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작아질 것 같다
마케팅 솔루션사를 거쳐서 인하우스 마케터로 경력을 이어가다 보니
최근에 마케팅 솔루션 시장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는 일들이 몇 번 있었는데요,
이야기를 해보면서 스스로도 고민을 꽤 많이 하기도 했고 업계 분들도 흥미롭게 느끼는 주제라, 메신저나 말로 휘발시키기에는 아까워서 그 핵심적인 고민들을 기록으로 남겨둡니다.
21년, 기업들이 'Digital Transformation'을 한창 외치던 때 저도 커리어 DT에 성공했습니다.
호텔이라는 아주 클래식한 업계에 있다가 그냥 마케팅도 아닌 '마테크' 회사로 넘어오면서
IT, 애드테크, 마테크 업계의 신문물에 빠져들었습니다.
Product Analytics, CRM자동화, MMP까지 마케팅 업계에서 여러 솔루션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되고 세부적인 기능단위까지 빠르게 팔로업하며 그로스로 연결할 방안을 고민하다 보니, 이런 글로벌 SaaS들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그 속도는 일반 서비스들이 자체개발로 따라잡기에는 격차가 너무 크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로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비슷한 솔루션 중 티어가 더 낮은 걸 선택하거나 자체적으로 만들겠다는 이야기들은 저에겐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직전 회사에서 잘 쓰던 PA 솔루션이 있었는데, 지금 회사에서는 대부분 쿼리로 봐야 하다 보니
이 많은 데이터를 다 쿼리로 봐야 하는 게 말이 되나? PA툴을 내놔라!! 마음속으로 (사실은 입밖으로도) 외치기도 했습니다
① n8n을 쓸 줄 알게 됨
- send API가 있으면 단순한 CRM발송자동화들은 3rd-party를 거치지 않고 할 수 있게 됨
- 우리 DB 기반 타겟팅/개인화/트리거링 가능
→ 직접 CRM 자동화 툴을 구축해 볼 수 있지 않을까?
② 구글 Colab에 붙어있는 Gemini로 데이터를 분석함
- raw data 단위로 유의성판단부터 군집분석까지 더 여러 관점으로 깊이 있는 분석을 속도감 있게 진행함
- 인사이트까지 바로 정리해 줌.
→ 사내 맞춤형 PA 솔루션을 만들어볼까..?
✯ ③ Cursor로 AI Agent를 써 보고 있음
- MCP로 Cursor-Athena-Github-Notion 등 연결.
- 우리 DB, 우리 회사 DA가 짜둔 쿼리 및 표준을 바탕으로
Agent가 쿼리를 자동으로 생성 > Agent가 실행 > Agent가 데이터 추출 > Agent가 그 결과를 갖고 바로 분석 > Agent가 Notion 등으로 export
- ②번처럼 Colab에서 분석하려면 내가 or GPT 등으로 쿼리를 짜서 > 내가 실행 > 내가 추출 > 내가 drive에 올려서 > 내가 Colab 내에서 파일 불러오도록 디렉토리, 파일명 알려주면서 해야 했다면, AI Agent 경험은 업무 실행 속도와 반복 비용 관점에서 아예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 이미 우리 회사만의 PA가 만들어지는 중인데..?
물론 당장은 마케팅 SaaS를 뗄 수 없고 없으면 너무도 불편한 건 맞습니다.
다만, 저처럼 기술적 지식을 쬐금 가진 마케터도 일부 대체안을 만들어 보고 있으니,
회사 단위에서 인력, 비용을 투자해서 '지금 수준의 마케팅 SaaS'를 대체하는 건 그리 오래 걸리는 일이 아닐 듯합니다.
많은 SaaS 회사들이 그 안에 AI 기능을 넣어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데, 규모감이 있는 주요 고객사들은 스스로 AI 역량을 내재화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외부 솔루션의 AI추천, 유저 관련 모델링에 의존도를 높이는 건 피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경쟁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마케터 (=마케팅 SaaS의 고객)의 새로운 니즈 발굴 및 선제대응
마케팅 업계의 트렌드와 새로운 니즈를 계속 찾아내는 부분은, 여러 고객사의 니즈를 만나는 전문 SaaS가 더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퍼포먼스가 계속 콘텐츠/바이럴과 결합되는 트렌드 안에서 어떻게 비정형적인 액션들의 순증 (incrementality)을 측정하고 기여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영역, 우리 실험들이 고객을 정량+정성적으로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에 대한 통합적인 측정, 숫자 하나로 일괄 판단하기 어려운 CRM frequency capping 최적화 등 해결되지 않은 최신의 과제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동안 마케팅 SaaS들이 프로덕트를 개선해 올 때 마케터의 니즈가 쌓이고 쌓여서 배포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이 최신의 과제들에 얼마나 빠르고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가 key가 될 것입니다.
