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열등 같은 기억 속 당신에게

건강하세요. 외삼촌.

by 릴리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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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삼촌뻘 되는 사람들에게 껌딱지처럼 달라붙는 모습을 보면 퍽 보기가 좋다.

그리고 퍽 질투가 나기도 한다. 아마 우리 외삼촌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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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극도로 낯을 가리는 아이였다.

집에 낯선 사람이 오면 숨기 일쑤였다. 낯선 사람이란, 엄마 아빠 오빠라는 일촌 지간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런 내가 가장 괴로워했던 날 중 하나는 외할아버지 생신이었다. 7남매와 그들의 아이들이 한 공간에서 2박 3일 정도를 함께 보내는 것은 내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이모들은 경상도 사투리 네이티브 스피커였으므로, 화기애애한 건지 우격다짐 중인지 알 수 없는 톤의 목소리들이 옥탑까지 들려왔다. 다섯 살 남짓의 서울 꼬마 아이는 8월 한더위 속 대구와, 낯선 사람들과, 그들이 발사하는 된소리의 음파를 모두 견뎌야 했다. 나는 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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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된 여자와 그녀의 여섯딸은 태풍같았다. 태풍과 태풍과 태풍과.. 태풍들이 만나서 거칠게 웃고 거칠게 투닥거리는 속에도 한점의 고요함은 존재했다. 외삼촌. 거대한 외삼촌. 거대하고 말이 없는 외삼촌.


그는 첫째인 나의 어머니의 스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막내 동생이었고, 여섯 딸 이후, 끝내 얻은 '귀한' 아들이기도 했다. 그는 당시 이 나라에서 가장 좋은 법대에 다니는 대학생이었다. 외할아버지를 닮아 기골이 장대하고, 이목구비가 또렷했으며 과묵했다. 큰 소리로 말하거나 큰 소리로 웃는 일은 물론, 말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두툼한 나무가 사람이 된다면 그런 모습일 것임에 분명하다. 그는 어린 내가 봐도 대하기 어려운 타입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실의 거대한 고무나무 잎사귀를 작게 찍어 하얀즙을 확인하는 중차대한 일에 몰두하는 척하느라 바쁜 와중이었던 내게 외삼촌이 말을 걸었다. 나는, '이 사람이 왜 내게 말을?' 하는 기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작은 아가에게, 심지어 뭔가 쭈구리처럼 구석탱이에 서있는 아가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게 되는 것은 꽤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의 나는 그것을 알 턱이 없는 다섯살 쯤의 꼬마였으므로. 나는 의아했다.


무슨 말이었던가? "밥 먹었어?" "올해 몇 살이야?" "뭐 좀 먹을래?" 같은 흔한 말들이었을 것이다.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그러나 외삼촌이 당신보다 더 과묵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던 것은 기억이 난다. 자신에게 눈을 맞추지 않아도,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도, 나를 다그치지 않았다. 게다가 나를 기다리지도 않았다.


아 그러게, 기다리지도 않았네.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호의처럼 내보여 나에게 무언중의 압박을 가했던 다른 어른들과는 달리 그는 나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냥 내 옆에서 나무처럼 가만히 묵직하게 있어주었다. 그 고요함과 차분함에 동화된 내가 경계를 풀어 곁눈질로 외삼촌과 눈을 조금 마주치면, 외삼촌은 그제서야 가만히 웃어주거나 두툼하고 커다란 손으로 내 새카만 머리칼을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좀처럼 표정 변화가 없는 외삼촌이 나를 향해 웃거나, 커다란 삼촌이 나와 눈을 마주치기 위해 거대한 몸을 반으로 접거나 구부려 나를 바라보았던 것은 그 자체로 놀라움이어서, 나는 놀라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등을 태워달라거나, 외갓집 지척에 있는 백화점으로 손을 잡아끌고 가 예쁘고 비싼 인형을 가리키거나, 그 옆 강변에서 공놀이라도 하자고 했으면 모두 해주었을 텐데. 극도의 낯가림러였던 나에게 그런 상상력은 물론, 실천할 수 있는 용기 따위는 없었으므로. 나와 외삼촌의 추억은 아쉽게도 그저 여기까지이다.


그러나 작고 사소한 그 풍경을 나는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다.

그 장면에는 작은 백열등을 항상 켜둔 것처럼 노랗고 따뜻한 기운이 항상 감돌아 있어서, 떠올리면 마음속에 따뜻함이 가득 밀려와 차오르곤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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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갔던 외갓집에는 고무나무가 그대로 있었다. 외삼촌 키와 비슷했던 고무나무는 더욱 자라 층고가 높은 외갓집 천장에 닿을 만큼 커졌다. 작년 겨울 외사촌 결혼식에서 만난 외삼촌은 오랫동안 해온 공부 탓인지 나이 탓인지 몸이 구부정해져, 오히려 키가 조금 줄어든 것 같았다. 그리고 지난 4월에는 수술을 했다.


외삼촌의 소식을 듣고, 반질반질한 고무나무의 윤기와, 20대의 외삼촌과 그 손이 쓰다듬고 있던 바가지 머리 꼬마를 생각했다. 나무 같았던 당신과 당신의 배려가 만들어 준 그늘이, 세상 모든 것이 불편하기만 했던 어린 꼬마에게 작은 쉼이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하여 지금 내가 따뜻함을 가졌다면, 그중 일부는 바로 그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것임을 알고 있다. 하여,

건강하시어라.

건강하시어라, 외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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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상 모든 아이들이 세상의 삼촌, 이모 뻘 되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엉겨 붙었으면 좋겠다.

풍부한 상상력과 용기를 발휘하여 조금 더 업히고, 조금 더 함께 뛰고, 조금 더 함께 웃었으면 좋겠다.

아이들과, 아직 마음속에 아이가 살아있는 삼촌, 이모들의 풍경이 더 많은 페이지로 엮였으면 좋겠다.

내가 계속 질투가 날 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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