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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균 Jan 26. 2016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 리뷰

주체할 수 없는 그 감정에 뛰어내리고야 말았다

b.

 몇년째 솔로로 독수공방을 자처하는 놈 하나가 보고 난뒤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슬며시 추천해준 영화였다. 최근에 산타님께서 안 좋은 소문에 휩싸인 이후, <내부자들> 속 연기력으로 다시금 인정받고 있는터라 괜시리 그의 예전 연기가 보고 싶기도 했다.
 사실 고민도 많이 했다. 이 영화야 워낙 유명했으니 봐야지, 봐야지 하고 있지만서도, 연출하신 감독님께서 신작으로 내놓으신 <조선마술사>가 조선'맙소사'라는 평을 들으며 쓸쓸히 극장에서 내려오고 있던 터라 기대보단 염려가 더 컸다.



1.
 불교의 윤회사상, 흔히 우리가 얘기하는 운명에 관한 이야기다. 근데 그 운명이 동성애적 코드를 가지고 돌아왔다. 2000년에 이런 이야기를 접했을 당시 관객들은 이 영화를 온전히 두 사람 간의 사랑이야기로 바라보았을까. 홍석천이 많은 이들의 존경과 존중을 받고, 한 해에 동성애적 코드를 가진 영화가 퀴어영화라는 예쁜 이름을 가지고 몇 개씩 개봉하는 지금에야 이 이야기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 당시의 분위기가 어땠을까, 참 궁금하다.

2.
 영화는 친구의 말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게 했다. 이병헌의 연기는 완벽했고, 이은주의 외모는 한없이 아름다웠다. 그저 바라보기에도 애틋한 감정들을 이렇게 잘 연기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몰입하게 만들었고, 그만큼 빠져나오기 쉽지 않았다. 이은주가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영화를 보고 나서 이은주가 나온 영화들을 다시금 찾아보곤 했다. 아름다운만큼 안타깝다.
 이은주의 외모는 여기서 조금 정리하고, 어떻게 보면 이병헌이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간다. 자칫 현실과의 괴리가 느껴질 수도 있을법한 이야기를 이병헌이 현실의 연기로 끄집어낸다. 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냐는 원망스런 절규 이후엔 그 자리에 '임현빈' 대신 '인태희'가 서 있었다. 이병헌의 연기는 그토록 현실적이고, 진실했다.
 여현수의 연기는 조금 아쉽다가도, 대체로 만족스럽고, 또 이상하다가도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다시 보니 이병헌과 있을 때 대체로 긍정적이다가, 이병헌 없이 홍수현이나 다른 배우들과 있으면 조금 부정적이었다. 이병헌이 내뿜는 연기가 그 정도였다. 이 영화에서.

3.
 감초라고 불릴 수 있는 이범수가 미래에서 나오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전미선이 과거 이범수의 자리를 고스란히 차지하고 있었지만, 두 사람 사이의 이야기가 공백으로 남아있는 탓인지 괜시리 이범수가 더 궁금해지곤 했다. 어찌보면 이 영화에서 나의 포커스가 1983년에 지나치게 집중되어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신기하게 과거의 장면들만 생각하면 가슴이 시리다. 내가 직접 겪은 일도 아닌데, 감정의 소용돌이가 격하게 휘몰아쳤다. 애틋함을 넘어선 어떤 감정을 느낀 것인지, 아직도 영화 속 과거의 장면들만 생각하면, 특히나 두 사람이 긴 밤을 함께 보내던 그 장면들을 곱씹을 때면 어딘가가 애잔하면서도 시리다.

4.
 엔딩은 참 좋았다. 판타지적 요소를 적당히 끊어내고 떠나는 모습이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았다. 아마 최고보단 최선의 결말이지 않았을까. 마지막 두 사람의 내레이션마저 좋았다.
 그냥 씁쓸하면서도 좋았다. 끝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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