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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유 Sep 22. 2023

애매모호함을 견디는 능력

글쓰기는 어렵다


원래 글쓰기는 힘들다는데...

그동안 난 글쓰기를 너무 쉽게 했었나 보다.

그런데 이번주 내내 선뜻 글쓰기를 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글을 써야 하는데..'

마치 숙제를 미루는 아이처럼 마음속에서 부담감은 올라오는데 손가락이 움직이질 않는다.


"왜지?"

망망대해에 혼자 덩그머니 남겨진 느낌.

아무도 내 얘기에 관심이 없을 것 같은..

내면에서 밀고 올라오는 이야기가 없다.

지금도 뭔가 억지로 짜내는 느낌이다.


그동안 나르시시스트 엄마 글을 쓸 때는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막 넘쳐났다. 잊고 지냈던 에피소드들이 서로 다투듯 수면 위로 올라왔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렇게 글을 쓰며 슬펐고, 분노했고, 억울했고 가슴 아팠다.

아마도 난 이렇게 힘든 삶을 살았다고 독자들에게 이르고 공감받고 싶은 마음으로 썼는지도 모르겠다. 분노가 글을 써 내려가는 원동력이었을지도...


"선생님 다음번엔 즐거운 글을 써보세요"

스트레스받으면 바로 몸으로 나타나는 걸 보고 필라테스 선생님이 조심스레 해주신 말이다.

그렇다. 과거의 상처를 쓰는 일은 잊고 지내던 그 상처를 다시 기억하고 재경험하는 거라 분명 힘든 작업이다.


하지만 쓰는 동안은 아프고 쓰라리지만 그렇게 쏟아낸 감정은 글이라는 결과물로 털어내는 작용도 하므로 나쁘지만은 않다.

 심리상담도 처음엔 다시 과거의 상처를 들추어내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 아프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 시간을 견뎌내고 나면 상처가 아물고 딱지가 지고 그 상처를 떠나보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힘들어하는 내담자에게 조금만 견뎌내면 마음이 많이 편해질 거라고 얘기해 준다.

"제가 함께 해줄게요.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견뎌봐요"라고..

그렇게 내 말을 믿고 상담을 4~5회기 진행한 내담자는 자신보다 주위에서 먼저 알아본다고 했다.


그러나 글쓰기는 내 전문 분야가 아니라서

누군가 글쓰기 선생님이 내게 그렇게 얘기해 주면 좋겠다.

"민유님 글쓰기를 통해 과거의 상처들이 치유되는 과정이니 조금만 힘내보세요. 잘하고 있어요"


하지만 목사님은 그런 비난하는 글을 쓰지 않는 게 좋겠다고 조언해 주셨다 더욱이 책을 내는 건 절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안 좋은 감정들이 전이될 수 있으니.

그리고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내 몸을 아프게 하는 거라고 하셨다. 분명 일리 있는 말씀이셨다.


한편  정신분석을 전공한 심리상담사인 시누이는 상처를 글로 표출하는 건 아주 좋은 프로세스라고 하셨다. 물론 시누이도 크리스천이다.

나도 시누이의 의견에 어느 부분 동감이다.

하지만 목사님이라는 영적인 권위자의 조언이기에 무시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순종해야 하는 거니까...


너무 혼란스럽다. 과연 무엇이 옳은 걸까?

아직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지 못했다. 명확한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애매모호함을 견디는 능력'이 부족하다. 이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을 통해서 그 능력이 키워진다면 이 또한 의미 있는 시간이 되겠지. 잠잠히 기다려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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