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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리나 Jan 05. 2023

친구 따라 강남 가도 괜찮을까?

진로 고민

  “엄마, 나 발레 전공 안 할래.”

  “뭐? 갑자기 왜?”

  “나도 친구들이 다니는 OO수학 학원 다니고 싶어. 발레는 그냥 취미로만 할게.”


  거참, 변덕이 죽 끓듯 한다. 발레 전공하지 말라고 말려도 굳이 하겠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 갑자기 발레를 안 하겠다고 한다. 발레가 싫어져서 전공 대비반을 그만 다니겠다고 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친한 친구들이랑 같이 학원 다니고 싶은 마음에 자기 진로를 변경하겠다고 하니, 어쩜 저렇게 철없을까 싶다.


  초등학교 6학년인 딸아이는 운동 신경이 꽤나 좋은 편이다. 활동적이어서 실컷 움직이고 나야 집중해서 학습도 잘하는 아이. 5학년 여름부터 발레를 배워보고 싶다 해서 취미반에 등록해 줬더니, 갑자기 6학년이 되서부터는 전공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다른 분야도 아니고 발레라면  일찍 시작했어야 전공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애원하는 아이의 말을 애써 외면했다. 저렇게 한두  말하다 말겠지 싶었다. 사실 발레리나 뒷바라지  생각을 하니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을  같아서  망설여졌다.


  발레를 향한 아이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다른 과목 공부할 때와 발레를  때는 사뭇 달랐다. 학원 시간이 되기 훨씬 전부터 스스로 발레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학원에 미리 도착해서 몸을 풀고 수업을 듣는 아이였다. 발레 수업이 없는 날은 선생님이 내주신 스트레칭 숙제표를 가져다 두고 집에서 운동을 챙겼다. 엄마의 잔소리 없이 아이가 주도적으로 알아서 하는 활동이 확실하게 하나 있다는 사실에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 큰 돌덩이에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아이의 발레 시작 시기가 너무 늦은  아닌지, 전공 대비반에 가게 되면 비용적인 부담이 얼마나 되는지, 일단 알아보기라도 해야   같았다. 내가 전문가도 아니면서 지레 짐작하고 아이에게 꿈을 펼쳐볼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가는 나중에 가장 후회하는 사람이 바로 나일 테니까…. 부담스러운 마음을 억누르고 학원에 가서 상담을 받아봤다. 다행히 시기적으로 아직 늦은  아니라고 했다. 막차  느낌이기는 하지만, 아이가 발레 하기 이전에도 워낙 몸을 많이 움직였는지 근력이 탄탄한 편이고 동작을 빨리  따라오는 편이었다.


  13살의 나이에 아이의 진로를 확고하게 정해버리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다. 그래서 1년 정도 발레 수업량을 많이 늘려보기로 했다. 무용 전공을 하려면 어느 정도로 연습을 해야 하는지 아이는 아직 감이 없다. 경험해보고 나면 그냥 취미 수준으로만 발레를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오히려 반대로 발레의 세계에 깊이 들어갈수록 더 빠져들 수도 있다. 시도해보지 않고 도저히 파악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우리는 모험하는 마음으로 1년간 집중적으로 연습해 보고, 그 뒤에 다시 결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반년이 지난 지금 아이는 갑자기 엄마 마음을 심난하게 하는 이야기를 꺼냈다. 차라리 이제 발레가 싫어졌다고, 흥미가 사라졌다고 했으면  편했을 텐데….  이유가 친구 때문이라니, 거참 이걸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싶었다. 아이가 친구들과 다른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외로울  있겠다고  혼자 짐작하긴 했다. 다만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시기가  일찍 찾아왔을 뿐,  것이 오고야 말았다.


