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 졸업

by 릴리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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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모니란 참 중요하다.
원체 세레모니나 기념일을 챙길 겨를 없이 살아와서 잘 몰랐는데, 바쁜 일상 속에서 그런건 사치처럼 여겨왔던 것도 사실이다. 여유나 부린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서 새삼 느낀다.


다니던 직장은 세레모니를 중요시하는 곳이어서 매일이 이벤트였다. 그런 생활 속에 트레이닝이 되어, 본가에 돌아온 후부터 열심히 기념일을 챙겼다. 가족들은 머슥해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기념일을 열심히 챙기다 보니 기념일이 꽤 자주 찾아오는 것을 알았다. 기념일이란 참 좋은 것이군. 그걸 알고 나니 가족들은 서로 나서서 기념일을 챙겼다. 나중엔 내가 조금 머슥해질 지경이었다. 김여사는 매주 금요일을 기준으로 불금 전날, 불금 전전날로 기념일을 생성했다. 하루걸러 하루가 기념일이 되었다.

때문에 기념일 전도사인 나의 졸업식 날을 모두가 주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복학하는 그날부터 졸업식날을 물었다. 글쎄, 2월 언제쯤이겠지? 12월부터는 거의 매일 졸업식 날짜를 물었다. 학교에서 어련히 공지를 해주겠거니, 졸업식 날짜로 유난부리는 늙은 복학생이 되고 싶지 않아 이리저리 대답을 미루다 졸업식날이 2주 앞으로 가까워졌다. 다행히 학교에서 안내문자가 왔고 아버지와 오빠는 근무시간을 조정했다. 와 이렇게까지 할일이었나 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축제의 맛을 알아버린 사람들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밍구스러움을 어렵게 감추고 즐거운 마음으로 가야겠다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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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날이 되었다.

생각지도 않게 동기들이 와줬다. '무슨 졸업식엘 오냐'고 '장난치지 말라'고 했었던 게 무색하도록 나는 크게 웃었다. 서로 학사모와 꽃다발을 돌려가며 사진을 찍었다. 졸업사진 촬영엔 도가 튼 김회장이 빠르고 정확하게 사진을 찍어주었다. 날씨가 추워 잽싸고 빠른 진행이 더욱 고마웠다.
마지막으로 도서관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아버지에게 학사모와 가운을 입히고 독사진을 찍어드렸다. 긴장 때문에 어렵게 웃는 얼굴이 귀여워 지켜보는 우리가 더 크게 웃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아버지는 본인이 학사모 쓰고 사진 찍을 시간이 없을까 봐 내내 발을 동동 하셨던 모양이다. 대학 다니는 젊은이 한 명 나오기 어려웠던 고장과 시절에 살던 당신이라 생각하니 너무나 이해가 간다. 사진이 나오면 크게 뽑아서 아버지 방에 붙여드려야지 하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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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거실에서 꽃을 정리하고 뒤늦게 방에 들어섰다. 그새 오빠가 펼쳐둔 학위증이 책상 위에 번듯하게 자리를 잡고 서 있다. '저 종이 한 장이 뭐라고.'

하지만 떡하니 서있는 문을 닮은 그 모양새를 보니, 저 문을 잘 지나왔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저 종이와 오늘의 시간이, 나와 나를 지지해준 사람들에게 선명한 안도감과 성취감을 주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졸업식이라는 세리머니를 통해, 내가 그동안 잘 알아보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또렷하게 보았다.

다 내가 잘해서 잘한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전혀 아니었다. '내가 한 게 내가 한 게 아니다'라는 말의 뜻을, 나보다 더 기뻐하는 부모님의 얼굴을 보고서야 알았다. 그리고 그 얼굴을 보며 내가 더 기뻐지는 것을 느꼈다. 내 기쁨을 보고 당신들이 거기에 얹어 또 더 기뻐지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웃음이 불어나는 것을 보았다. 나와 당신, 우리가 함께 있을 때, 우리가 더 환하게 웃을 수 있다는 걸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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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있었던 졸업식이 벌써 전생처럼 느껴진다. 아버지는 오늘 저녁 닭강정을 사 오시겠다 한다. 날도 추운데 뭘 사러 가시냐 물으니 막내가 졸업을 했기 때문이라 한다. 오빠랑 크게 한번 웃고 그렇다면 닭강정을 먹겠다고 했다.

그래요 아버지, 원래 졸업 같은 거 하면 졸업 날 앞뒤로 일주일간은 축제주간이죠, 네네 맞습니다. 다음 달 말일엔 아버지 생신이 있으시니 1일부터 파티를 해요, 원래 생일 있는 달은 한 달 내내 축제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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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축제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너무 늦게 배운 걸까? 아니, 좀 늦은 것 같기도 하지만 지금으로도 충분하다.




2018.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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