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고블린의 푸드 케이크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영화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항상 마음속에 먼저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초콜릿 케이크'하면 가장 먼저 생각하는 영화, <마틸다>다. 로알드 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 속 마틸다는 나를 처음 경험해보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었고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알게 해주기도 했다. 마틸다 같은 아이가 되고 싶었고 허니 선생님 같은 선생님을 만나고 싶었다. 조금 더 커서는 허니 선생님이 되고 싶기도 했다. 영화 속 기억에 남는 장면들을 많지만 그래도 모든 사람이 가장 인상 깊게 본 장면은 바로 그 초콜릿 케이크 장면이 아닐까?
트런치불 교장의 케이크 한 조각을 몰래 먹은 아이의 운명은 커다란 케이크 한 판을 혼자 다 먹는 것이었다. '특별히' 아이를 위해 만들어진 케이크는 책상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컸고 아무리 초콜릿을 좋아하고, 아무리 케이크를 좋아하는 아이라도 한 번에 다 먹기는 힘든 크기였다. 남들이 다 보는 앞에서, 혼자서 케이크를 꾸역꾸역 먹고 있는 브루스, 힘들어하는 브루스에게 마틸다는 '할 수 있다'며 응원한다. 어린아이들을 괴롭히는 트런치불에 대한 반항이자 결코 혼자 케이크를 먹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응원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초콜릿 케이크를 만들고 마틸다의 그 장면을 다시 생각하면서 '혼자 먹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혼밥이라는 말이 생기고 혼밥을 위한 식당과 식료품이 생기는 가운데 혼자 음식을 준비해서 혼자 맛있게 먹는 것은 때로는 기쁘지만, 때로는 어딘가 쓸쓸하기도 하다.
앤의 이야기에서 초콜릿 케이크가 직접 등장하는 장면은 없다. 하지만 케이트 맥도널드는 앤이 '유령의 숲'이라고 부르고 싶어 하는 가문비나무 숲의 이야기에서 '초콜릿 고블린의 푸드 케이크'를 생각했다. 평범한 이름은 싫다면서 마을 곳곳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는 앤은 가문비나무 숲에 '유령의 숲'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되려 본인이 겁을 먹는 바람에 다시는 평범한 이름들을 불평하지 않겠다는 말을 한다.
다이애나와 유령의 이야기를 하며 가문비나무 숲은 지나온 그날 밤, 앤은 마릴라의 심부름으로 혼자 가문비나무 숲에 가게 되고 겁에 질려 집에 돌아왔다.
어쩐지 혼자는 쓸쓸하다.
혼자인 삶을 좋아하고 혼자 하는 활동들을 좋아하는 나는 그래서 독서를 좋아하고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모두 혼자 하는 일들이지만 가끔은 누군가 함께 하는 일들이 더 좋다는 것을 알고 있기도 하다. 음식을 만들어서 먹는 것도 마찬가지, 가끔은 혼자 마음대로 음식을 만들고 양껏 먹고 싶지만 때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누군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싶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혼자든 함께든, 편하게 먹는 음식이 가장 중요하다.
브루스처럼 모두가 자신만을 지켜보고 있고, 지금 당장 먹고 싶지는 않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 순간, 나는 그냥 도망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음식은 기분 좋고 삶을 즐겁게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그래서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음식을 나누고, 요리를 나누고, 그 음식의 경험과 기분을 나누고 싶다. 그래서 음식은 절대로 고통스럽게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 그 모든 과정에서 좋은 느낌들만 가득하길 바란다.
<플리즈 라이크 미>를 다시 꺼내보자면 다양한 요리들로 가득한 그 시리즈에서, 항상 누군가 함께 음식을 먹는 이야기가 나오는 시리즈에서, 가장 먼저 생각나는 그 노래, 'I'll be Fine'은 제목도 제목이지만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섬이다'라는 대사로 시작하는 휴 그랜트와 니콜라스 홀트, 토니 콜레트 주연의 영화 '어바웃 어 보이'는 '모든 사람은 각자의 섬이다. 그러나 바다 밑으로 다들 연결되어 있다'로 끝이 나는데, 나는 이 영화를 정말 많이 생각하는 편이다. 깊이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 대사를 자주 생각한다. 아무리 혼자인 삶이 좋은 사람이라도 외로울 때는 있는 법이니.
(*우유 대신 코코넛 밀크를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