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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유 Mar 31. 2023

"먹잇감을 응시하는 고양이처럼"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나탈리 골드버그


무엇이 되었든 모든 감각을 집중시켜라. 논리적인 마음을 꺼버려라. 마음을 비워 놓고 생각이 들어가지 않게 하라.
언어가 배꼽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을 느껴라.
머리를 위 속으로 끌어내리고 소화시키라.
당신의 육체가 양분을 빨아들이도록 내버려 두라.  인내심을 가지고 한결같은 균형을 유지하라. 생각에 지층에 있는 무의식의 세계 속으로, 당신의 핏줄 속으로 글쓰기를 삼투시키라.

손을 멈추지 말고 모든 것을, 정맥에서부터 곧장 펜을 통해 종이 위에 토해 놓게 만들라.
멈추지 말라. 망설이지 말라. 백일몽을 꾸지 말라. 제한된 시간이 끝날 때까지 쓰라.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중에서


요즘 읽고 있는 책 중에서 오늘 내가 밑줄 그은 문장이다.

배꼽, 머리, 위 속, 핏줄, 손, 정맥등 신체기관을 많이 사용해서 글을 쓰셨다. 제목부터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라고 하셨다. 획기적인 제목이다.

글쓰기를 하기 위해 시체해부라도 하신 걸까?


언어가 배꼽으로부터 올라오다.

머리를 위 속으로 끌어내리라. 소화시키라.

육체가 양분을 빨아들이게 하라.

핏줄 속으로 글쓰기를 삼투시키라.

정맥에서부터 종이 위에 토해 놓게 하라.


표현들이 강렬하고 무시무시하다. 그런데 이런 강렬함이 너무 통쾌하고 시원하다.

그중에서 '핏줄 속으로 글쓰기를 삼투시키라'는 표현이 제일 눈이 희번득해지게 좋다.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게 핏줄 속으로 글쓰기를 삼투시키는 것일까?




글을 온몸으로 흡수해서 핏줄 속으로 녹아들어 온몸을 순환하게 만들라는 의미 일거라 생각했다.

글쓰기 자체가 내가 되어버리는 것!!

나와 글쓰기 사이에 경계가 없어져 버리는 느낌?

마치 춤을 출 때 음악과 몸이 아일체 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이런 글과의 일체감이 느껴졌었다. 글이 내면에서 밀고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었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책 쓰기를 하면서부터 이런 느낌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글쓰기 자의식이 생겨버렸다.


요즘 내가 관심 갖는 부분이 한 곳에 머물며 사유하며 글 쓰는 거다. 나에게 부족한 부분이기도 하고 급한 성격이라서 한 곳에 머무는 것 자체가 아주 힘들다. 그러니 글쓰기가 좀 재미없어져 버렸다.


하지만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온몸의 감각을 최대한 활용해서 경험하고 그 경험을 해석하는 전문가라 생각된다.

내가 남은 삶을 글 쓰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소원이 있다면 순간순간을  땀구멍까지 열어서 느끼려고 애써야 하리라.


이제 더 이상 내 삶의 모토인 "대충 철저히"가 통하지 않는다. 수박 겉핥기식의 글쓰기는 버려야 하고 30분 만에 쓰윽 써버리는 습관도 더 이상은 안된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내가 나 아닌 다른 존재가 되어야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건가? 하는 의문도 생긴다.


그런 고민들 때문에 책 쓰기를 위한 글쓰기가 일시정지 되었다. 벌써 17일째...

단지 책 쓰기를 위한 글쓰기를 안 했을 뿐인데 삶의 다른 영역들도 덩달아 멈춰있는 듯하다. 약간 무기력증에 빠진 것처럼...

그동안 물밀듯이 써댔던 열정이 사그라들고 책을 써야겠다는 당위성도 스멀스멀 사라져 갔다. 완전히 미로에서 나가는 길을 찾다 찾다 못 찾아서 주저앉아 망연자실한 어린아이 같은 심정이다.




고양이를 키워본 건 처음이다.

강아지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고양이 안에 야수성이 있다. 먹잇감이나 움직이는 장난감을 응시하는 시선에서 주도면밀함이 느껴진다. 한 곳에 시선을 모으고 온몸의 세포를 그것을 향해 열어놓는다. 그리고는 시선을 고정한 채 한발 한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다. 숨도 쉬지 않는 듯이 조심조심...

그리곤 어느 정도 사정거리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덮친다.


내가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이런 '고양이의 태도'다.

모든 감각을 이용해서 보고 듣고 냄새 맡는 것.

"고양이는 다 알아요. 말로 설명해 주면 다 알아들어요. 절대로 혼을 내거나 윽박지르시면 안 돼요.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세요"

얼마 전 동물병원에 갔을 때 원장님이 우리에게 해주신 말씀이다.

'설마 뭘 알아듣겠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설명하지 않았다. 원장님의 말씀을 듣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인간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인간의 언어를 하지 못할 뿐...


일단 우리 집에 함께 살고 있는 우리 딤섬이를 자세히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딤섬이의 눈빛에는 많은 다양한 감정들이 내포되어 있다.

화나는 감정, 사랑스러운 느낌, 삐지는 마음, 밥을 원하는 갈구하는 눈빛등...

온몸의 세포를 열어 더 딤섬이와 교감하다 보면 나도 언젠가 작가로서의 정체성에 걸맞은 촘촘한 감성과 깊이를 지닌 사람으로 변해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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