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을 느끼고 있을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는 건, 참으로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걸.
이 사회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그 씁쓸함을 조금 맛보고는 뱉어버렸다. 내가 하고 싶은 일, 그 길엔 만족이 있을 거 같아서, 나는 새 길을 찾아 나섰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니까, '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힘을 내보려고 하지만 어찌 그 길이 평평하기만 하겠는가. 가다가 넘어지면 아프고, 바람 불면 추운 길이거늘.
어제는 지친 남자친구에게 연락이 걸려왔다. 그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갖은 고생 속에 선 사람인 것을 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난 그 점이 좋았으니까. 불합리한 요구와 상황 속에서 감당해야 할 수치심과 자존심에 남을 상처. 그도 그것이 어제는 유난히 힘들고 어려웠나 보다. 살다 보면 내가 그리 강한 사람이 아니라고 수도 없이 느끼게 되며, 그래서 나의 동의 하나 없이도 해야만 하는 일이 많다는 걸 매일 같이 경험하기에. 힘들다는 남자친구에게 마음 작은 말로 어르어 그 일 잘 마치라고 했다. 말은 그에게 전달했는데 어쩐지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나는 유난히 가족이나 남자친구와 같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그가 그 상황을 강하게 잘 이겨나가길 바라는 마음에, 위로의 말을 건네기를 힘들어한다. 특히나 남자친구의 경우에는, 이토록 약하다면, 그가 앞으로 날 책임지고 만만치 않은 세상을 이겨나갈 수 있겠나 하는 존재적인 불안감과 연결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말이지 본래 강한 남자가 상대적으로 약자인 여자를 보호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나는 과연 그에게 작은 위로조차 건넬 수 없었을까. 어쩌면 그건 매번 내가 관계 속에서 더 약한 사람으로만 남고 싶은 마음, 곧 받고만 싶은 이기적인 사랑의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토록 위로를 바랐으면서도 정작 위로를 바라는 사람에게 위로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누구든 세상에서 상처받은 마음, 내 품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항상 생각해왔는데도 나는 막상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자 얼마 전의 일이 떠올랐다. 그 날에 유난히 지친 마음을 안고, 혼자 감당하기기 어려워 친구에게 속상한 마음으로 연락을 했다. 내가 징징거리는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나에겐 위로가 필요했기에, 그녀를 찾았다. 우리는 보통 이렇게 위로가 필요한 날에는 누군가에게 연락을 건다.
"친구야, 내 주제에, 내 형편에 왜 이런 길을 선택해서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내가 좋아서 선택한 길이고 내가 정말이지 하고 싶었던 일이지만 종종 이렇게 힘듦을 토로하고 싶어만 진다. 누군가는 내 힘듦을 충분히 알아줬으면 좋겠기에. 그런데 친구는 별말이 없더라. 그녀도 자신의 삶에 지쳐 잠들었는지 내 말에는 제대로 된 대꾸를 해주지 않았고, 그걸로 그 상황은 그렇게 끝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무척이나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내 친한 친구가 아니던가 생각하니 위로를 건네주지 않은 그녀가 참 미웠다. 결국 나는 위로를 받고 싶다는 목적이 있었고, 그 기대가 채워지지 않은 것에 대해 그녀를 질책하는 '답정너'가 되어버렸다. 문뜩 내가 위로하기를 주저했던 거 처럼, 그녀도 내 어려움에 대해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당황스러웠을 거라고, 그 순간이 참 어려웠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더라.
어떨 땐 그렇다. 정말이지 위로를 해줄 것 같은 지인에게 실컷 징징거리고 나면, 그 상대방이 잘 받아줬을 경우에 내 안에 슬그머니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든다. 오늘도 내가 애 같았구나 하는 마음에 부끄럽고, 상대방이 나로 인해 마음의 자리를 내어줘야만 했던 그 부담을 알기에 미안해진다. 공감이라는 게 그런 거 같다. 내 힘듦을 상대가 같이 느낀다는 것. 그렇다면 그 유쾌하지 않은 얘기를 듣고 있는 상대방도 어려웠을 거라는 거. 마음이라는 건 연결되어 있는 거라서 내 아픔이 그에게 흘러들어가는 거라고 난 그렇게 생각해왔으니까. 상대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어떻게 위로를 건넬 수 있는 건지 난 아직까지 도통 모르겠다.
우는 사람이 나, 혹은 상대방이든 그 눈물을 끊임없이 받아주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거를 저리게 느끼고 있다. 위로라는 건 그 상대방의 몫인데, 보통은 힘들다고 표현하라고 해놓고 막상 받아주는 건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실 계속해서 받아주는 그 마음이 점차 무거워, 지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대로 위로를 원하는 마음 조차, 그 끝에 상대방이 내게 지쳐 나가떨어져 버릴 거라는 불안으로 힘듦을 더 토로할 수도 없음은 참 슬픈 일이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딜레마에 갇히게 된다. 위로를 받아주는 것은 어렵기만 하고 위로를 구하자니 그 조차 관계가 상할까봐 불안해지는.
우리는 서로 위로를 필요로 하지만 제대로 된 위로와 언제나 함께하겠다는 신뢰를 상실한 관계, 그 속에서 '위로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당신을 정말로 느끼고 있을까.
받기만 하는 사랑에 여전히 익숙한 나, 오늘도 밖에서 힘들었을 당신을, 내 안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게 작은 자리를 마련해 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