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의 현실에 속상해한다.




20대 여성이라는 정체성



그녀는 20대 여성으로서 '보편적으로 보이지 않는 청소일'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움츠러들고 힘들었던 마음을 치유하고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심리 상담을 받기도 했다고.


책에는 압축된 이미지 몇 컷으로 다루고 넘어갔지만 그 과정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 그래도 20대의 날들은 미생에 가까우니까.


그녀는 심리 상담을 통해 자신이 청소일을 선택했던 이유와 목적에 대해 재확인할 수 있었고, 그 일의 보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나는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생업의 무게



어른은 스스로 선택한 것에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 선택으로 인한 후회는 적을수록 좋고, 결과가 만족스럽다면 행복지수와 자존감이 함께 올라간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가 느꼈을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의 변화가 이 책에 녹아 있다. 글이 거의 없어서 책장이 빨리 넘어가지만 그녀가 견뎌온 사람들의 시선과 고민의 무게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 우리가 저마다 짊어진 삶의 무게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이기지 못했어요.
그냥 견뎠어요.



그녀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움츠러드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걸 견디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눈여겨보았던 것은 바로 자존감의 변화였다. 일러스트레이터라는 꿈만을 좇지 않고, 엄마와 청소일을 시작한 건 엄연히 그녀의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자신의 일을 인정하고 당당하게 고백함으로써, 그녀는 다시 자신의 삶을 되찾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며, 이렇게 책을 내고 성취감을 맛보게 되었다.


이제 그녀는 온전히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법을 터득한 듯 보인다.

 

어렵사리 얻은 값진 깨달음이 앞으로 그녀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자양분이 될 거라고 믿는다. 부디 그 방법을 잊지 않고 계속 나아가길 바란다.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책임지는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힘든 걸 하고 있는 당신, 그리고 우리 모두 훌륭하다.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칭찬해주는 마음의 비타민을 반드시 복용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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