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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유 Sep 13. 2023

책 쓰기에 문제가 생겼다.

느닷없이 입원


수요일엔 대학동창 만나서 우마카세,

목요일에도 다른 대학동창 만나서 파스타와 피자,

금요일엔 남편 친구 부부와 돼지갈비와 치킨,

그리고 4시간 이상 앉아서 얘기.


이러고도 장이 탈이 안  거라 생각했나? 음식을 조심해야 하는데 3일 연속 건강하지 않은 음식만 먹었던 거다.

게다가 며칠 전부터 소염진통제, 감기약도 먹었고..

토요일 점심때부터 슬슬 조짐이 안 좋았다.

저녁때가 될수록 통증의 강도가 심해졌고 급기야 새벽엔 10점 만점에 10점의 극심한 통증으로 응급실행.


3년 전 자궁경부암으로 복부를 20센티 이상 째고 전절제술을 했다. 그리고 17회의 방사선치료도.

개복수술을 하면서 장이 한번 공기에 노출되면 장유착이 잘 생긴다고 한다. 그리고 방사선치료 때문에도.

그 후유증으로 작년 가을부터 장마비, 장유착 증상으로 응급실만 5번째다.

그런데 응급실에 가서 진통제만 맞고 1~2시간 지나면 통증은 씻은 듯이 사라졌고 집으로 돌아왔다. 누가 보면 꾀병을 부리는 것처럼...


그런데 이번엔 진통제를 맞았는데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새벽에 토할 때 약간의 출혈이 있었다고 하니 응급실 의사가 입원을 하자고 했다. 생각지도 못한 입원이었다.


수액 맞는 거 말고는 특별한 치료도 없이 심심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따르릉" 휴대폰이 울렸다. 요즘 친정식구 중 유일하게 연락하는 큰 남동생이었다.

" 누나  00 목사님 알지? 그 목사님이 브라질에서 목회하시면서 신유의 은사를 받으셨는데 누나 아프다고 하니 기도해 주시려고 전화할 거야. 기도 잘 받아봐"

20년 전쯤 몇 번 기도회를 같이 했던 목사님이시라 알겠다고 했다.




" 안녕하세요 ㅇㅇ목사입니다. 기억하시죠?"

" 네 그럼요"

"제가 기도를 해드려도 될까요?"

" 네 기도해 주세요"

목사님과 사모님이 함께 기도를 해주시기 전에

"혹시 용서하지 못한 분이 계신가요?"하고 물으셨다.

난 주저하지 않고 " 네 엄마요"라고 했고 최근에 나르시시스트 엄마에 대해 글을 쓰고 있고 책을 쓸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목사님이 내가 아픈 이유가 그것 때문일 수 있다고 하시며 글을 쓰며 예전에 느꼈던 마음의 상처와 힘들고 억울하고 외로웠던 감정들을 느끼며 몸이 반응하는 것 같다고 하셨다. 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글을 쓰며 새록새록 상처가 다시 되살아나서 2차, 3차의 가해를 하고 있었던 거다. 최근에 부정적인 감정을 계속 느끼면서 스트레스를 받으니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다. 하지만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건 영적인 차원이었다.


"어머니를 용서하고 축복하고 사랑하세요. 그래야 자매님 몸이 아프지 않고 악한 영에게 틈을 주지 않을 수 있어요. 악한 영은 자매님이 미워하는 그 감정을 타고 자매님께 들어올 수 있거든요. 그 미움이 자매님의 몸을 아프게 하는 거예요. 제가 아는 연세 많으신 장로님이 암 4기었는데 평생 미워했던 사람들을 용서하고 축복하고 사랑한다고 했더니 암이 감쪽같이 사라지셨대요. 자매님도 지금까지 미워했던 사람들 한분 한분 용서해 보세요."

무슨 말씀인지 충분히 이해가 되고 수긍이 갔다.


그리고 내가 어린 시절부터 느꼈던 고아의 영, 미움의 영,  외로움의 영, 억울함의 영, 분노의 영, 슬픔의 영, 자기 연민의 영등이 나에게서 사라지도록 파쇄하는 기도를 해주셨다. 

" 그리고 자매님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기도도 하셔야 해요. 왜 난 큰딸로 태어나 이런 상처와 억울함을 당해야 하지? 하면서 스스로를 미워했던 것. 그랬던 자신을 용서하고 축복하고 사랑해 주세요"


그 말씀을 들으며 내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래. 난 나 자신을 지독히도 미워했었지..'

그렇게 한참 기도를 한 후 눈을 뜨니 영혼이 맑아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에서 자유함이 느껴졌고 몸도 편안해졌다. 용서하지 못하면 자기 마음이 지옥이라는 말이 정말 맞다는 걸 실감했다.


"자매님 그리고 조심스럽게 제안하는 건데요. 어머니에 대한 책 쓰시는 거 안 하시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요. 선택은 자매님이 하시는 거지만..."

그 말을 들으며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나도 글을 쓰며 죄책감도 순간순간 올라오고 가족들이 알게 되었을 땐 회복할 수 없는 관계단절이 올 거라 예상이 되었었다.


'하지만 책 쓰기를 하는 게 올해의 유일한 목표였는데...' 몇 달 동안 열심히 진행해 왔던 걸 포기한다는 건 나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떤 마음이 깨달아졌다. 나처럼 나르시시스트 엄마에게 고통받는 딸들을 위해 책을 쓴다는 명목 아래 어쩌면 그동안 상처를 준 엄마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거.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책 쓰기를 그만두어야 하나?'아니면

'다른 주제로 써야 하나?'

퇴원할 때까지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느닷없이 입원을 한 이유가 이 문제 때문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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