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브렉 01: 기획하는 마음
조금 전, 에그브렉 구독자가 300명을 돌파했다. 첫 번째 뉴스레터를 발송(3월 26일)한 지 약 한 달만. 사실 뉴스레터를 시작하면서 대놓고는 민망하니까 남몰래 세운 1차 목표가 있었다. 바로 '한 달 안에 구독자 300명 만들기'. 목표를 달성하면 브런치에 뭐라도 좋으니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다짐했다. 다행히 목표를 달성했고, 이왕 쓰는 거 뉴스레터에 실을 수 있게 목요일 밤을 마감으로 삼아 쓰자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역시 글은 내가 아니라 마감님이 쓰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300명이었을까? 사실 일단 '찍고 보자'에 가까웠다. 그래도 적당히 도전 의지에 불타면서 잘하면 현실적으로도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세우고 싶었다. 사이드 프로젝트지만 구체적인 목표가 없으면 흡사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골방에서 '깎는' 일에만 몰두하게 될 것 같았다. 물론 깎는 일에 깊이 빠져들어 세상에서 하나뿐인 아름다운 방망이를 만드는 것도 의미있지만, 그건 이 사이드 프로젝트에서 얻고 싶은 결과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번에는 남들에게 '선보일 만한' 방망이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일을 해내고 싶었다. 그렇게 '네 번의 레터가 나가는 동안 구독자 300명을 모으자'는 1차 목표가 생겼다.
3월 26일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첫 발송을 해야 했다. 콘텐츠 회사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 A, 그리고 A와 나와 프로젝트를 함께했던 B가 있는 단체 카톡방에서 내가 이 날짜를 못 박았기 때문이다. 마감이 없으면 지지부진해지는 우리를 위해 죠르디(애벌레인 줄 알았는데 공룡이라니...)가 친절히 마감 날짜를 리마인드해주는데, 부디 웃는 얼굴로 죠르디와 A, B를 보고 싶었다.
신간이라는 아이템은 전부터 관심이 있었다. 책과 관련된 일을 여러 가지 해온 데다, 신간 정보를 모으고 골라서 보여주는 작업을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간과 뉴스레터, 두 단어에서부터 기획을 풀기로 했다. 마침 붙잡고 있던 원고를 3월 첫째 주에 넘긴 터라, 둘째 주부터 구글 닥스에 접속해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디 보여줄 것도 아니면서 왜 기획안을 썼을까? 일단 머릿속에 있는 것을 탈탈 털고 싶었다. 그래야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좀 더 명료해질 것 같았고, 스스로도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질 거라고 생각했다. 아래 순서로 머리에 떠오르는 것들을 써내려갔다.
1) 전체적인 방향
2) 어떤 문제가 있어서 만들려고 하나?
3) 어떻게 운영하려고 하나?
4) 어떻게 구성하려고 하나?
5) 이름 짓기
아래 사진은 초기 기획안의 일부를 가져온 것이다. 물론 에그브렉의 최종 구성과 운영 방안은 이때와 꽤 달라졌다. 그래도 적어두고 나니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됐고, 고민 중인 부분이 어떤 흐름을 거쳐왔는지 알 수 있어서 유용했다. 특히 '어떤 문제가 있어서 만들려고 하나' 부분에서는 머릿속에 둥둥 떠 다닌 'why'를 잡아볼 수 있었다. (지금 보니 문제를 쓰다가 하고 싶은 말까지 다 넣어놨지만. 흠흠)
이름 정하기는 가장 머리 아프면서도 즐거운 과정이었다. 처음 머릿속에서 나온 단어는 'Reading Room'이었다. 하지만 단어가 주는 느낌이 너무 정적인 데다 검색하면 독서실, 열람실이 뜨는 게 아닌가. 거기다 어떤 단어를 붙여도 지메일 계정 등록이 안 돼서 포기하고 다른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달걀(egg)로 메인 콘셉트를 잡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egg book? 이건 독립출판으로 나온 책이 있네' 'egg view? 관점을 뜻하는 건 좋은데 너무 진지한 느낌이야...' 뻔하진 않지만 에그와 어울리는 단어를 찾겠다고 머리를 쥐어뜯는 나를 보며, 절친한 C가 단어 몇 개를 던져줬다. 그리고 그중에 브레이크(break)가 있었다. 유레카!(라고 쓰고 줍줍이라고 읽는다) 에그와 브레이크를 붙여 보니 느낌이 제법 괜찮았다. 단어가 길어서 입에 잘 붙지 않는다는 점 빼고는. 그렇게 에그브레이크를 줄여서 에그브렉으로 만들고 나니 이름이 완성됐다.
이 시기에 만난 책이 <무기가 되는 스토리>*였다. 이 책은 브랜드 각본을 만들 때 '스토리'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7단계로 나누어 친절히 알려준다. 나 역시 신간을 소재로 한 뉴스레터를 브랜딩 차원에서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 좀 더 고민해보고 싶었다. 리디 셀렉트에서 이런저런 책을 검색하다 이 책을 만났고,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꽤 많은 도움을 받았다.
