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학교생활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것 중 하나는 단연 '시험'이다.
과제도, 팀플도 부담이지만, 시험은 또 다른 차원의 스트레스다.
요즘처럼 학점에 민감한 시대에는 시험이 곧 생존 싸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시험 일정을 공지하면 제일 먼저 받는 질문은
‘시험 많이 어려운가요?’,
'몇 문제 출제되나요?' 대충 이런 것들이다.
시험 전에 안 하던 공부를 벼락치기라도 하느라 밤을 지새우고, 드디어 시험을 치르고 나오면 학생들 입에서 터져 나오는 말은 늘 비슷하다.
‘와, 너무 어려웠어요.’
‘진짜 교수님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이건 거의 고난도 퍼즐이었어요.’
그들의 탄식은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그렇게 학생들은 해방감을 누리지만, 그때부터 교수들의 지옥이 시작된다.
바로 채점.
학생들은 시험을 마주하고 싶지 않듯이 교수들도 가장 하기 싫은 일 중 하나가 채점 아닐까 싶다.
그 많고 많은 글씨들을 해독하며 이걸 부분점수라도 줘야 하나? 고민하다 보면 머리가 뽀얗게 멈춘다.
그리고 그 시기, 교수들 사이에서 한 번씩 등장하는 대화가 있다.
일명 학생 뒷담화.
‘수업 시간에 그렇게 강조했는데 어쩌면 답을 그렇게 써낼 수 있을까?’
‘몰라도 그렇게까지 모를 수 있을까?’
‘아예 자기 생각을 적었더라’는 말까지.
때로는 기발한 오답을 공유하며 웃음도 나누고,
마치 부모가 성적표를 보며 “이 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 중얼거리듯
교수들도 그렇게 한 마디씩 하게 된다.
물론 안다.
모든 학생이 수업을 열심히 듣는 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점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또 어쩔 수 없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밥만 먹고 하는 일이 공부인 사람들의 학문에 대한 생각과 시험 기간에만 바짝 공부하는 학생들이 제출하는 답안 사이의 간격은 어쩌면 처음부터 멀고도 먼 게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채점을 하다 보면, 괜히 속상하고, 괜히 웃기고, 괜히 정이 간다.
그 감정 속에는 학생들이 조금 더 잘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자신의 강의가 학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는 자책감도 있다.
‘내가 설명을 더 쉽게 했어야 했나?’
‘예시를 더 많이 들었어야 했나?’
결국 교수들의 뒷담화는 학생들에 대한 원망이라기보다는, 더 나은 교육에 대한 고민인지도 모른다.
다음 학기가 되면, 교수들은 또다시 조금 더 쉽게, 조금 더 재미있게 전달해 보려고 애쓴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학생들이 또다시 시험이 끝난 복도에서 이렇게 말할 거라는 것을.
‘이번 시험 진짜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