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자꾸 까먹어서 그런 거야
다래끼가 나려는지 눈이 불편해서
약국에 갔더니 알약과 안약을 내놓았다
알약을 먹으면 그동안 공들여 키워온 장내 미생물이 다 죽을까 봐 안약을 가져왔는데 (지난 잇몸치료 때 항생제를 일주일 먹고 많은 친구들을 잃었다)
24시간 용법에 맞춰 사용하며 지켜보니 이건 뭐 넣으나 안 넣으나 매한가지다. 약사님이, “넣어보시고 일주일 동안 안 나으면 병원 가세요” 라던, 갸우뚱했던 그 말이 이제 이해가 좀 가면서 역시 뭔가 이상하면 다른 데를 가봐야 한다..
그래도 장내 미생물을 택하여 모험을 시도한 건 나니까 암오케.. 오늘은 더 이상 눈 속 이물감으로 내 시간을 망칠 수는 없다 싶어서 퇴근길에 약국에 들르려고 했는데 그 동네 특성상 6시에 모두 문을 닫고.. 겨우 찾은 약국에서 익숙한 이름의 복용약을 사 왔다. 지난 이사 때 버렸었지.. 다래끼 약인 줄은 몰랐으니까 아까비..
그렇게 약을 사 와서 물끄러미 쳐다보며 망설이다가 한 알만 입안에 톡 넣었다. 미생물들아 안녕. 나도 너희를 정말 공들여 잘 키워보려고 했는데 일이 이렇게 됐다.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 조금은 미뤄도 될 일들, 그렇게까지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너무 많이 부지런히 꼬박꼬박 해왔다는 걸 안다. 그리고 도파민 때문인지 아드레날린 때문인지 그것들을 멈추지 못한 것도 안다. 그리고 다래끼는 나의 그 달리는 마음이 끝내 내 몸을 뚫고 나오려는 모양이라는 것도 안다.
하고 싶은 것을 모두모두 다 해낼 수는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는 것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의 용량을 아주 조금씩이라도 늘리는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아니 그보다도 이 용기가 새지 않도록 잘 단도리 해야하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내가 바랐던 건, 그냥 더 많이 웃고 살고 싶은 거였잖아? 그걸 기억하기를 나에게 바란다.
잊어버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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