  엄마 말보다 친구들 말이  우선이 되는 나이, 13살이다. 세상  어떤 가치보다도 우정이 중요한 사춘기 소녀다. 아이가 친구들로부터 소외되고 싶지 않은 마음 공감해 주었다. 하지만 친구들과  오랜 시간 같이 있고 싶어서 자신의 꿈을 바꿨다가는 나중에 후회할  있다고 말해줬다.  그래도 우리 딸은 또래보다 발레를 늦게 시작해서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유연성을 길러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 잠깐 쉬었다가는 발레리나가 되는 길로 영영 되돌아가지 못할까  불안했다. 아이를 붙잡고  안에 있는 모든 지혜를 꺼내서 아이를 설득해봤지만 소용없었다.  말이 아이의 귓가에 닿자마자 바로 반사되어 되돌아오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한쪽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보내기라도 하면 다행일 텐데 말이다.


  답답한 마음을 연말에 나의 성장 커뮤니티 ‘킨더줄리’ 송년회에 가서 털어놨다. 함께 그림일기 쓰고, 고전 읽기를 하면서 모인 엄마들의 모임이다 보니 그곳에는 내 마음을 공감해주는 엄마들이 많았다. 한 엄마 선배님께서는 나보다 몇 년 앞서서 예체능 분야 전공을 준비하는 아이를 키우고 계셨다. 지금 우리 집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그 댁에는 벌써 여러 차례 지나갔다고 했다. 그때마다 그분은 아이의 외로운 마음을 충분히 공감해 주고, 아이에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다고 했다. 아이들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인생을 두고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지 않을 거니까, 아이를 믿고 기다려보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아이가 스스로를 사랑한다는 그 말이 어두운 내 마음속에 환한 등불이 되어주는 것 같았다. 왜 나는 내가 자식을 죽도록 아낀다는 생각만 하고, 아이가 자신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또 다른 엄마 선배님의 아이는 올해 스무 살 성인이 되었다고 했다. 아이를 키우고 뒤돌아보니, 아이가 한 번씩 부모에게 어깃장을 놓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 알고 보면 부모에게 잠시 멈춰서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주는 거였다는 말씀을 하셨다. 아이에게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길을 선택하고 나면 그 뒤로는 아이 손을 붙잡고 열심히 앞만 보며 달리게 된다. 그러나 그 길의 방향이 맞는지 중간중간 점검을 해봐야 한다. 한참을 정신없이 달렸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원하던 목적지가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부모에게 멈춰서 숨 고르며 주변을 둘러보고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나 보다. 우리 딸도 나한테 중간 점검할 수 있는 휴식 시간을 주려는 모양이다.


    선배님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불현듯 나의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자연과학부로 입학해서 2 동안 수학, 과학, 통계 수업을 들은  전공을 정해야 했다. 나는 수학과와 통계학과 사이에서 고민했다. 나는 수학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나와 입학해서 2 동안 가까이 지낸 동기들은 대부분 통계학과를 선택했다. 친구들은 취업이  되는 통계학과에 같이 가자고 나를 설득했다. 사실 22살의 나에게 취업이라는 말이 크게 중요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나는 매일 함께 캠퍼스를 누비던 동기들과 3~4학년에도 같이 대학 생활을 즐기고 싶었다. 결국 나는 친구들 따라 통계학과에 갔고  좋게도 무난히 취업할  있었다. 수학 선생님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긴 했지만,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직장 생활을 했다. 그리고 퇴직한 지금은 나의  꿈을 찾아 수학 선생님이 되었다.


  20 성인의 나이에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전공을 택한  바로 나였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그래놓고 고작 13 아이가 친구 따라 학원 가고 싶어서 진로를 바꾸겠다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다니…. 나도  어리석은 엄마다. 지금 잠깐 쉬어가거나 돌아가는 것이  인생을 놓고 봤을 때는 아주 잠깐에 불과하다. 당분간은 아이에게 ‘’, ‘전공이라는 단어는 꺼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이가 취미 발레 수업 계속 듣고 싶다고 했으니, 몸의 감각을 잃지는 않을 거라서 다행이다. 조급한 마음은 내려두고 지내다 보면  흐르듯 자연스럽게  방향을 찾아가리라 믿는다.  아이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행복해질  있는 길을 찾기 위해 오늘도 고민인가 보다.  순간이 행복한 고민의 시간이   있도록 나는 달콤한 간식이라도 챙겨주러 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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