로컬 마케팅 트렌드에 대한 기민한 팔로업
특히 글로벌 솔루션사들은 얼마나 로컬에 적합한 학습이 가능한지도 중요해 보이는데, 예를 들면 해외 마케팅 사례를 아무리 알려줘도 고객사는 그걸 원하지 않고, 바로 옆 나의 경쟁사,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쓰는 저 서비스의 사례가 뭔지를 알고 싶어 합니다. 이 간극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local optimization 체크박스를 누르면 한국 시장에 맞게 최적화되는 예시들을 상상해 봅니다
쉽게 붙였다 뗐다 Lite SaaS
SMB, 1인기업, 바이브코딩 기반의 서비스가 쏟아져 나올 새로운 세상이 코앞에 있습니다. 타이트한 예산과 인력으로 운영되는 서비스들을 대상으로 하는 가벼운 SaaS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기존 SaaS들도 라이트한 버전부터 full stack 버전까지 다양한 플랜들을 제공하게 될 거고요. 어도비 포토샵이 최근에 2년 무료 extension을 개방했던 거나, 앰플리튜드가 플랜 다변화와 설치를 쉽게 할 수 있도록 기능들을 만들어내는 것들이 예시가 될 듯합니다. 최근에 바이브코딩으로 웹서비스를 만들면서 프롬프트와 API Key만으로 앰플리튜드 택소노미를 직접 짤 필요도 없이 (단순한 서비스라서 더더욱) 알아서 주요한 이벤트/프로퍼티를 리스트업 하고 앰플리튜드 설치, 이벤트로깅까지 해 주더라고요. 이렇게 마케터의 전문성이나 Customer Success 의존도를 최소화해서 쉽게 설치/사용해 볼 수 있는 특성들이 이젠 필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변화 앞에서 마케터는 어떻게 일해야 할까를 함께 고민하게 됩니다.
SaaS 도입을 해 봤거나 고려했던 마케터라면 그 과정이 얼마나 시간과 리소스를 잡아먹는지 아실 거예요. 무슨 솔루션을 도입할까를 고민하고 연관부서에 이 솔루션이 왜 필요한지를 설득하는 과정부터 시작해서 설치가이드 정리, 타임라인 관리, 택소노미 설계, 솔루션 도입 후 세팅, 내부 사용성을 올리는 몇 개월의 지난한 과정들이 앞으로는 더 린하고 가볍게, 대신 개수가 많아지는 형태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내가 직접 할 수 있다는 mindset
당분간 (1년 미만) 이 변화는 워라밸을 가져다주기보다 오히려 내 일은 더 많아지는 변화라고 생각하는데요, 많은 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본업에 더 리소스를 집중하다 보니 admin, backoffice, 3rd-party 솔루션과 같은 내부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영역은 우선순위가 좀 낮아지게 되는데, 이 환경에서 '와 이 의존도를 낮출 수 있겠네' (p) + '앗.. 그럼 내가 해야 되네' (n)의 상황이라서요. '니즈가 있음▶(저기서 안된대?)▶그럼 내가 해 봐야지!▶모자란 영역에 대한 협업 설득하기'의 과정을 주도적으로 진행할 마음가짐과 역량이 주요 자질이 되고 있습니다.
문제해결 방법에 대한 상상력
솔루션사 다닐 때 고객사 미팅의 첫 시작은 항상 담당자분의 조금 뻘쭘한 고백이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아직 잘 못 쓰고 있어요..'
지금까지 우리는 어떤 툴을 쓸까, 이 툴을 어떻게 잘 쓸까 와 같은 도구에 대한 문제와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할까,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어떤 게 필요할까 와 같은 본질적인 고객 문제를 연결 짓지 못했습니다. 이제 툴을 잘 못쓰고 있다는 죄책감을 던지고, 우리 고객의 문제를 중심에 두고▶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SaaS뿐 아니라 프로덕트, 또는 내가 만든 어떤 것까지 열어두고 찾는 상상력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SaaS가 작아진다는 건 위기가 아니라, 마케터가 툴의 기능 제약에서 벗어나 진짜 우리 고객의 문제 해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본질의 시대'가 왔다는 신호입니다.
'운영자(Admin)'에서 '설계자(Architect)'로
이력서에 쓰는 Skills 영역이 달라질 거예요. 경쟁력은 어떤 툴을 쓰느냐가 아니라, 우리 조직에 맞는 마케팅 시스템을 직접 정의하고 끊임없이 재구성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마케터의 경쟁력은 비싼 솔루션을 잘 다루는 '운영 능력(Admin)'이 아니라, 여러 방식들을 엮어 우리 조직에 딱 맞는 워크플로우를 짜는 '설계 능력(Architecture)'에서 나올 거라 생각합니다.
글을 쓰다 보니 오늘의 이 생각도 또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네요.
'지금까지의' SaaS 기능들은 AI로 일부 대체가 가능하겠으나, 앞으로 SaaS들이 어떤 새로운 제안들을 하게 될지 기대도 됩니다.
일을 즐길 수 있는 기간이 2년 남짓 남았다는 얘기를 봤습니다. 몇 개월, 며칠마다 달라지는 이 환경을 잘 쫓아가보면서 AI시대 마케터, 또는 가치를 만드는 어떤 직업인으로 우리 조직에 맞는 구조를 직접 그리는 '설계자(Architect)'로 계속 진화해 봐야겠습니다.
여러분은 요즘 업무를 어떻게 설계하고 계신가요? 나만의 워크플로우나 소소한 팁이 있다면 편하게 댓글로 나눠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