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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유 Mar 16. 2023

불도우저 같은 추진력으로 안 되는 책 쓰기


난 생각과 동시에 발이 나가는 사람이다. 그 말인즉슨 뭘 해야지 생각하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행동파라는 것!

게다가 성격 급한 대회가 있다면 챔피언 감이다.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런 내 성격에 대해 여동생이 항상 말하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우리 언니 성격이 얼마나 급한지 예전에 어디 피부과가 좋다고 얘기하자마자 가방 들고 현관에 서있더라고요"


충동성이 높은 면도 있고 용감하기론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 2년 전 동시에 가게 3개를 오픈할 땐 나의 이 행동력이 빛을 발했었다.

그런데 이런 내가 글을 쓰는 재미에 빠져버렸다. 하루라도 뭔가를 안 쓰고 넘어가는 날엔 나사 하나가 빠진 느낌이 들 정도로..


글을 쓰는 것도 스마트폰으로 30분 정도에 한 꼭지를 쓴다. 그리고 거의 수정하지 않고 발행 버튼을 미련 없이 누른다.

그리고는 작가님들의 반응을 기다린다.

'라이킷' 숫자에 집착한다.

완전 관종이다.

브런치에 글이 100개쯤 되었을 때 잘 다듬으면 책을 낼 수 있지 않을까..? 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출간계약, 출간작가란 단어를 보기만 해도 부러워서 병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 나도 책을 내보자'

그래서 올초에 목표를 '책 쓰기'로 정해버렸다.


그러면서 열심히 초고를 쓰기 시작했다. 원래 있던 글에 새로 쓰는 글이 합해져서 20개 정도 완성된 시점이다. 그렇게 완성된 글을 읽다 보면 '뭔지 모르지만 어설프고 부족하다'란 느낌을 받게 된다.

스스로 분석한 바로는  '솔직하고 진정성은 있지만 디테일한 세부묘사가 부족하다'란 결론에 다다랐다.




지난주 친한 작가님께 지금까지 쓴 원고를 보내고  피드백을 해주시길 기다렸다. 처음 쓰기 시작할 때 작가님이 "내 몸에 착 달라붙어있는 이야기를 신명 나게 써보라"라고 말씀해 주셨고 난 내 성격대로 신나게 글을 썼다.

이제나 저제나 작가님께 연락이 오길 기다리다 또 급한 성격에 먼저 카톡을 보냈다.

'작가님 저 잊어버리신 건 아니죠?'라고..

'아니요 잊지 않았어요 곧 연락드릴게요'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작가님이다. 과연 무슨 말을 해주실지... 애써 태연한 척, 명랑한 척 전화를 받았지만

내 가슴은 떨고 있었다.

작가님의 피드백을 요약해 보면

-내 성격처럼 글을 너무 빠르게 쓰느라 글이 엉성한 면이 있다.

-한 꼭지에 오래 머무르면서 기억을 소환해서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쓰라.

-촘촘하게 밀도 있게 쓰라.

-계속해서 글을 쓰는 사람이 되려면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끊임없이 관찰하고 모든 감각을 열어놓으라.


결국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였다.

사업을 추진할 때 했던 불도우저 같은 방식으로 글을 쓰려고 했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추진하면 책 한 권이 뚝딱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독자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돈을 내고 내 책을 사게 만들려면 그만큼의 가치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깊이 사유하고 면밀히 관찰하고 차분하게 한 가지 생각에 머무는 건 내 특성과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하나의 생각에 머물며 이리저리 굴려보고 되새김질해봐야 한다는데 이 급한 성격으로 과연 가능한 일일까?

50대 후반의 내가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변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예술성이나 재능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책 쓰기를 포기해야 하는 거 아닐까?

글쓰기에 특별한 재능도 없는데 이제 와서 뭔 책을 쓰겠다고 괜히 사서 고생하는 느낌도 들고 이 스트레스를 오랜 시간 지녀야 하는데 과연 감당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깊은 고민에 빠졌다. 마음이 널을 뛰고 있다.

'그래도 마음먹었으니 한번 끝까지 해보자'

'아니야. 굳이 힘든 책 쓰기를 하면서 스트레스받을 필요가 뭐가 있어?'

'내 책이 나오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아.'

'하지만 깊이 있고 차분하게 사유하는 능력이 부족하잖아'

벌써 3일째 이 고민을 붙들고 있다.

나로선 이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내 어린 시절 상처와 힘들었던 결혼생활, 그리고 이혼을 선택한 후 남편을 만나 행복한 현재의 삶을 쓰고 싶은 진짜 속마음은 뭐였을까?

'많이 힘든 상처를 잘 극복하셨네요'라고 위로받고 싶은 걸까?

'나 잘했지요?' 하고 인정받고 싶었던 건 아닐까?

'용감한 선택을 하면 행복해져요' 란 메시지를 주고 싶어서?

아니면 '나와 잘 맞는 남자를 만나야 해요'라는 걸 알리고 싶나?

아니면 이 모든 이유 때문일 수도 있겠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매력 있는 작가님들의 글과 삶을 엿보기 시작했다. 내가 속한 심리상담사들과는 결이 다른 느낌에  '나도 저런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브런치작가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고 출간작가가 되고 싶은 이유도 어쩌면 진짜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이리라. 작가란 직업을 동경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재능 없음이란 거대한 벽에 부딪혀서 그 꿈이 실현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책 쓰기를 계속할 것인가? 그냥 책 내는 걸 포기하고 즐겁게 글쓰기를 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하지만 책을 내건 안 내건 앞으로도 글 쓰는 즐거움을 놓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  이미 글쓰기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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