* 에그브렉 2호 '우리가 발견한 책'에서 소개함
책에서 말하는 핵심 줄기는 '어떻게 명료한 메시지를 만들래?'이다. 저자의 주장은 이렇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관객이 스토리에 몰입하려면 아래 3가지 핵심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하며, 이 질문에서 고객=주인공으로 두면 회사나 서비스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
1) 주인공이 원하는 게 뭔가?
2) 주인공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도록 반대하는 세력은 누구인가?
3) 원하는 것을 얻으면(혹은 얻지 못하면) 주인공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그리고는 이어서 7단계 공식을 제안한다. 이 공식에 따라 브랜드 각본을 만들면 핵심 메시지를 정리하고 다듬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니 해보고 싶어 졌다. (책에 잘 혹하는 편...) 예시도 많은 편인 데다 단계마다 직접 적용하면서 아이템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구성된 책이라 차근차근 따라가는 재미가 있었다. 초기 기획안에서 털어본 생각을 토대로 일곱 가지 질문에 하나씩 답하며 에그브렉의 브랜드 각본을 나름대로 써 내려갔다.
* 스토리브랜드의 7단계 공식
[1] 캐릭터: 주인공은 고객이지, 회사가 아니다.
[2] 난관에 직면한다: 기업은 외적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팔려고 하나, 고객은 내적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사간다.
[3] 가이드를 만난다: 고객은 또 다른 주인공을 찾지 않는다. 고객은 가이드를 찾고 있다.
[4] 계획을 제시한다: 고객은 계획을 가진 가이드를 신뢰한다.
[5] 행동을 촉구한다: 행동하라고 자극하지 않으면 고객은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
[6] 실패를 피하도록 도와준다: 모든 인간은 비극적 결말을 피하려고 노력 중이다.
[7] 성공으로 끝맺는다: 우리 브랜드가 저들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직접 말해줘라.
막상 쓰려고 보니 구체화가 잘 안 되는 부분도 있었고, 고객 입장에서 어떤 가이드가 필요할지 더 깊이 고민하게 되는 부분도 있었다. 초기 기획안이 생각을 털어본 데 의의가 있었다면, 브랜드 각본은 그 생각을 좀 더 입체적으로 구성해 하나의 줄기로 엮어보는 데 도움을 주었다. 앞으로 자주 길을 잃을 텐데, 이 지도가 있으면 그래도 든든할 것 같았다. 한 번 쓰고 마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겠지만.
이름을 만들면서 가장 고민한 부분이 '로고'였다. 디자인의 디귿도 모르지만, 무언가 내 손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 몇 년 전, 딴짓을 하다가 일러스트레이터를 간단히 익혀 로고 비슷한 무언가를 만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약간 디테일에 집착하게 되는 게(...) 나름 재밌었던 기억이 났다. 이번에는 뉴스레터 론칭까지 준비할 시간이 많지 않아서 일러스트레이터 대신 칸바(Canva) 앱을 켰다. (나의 손과 발(?)이 되어 준 칸바 사랑해요)
모르니까 단순하게 가기로 했다. 'egg'라 노란색을 키 컬러(key color)로 잡았다. 온전한 달걀 모양보다는 깨진 달걀 모양이 들어가는 게 역동적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작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나온 1차 시안을 보니 엄청 뿌듯... 은커녕 '이거 내가 계속 만들어도 되는 걸까?' 싶었지만.
하지만 내 손이 부여잡은 애플 펜슬은 칸바 앱에서 떠날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폰트와 요소를 이렇게 저렇게 바꿔보며 2차 시안을 만들었고, 에그브렉으로 이름이 정해진 후 3차 시안까지 만들었다. 잘하고 못 하고를 떠나 표현의 자유를 누렸다는 데 의의를 두기로 하고 합리화하며 작업을 마무리지었다. 그렇게 현재 뉴스레터에 들어간 메인 이미지와 인스타 프로필에 넣은 이미지가 완성되었다.
이렇게 앞단부터 기획하는 일은 조금 다른 활력을 준다. (내 본업인) 글을 만지는 일도 좋아하지만,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해 하나하나 계획하고 만들어가는 일도 만만치 않은 매력이 있음을 느낀 시간이었다.
완벽을 추구하면 시작이 어렵다는 말을 무수히 들어왔다. (같은 이유로 중간에 사그라든 프로젝트도 많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단 실행하되 과정의 즐거움을 충분히 누리자'고 다짐했다. 이 사이드 프로젝트를 계속하는 한 어차피 완성도는 계속 높여가야 할 테니. 또 내가 필요해서,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프로젝트는 맞지만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독자'를 고민하는 과정도 자극이 됐다. 내가 만들면서도 나를 설득해야 하는 부분을 찾아야 했으니까. 6주 전, 나는 이런 마음으로 기획을 했구나 돌아보니 새삼스러우면서도 아득하다. 이제 글을 마무리해야 하니 가장 중요한 한마디만 남겨야겠다.
이 글을 남길 동력을 주신 300명의 구독자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뜬금 없지만 고백하고 싶었어요...)
[(언제 쓸지 모르는) 다음 편 예고]
다음 편 '제작하는 마음'에서는 5주 전: 2020년 3월 셋째 주에 일어난 일을 쓰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1) 노션에 홈페이지 만들기와 2) 스티비 사용해서 템플릿 만들기 등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냥 가면 서운하니까) 에그브렉 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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