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고 부드러운 털이 얼굴을 간지럽힌다. 먼 곳을 응시하는 깊고 푸른 눈, ‘상실의 시대’ 단편적 장면들이 펼쳐지고, 비틀스의 노래가 울창한 숲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노르웨이 숲’을 처음 품었을 때의 느낌이 그랬다. 하지만 고양이를 만질 때마다 풀풀 날리는 털은 정말 견딜 수 없었다. 평소 비염이 심했던 터라 더 괴로웠다. 재채기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오고, 온몸이 간지러워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특히 요즘 같은 더위에 땀으로 범벅된 육체에 사정없이 들러붙는 하얀 털은 게슴츠레 치켜뜨는 고혹적인 눈과 날렵한 몸놀림의 유혹에 방해가 되는 건 확실했다.
장모종의 ‘노르웨이 숲’은 북유럽의 차고 흰 이미지를 연상시키지만, 한 여름에는 털만 봐도 땀이 저절로 흐른다. 몇 달 전에 아들이 키우던 고양이를 사정상 어쩔 수 없이 맡아 키우게 됐다. 아들이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줄 알면서도 키웠던 것은 생명에 대한 무한한 애정 때문이었다.
사실 나 또한 동물 털로 인한 고충이 많다. 하지만 생명에 대한 애정과 책임이 어느 정도의 고통을 감내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나의 괴로움보다 더 컸고, 눈앞에 보이는 양이의 천사같이 사랑스러운 모습을 볼 때마다 어떤 위로와 행복감에 젖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비어지는 마음만큼, 무엇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한 마음이 있다. 마음을 채우려 사람도 만나고 일도 해 보지만, 씁쓸한 외로움이 엄습하는 날이 많다. 누군가에 대한 실망과 섭섭함이 화를 돋우기도 하고, 슬픔이 마음을 어지럽히기도 했다.
인생이란 묵직한 화두가 실은 너무도 가벼운 새털처럼 날아가버리곤 한다. 뒤를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무엇이 중요한지 머리를 싸맬 필요도 없다. 그저 물이 흐르듯 시간을 따라가면 된다.
오늘도 사랑스러운 고양이는 잠을 잔다. 깊고도 얕은 잠을, 조금의 움직임도 용납하지 않을 귀를 쫑긋 대며, 길고 나른한 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