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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유 May 29. 2024

처음으로 E대 나오길 잘했다 생각 든 이유

강원도 E대 동문 모임


상담대학원 후배인, 강릉의 유일한 지인인 그녀가 말했다.

"강원도에 E대 동문 모임이 있어요. 거기 멋진 선배님들이 많아요. 강릉 이사 오시면 같이 가요"

" 아 그런 게 있어요? 신기하네요."


대학 다닐 때 서클활동이며, 과 활동을 했던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에 대학 선후배를 만난다는 게 어떤 건지 궁금해지긴 했다.


아빠가 원해서 들어간 여대. 온통 캠퍼스 안에 여자들만 득실득실, 난 학교생활이 별로 재미있지 않았다.

"아빠 때문에 여대 와서 난 하나도 안 좋아. 여자들만 있다는 게 자연법칙에 위배되는 거라고"

늘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내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아마 모임에 와 보시면 E대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이 드실걸요?"

"정말요? 과연 그럴까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마음속에서 약간은 기대가 되긴 했다.


드디어 어제, 첫 동문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지인샘이 운전하는 차 안에서 마음속은 살랑살랑 흔들거렸다.

하슬라 아트 월드라는 곳에 도착했다. 이곳은 선배님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산 전체가 뮤지엄이라고 할 만큼 규모가 엄청났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예술품들이 자신만의 자태를 뽐내며 서 있었다.


분위기에 압도되어 약간은 긴장되고 어색한 기분으로 모임을 하는 장소로 들어갔다. 전체가 미술관처럼 꾸며진 으리으리한 방이었다.



쭈뼛쭈뼛거리며 함께 간 선생님 옆 자리에 앉았다.

마치 엄마 옷고름 잡고 있는 어린아이처럼...

한분, 두 분 등장할 때마다 뉴페이스인 나에게 반갑게 인사해 주셨다. 그러자 서서히 나의 어색함은 사라져 버렸다.


" 몇 학번이세요? 무슨 과 나오셨어요?"

친화력 좋아 보이는 한분이 먼저 말을 걸어주셨다.

"저 83학번이고 교심과 나왔어요"

"어머 저도 83학번이에요. 반가워요 교심과면 ㅇㅇ 아시겠네요?" 너무 궁금하다는 듯 그녀가 말했다.

"그럼요. 알죠. 강릉 내려오기 전에도 만났는걸요"

"그 친구 기숙사 동기였어요. 너무 보고 싶은 친구인데.."


우리들의 기억은 순식간에 20살 너무 풋풋하지만, 조금은 설익은 사과 같은 그 시절로 순간이동했다.

그러는 사이 오늘 오시기로 한 17명이 다 모였다.


50대 중반부터 60대 후반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모였지만 다들 나이보다 젊어 보이시고 과하지 않은 세련미가 있어 보이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를 아끼고 좋아하는 느낌이 들어 따뜻했다.


점심은 이곳 사장님께서 정성스레 준비하신 한식이었다. 어디서 쉽게 먹을 수 없는 귀한 음식을 먹느라 정신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옆 테이블로 옮겨서 커피와 차를 마시는데 용기를 내어 지인샘과 떨어져 모르는 분들 사이로 자리를 옮겼다.


회장님이 신입인 나에게 인사말을 하라고 하셨다.

"전 용산에서 심리상담실 운영하다가 안식년 겸 일단 2년 쉬러 강릉으로 오게 되었어요.

하지만 이제 1달 되었지만 강릉이 너무 좋아서 아마 쭉 눌러살 것 같아요. 강릉에 와서 이렇게 동문분들을 만나게 돼서 너무 반갑고 앞으로 열심히 나오겠습니다."

모두들 박수로 환영해 주셨다.


몇몇 분들과 연락처도 교환하고 전시된 작품들 설명을 듣고 모임이 마무리되었다. 무려 4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2시간만 넘으면 집에 가고 싶어 하는 나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녀가 물었다.

"오늘 어떠셨어요?"

" 참 좋은 느낌이었어요. 진짜 샘 말대로 처음으로 E대 나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니까요."

그 말을 하며 내 입가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집에 돌아와 잠이 드는 순간까지 계속 오늘 만난 동문들의 얼굴이 떠올랐고 심지어 꿈에서도 나왔다.

'이게 도대체 뭔 일이래?'이 생경한 느낌은 뭐지?'

뭔지 모를 끈끈한 연대감,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게 이토록 공감대 형성을 할 수 있는 거구나..


E대 동문 모임이 강릉 생활에 커다란 즐거움으로 등극할 것 같다.



좀 전에 화분이 배송되었다. 진짜 빠르다.

너무 예쁜 극락조였다.

이런 게 동문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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