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이란 단어에 대한 감정
우리 항공사로 귀국하는 한국 승객들을 마주할 때면, 대부분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건네주신다.
특히 유럽에서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어르신들을 만났을 때는 더 그렇다.
“드디어 한국말하는 사람을 찾았네! 이제야 한숨 돌리겠어요! 반가워요!”
그 반가움이 담긴 웃음 속에서, 나는 비행 내내 뭐라도 더 챙겨드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랜딩을 앞두고 저녁 서비스를 마치고 나니, 한숨 돌릴 틈도 없이 기내는 분주했다.
그 와중에, 문득 창밖을 바라보는 한 어르신이 눈에 들어왔다.
식사는 이미 끝내셨는지, 혹은 아예 드시지 않으신 건지, 테이블은 말끔했다.
다른 승객들을 챙기며 지나칠 때마다, 계속 창밖을 바라보는 모습이 몇 번이고 눈에 밟혔다.
조심스레 다가가 물었다.
“어르신, 식사는 하셨어요? 녹차나 커피 한 잔 챙겨드릴까요?”
어르신은 조용히 미소 지으며,
“입맛이 없어서 식사는 괜찮고… 그래요, 녹차나 한 잔 부탁할게요.”
아마 긴 여행에 여독이 쌓이신 거겠지.
그 마음을 헤아리며 따뜻하게 우린 녹차와 함께, 디저트로 나온 과일을 곁들여 준비해 드렸다.
“여행 어디 다녀오셨어요?”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자,
어르신은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14일 동안 다녀오셨다고 하셨다.
“맛있는 거 많이 드셔서 입맛이 없으신가 봐요~”
장난스레 말을 얹자, 녹차를 몇 번 홀짝이시던 어르신의 표정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러곤 조용히, 속마음을 꺼내 놓으셨다.
“이런 거 다 필요 없어. 자식이 좋은 거 다 보내주고,
여기 비즈니스 태우고, 매년 해외여행 보내주면 뭐해.
나 혼자 다 재미없어. 그러니까 입맛도 없고, 재미도 없지…”
순간, 마음이 저릿해지며 어르신의 말에 뭐라 위로를 건네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혔다.
'비즈니스 클래스에 앉으신 분이 이런 말을 하다니'
그 생각을 한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비즈니스 클래스의 좌석은 넓지만, 마음의 빈자리를 채워주지는 못하는구나.
그분이 앉은자리는 편안했을지 몰라도, 그 마음은 한 시간도 편치 않았던 것이다.
결국 나는 조용히 갤리로 발걸음을 돌렸다.
따뜻한 무언가라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나는 조식용으로 준비된 여분의 황탯국과 죽을 조심스레 챙겨서 어머님께 돌아갔다.
“이거 원래는 조식용인데요, 지금 드셔도 돼요.
빈속으로 내리시면 시장하실까 봐요. 한 입이라도 드시고 가세요.”
어르신은 한사코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셨지만, 어느새 수저는 손에 들려 있었다.
식사를 하시는 동안, 나는 여행 중 가장 좋았던 순간들을 물으며 말동무가 되었다.
마지막 한 입을 넘기신 어르신이, 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으셨다.
“드디어 집에 온 것 같아. 이렇게 얘기하니까… 의미 있는 귀국이네. 고마워요.”
그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귀국이라는 말이 단지 '집에 돌아감'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이 집에 돌아간 것처럼,
'편안해지는 순간'일 수도 있다는 걸
그날 다시금 배웠다.
비행은 아직 착륙 40분 전이었지만,
어르신의 마음은 먼저 집에 도착해 있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