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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혜 Mar 08. 2017

이름도 빛나는 레체

이탈리아 남동부 여행 (4) 레체 LECCE

이탈리아 남동부에 있는 땅끝 마을에 가고 싶었다. 최남단까지 가봤다는 뿌듯함과 후련함이 있을 것 같아서 적당한 여행지를 찾았다. 이미 바리, 마테라, 알베로벨로를 여행지로 정하고 찾으려니 땅끝 마을은 여러 가지로 무리였다. 아쉬운 마음에 지도를 보고 있다가 발견한 도시가 '레체'다. 발견이란 말도 어색한 것이 남동부의 길은 대부분 '바리' 아니면 '레체'로 이어진다. 어쩌면 눈에 띄는 게 당연한 제법 큰 도시가 레체다. 


알베로벨로에서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다 레체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혹시나 잘못 탈까봐 매표소 아저씨에게 물어보고, 타기 전에 다시 물어본다. 사철은 어떤 역에서 열차 앞 칸은 여기로, 뒷 칸은 저기로 가는 경우도 있고 가다가 갈아타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탈리아어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라면 일단 물어봐야 한다. 


레체로 가는 기차 안. 어느 나라나 시골풍경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남동부의 경우 올리브나무를 많이 볼 수 있고, 드문드문 트롤리도 있다.  


오후에 출발했지만 레체에 도착하니 이미 저녁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레체의 밤을 먼저 만났다. 


레체의 별명은 남쪽의 피렌체다. 처음에 이 별명을 듣고 그래도 어디서 좀 들어봤다고 '오호 르네상스?'라고 생각했으나 그건 아니고, 아름다운 바로크 건축물이 많은 곳이란다. 사조와 상관없이 아름다워서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별명이 맘에 들지 않는다. 이유는 차차 이야기하기로 하고. 레체의 밤을 그냥 보내긴 아쉬워 밤마실을 나왔다. 


레체의 역사 지구는 충분히 걸어 다닐 수 있는 크기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얻은 지도 한 장을 들고 두오모를 향해 걸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어느 도시를 가든 두오모를 먼저 찾아가는 편이다. 두오모에서부터 그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하면 어느 정도 중요한 장소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Piazza del Duomo


골목길을 걷다 마주한 두오모 광장 앞에서 당연히 나는 탄성을 질렀다. 바로크스러운 두오모 광장은 아름다웠고, 이끌리듯 앞에 있는 성당으로 들어갔다. 어느 여행지든 성당에 들어가면 다른 세계에 온 기분이 든다. 많이 걸은 날은 앉아 쉬었다 가기도 하고, 무엇보다 성당 밖 세상이 얼마나 시끄럽든 성당 안에서는 차분해질 수 있다. 그렇게 숨을 고른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내부 사진은 거의 찍지 않았다. 한 신부님이 진지하고 간절하게 기도를 하고 계셨다. 무슨 기도를 드리는 걸까. 나도 이번 여행 잘 마무리하길 옆에서 기도했다. 



중심광장과 연결된 거리는 꽤나 번화했고 그렇지 않은 골목은 성당을 비추는 빛이 맑은 하늘과 잘 어우러졌다. 'LECCE 2019'라고 쓰여있는 큰 간판이 있어 무엇인가 봤더니 '유럽 문화수도' 후보에 올라 선정되기 위해 힘썼던 흔적이었다. (2019년 유럽 문화수도는 마테라가 차지했다. 그래도 레체님 저는 레체가 더 좋아요.)


밤공기가 좋아서 한참을 걸었다. 그러다 들어간 식료품 가게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당시 나는 올리브유에 빠져 맛있는 올리브유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일하시는 분은 자신이 직접 따서 만든 올리브유라며 자랑을 시작했다. 휴대폰에 있는 올리브 나무 사진과 본인이 올리브를 따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계속 보여준다. 올리브에 대한 자부심이 그대로 느껴졌다. 돈을 많이 안 들고 나와 내일 오겠다며 전단지 같은 것을 챙겨 나왔는데 여행이 늘 그렇듯 다시 그 집을 찾아가진 못했다.


두오모 광장의 종탑과 성당
어느 막다른 길
햇빛이 따사로워도 겨울인데 길가에서 음악을 선물해주던 아저씨
"어디서 온 집사인가?"


레체의 밤을 먼저 만났지만 나는 낮의 레체가 더 좋았다. 햇빛이 비출 때 레체는 더 빛이 났다. 아무 색이 없는 듯했던 레체의 건물들은 햇빛을 받자 눈부셨다. 1월이라 날씨는 꽤 쌀쌀했지만 도시는 따사로웠다.


빛이 나는 풍경만큼 나를 즐겁게 한 건 맛있는 음식들이었다. 레체에서 간 식당의 음식은 모두 맛있었다. 운이 좋게 맛집을 잘 찾아 들어간 거일 수도 있지만 모두 성공이었다. 풀리아주만의 음식을 맛볼 수도 있었고 레체에서 먹은 파스타는 지금도 종종 생각난다. 



사진 중 우리가 평소에 보던 파스타 면과 달리 수제비처럼 생긴 파스타는 오르끼에떼(Orecchiette)라고 한다. 스파게티, 링귀네, 펜네와 같이 파스타 종류다. 풀리아주 등 남부 지방의 음식이고 야채와 잘 어울리는 파스타다. 오른쪽 파스타는 무얼 버무렸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브로콜리 무슨 오르끼에떼였는데 심심한 듯 맛있다. 소위 '건강한 맛'이라 호불호가 있을 듯 하다. 


이탈리아 도시는 가는 곳마다 매력이 넘쳐서 다닐수록 이탈리아를 보려면 아직 멀었다 싶다. 이탈리아의 도시들은 가장 찬란했던 시대와 지금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어떤 도시에 가든 그곳에서 일어났음직한 상황이 내 눈 앞 풍경과 함께 그려진다. 


로마 콜로세움 앞에 서 있으면 사람들이 경기를 보기 위해 입구로 들어가는 모습이 상상이 되고, 포로로마노를 보고 있으면 연단에서 한 사람이 연설하고 있는 듯한 장면이 그려진다. 피렌체 길을 걷다 시인 단테가 살았던 집을 보면 단테가 시를 쓰다 집 앞 길을 산책하는 모습을 그려보기도 하고, 베네치아에서는 상인들이 배를 타고 들어와 물건을 거래하는 상상을 풍경에 덧입혀본다. 그게 이탈리아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특히 바리나 레체 같은 도시에서는 관광객보다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고, 그 덕에 천천히 골목길을 걸으며 상상과 함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탈리아를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과거 찬란했던 시대와 그들의 일상 사이 그 어딘가를 여행할 수 있는 곳, 이름도 빛나는 레체다. 


레체의 한 카페에서 킥킥거리며 통화하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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