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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yd 고종석 Oct 29. 2021

시나위 7집 [Psychedelos] LP 발매

메시지를 통한 음악적 정점을 보여준 시나위 7집 [Psychedelos]   

 

한국 헤비메탈의 시작과 함께 대중적 성공을 이끈 밴드 시나위

시나위의 등장과 데뷔는 무당과 마그마 등 선배 밴드들이 시도했던 록사운드를 헤비메탈로 완성해서 신을 개척해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신대철(기타)을 중심으로 결성된 시나위가 1986년에 발표한 1집 [Heavy Metal Sinawe]는 한국 최초의 헤비메탈 음반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 앨범은 언더그라운드와 라이브에 국한되어 전개되던 헤비메탈의 기운을 음반으로 제작한 최초 사례였다. [Heavy Metal Sinawe]를 계기로 초창기 헤비메탈 밴드는 해외 유명 뮤지션들의 음악을 카피하던 수준에서 벗어나 창작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다. 또한 파고다극장, 송설라이브와 같은 초창기 헤비메탈을 상징하던 신의 움직임에 더해서 인천, 부산, 대구 등 지방에서 활동하던 실력 있는 밴드들의 순차적인 데뷔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시나위는 임재범(보컬)과 김종서(보컬), 김바다(보컬), 김성헌(보컬), 손성훈(보컬), 서태지(베이스), 김영진(베이스), 강기영(달파란, 베이스), 정한종(베이스), 故오경환(드럼), 김민기(드럼) 등 대중음악사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담당했던 여러 뮤지션을 꾸준하게 배출해왔다. 또한 각 앨범마다 ‘그대 앞에 난 촛불이어라’와 ‘해 저문 길에서’, ‘겨울비’와 같은 록발라드를 수록해서 헤비 사운드에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던 일반 대중까지 포용하는데 성공했다. 음악적으로 시나위는 시대적으로 히트를 기록했던 여러 하위 장르의 요소를 자신들의 음악에 대입하면서 다채로운 시도 역시 꾸준하게 선보였다. 이렇듯 시나위는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한국 헤비메탈의 전성기를 진두지휘해 나왔고 음악사적으로도 상징적인 여러 면모를 채워줬다. 2013년 9.5집 [Mirrorview]를 발매한 이후 시나위는 2014년 디지털 싱글 『밤이 늦었어』를 내놓았고, 같은 해 신대철은 바른음원협동조합을 설립해 음원 유통의 구조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대사의 비극 속에서 제작된 시나위 7집 [Psychedelos]

1998년은 UN이 지정한 ‘바다의 해’였다. 시나위의 7집 앨범 [Psychedelos]는 1998년에 발매된 작품으로 5.5집 [Circus]에 참여한 이후 김바다가 시나위와 함께 한 세 번째 음반이다. ‘상승’을 첫 트랙으로 12분대의 대곡 ‘해랑사2’까지 14곡이 수록된 [Psychedelos]는 70분에 가까운 러닝타임으로 구성되었다. [Psychedelos]가 발표된 1998년은 IMF 위기 앞에서 정치·사회·경제적으로 요동이 심했던 시기였고, 국민 대다수는 안정된 삶을 향한 희망을 꿈꾸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일편 정치·경제·종교 분야의 사회 지도층들은 국민의 자성을 바라며 화합과 희생만을 강조하기에 급급했다.


음악적으로 절정에 이르렀던 신대철과 신동현, 그리고 김바다와 김경원이 함께 했던 1998년. 11기로 기록된 시나위는 억압된 바람을 노래했던 [Blue Baby]를 이어서 왜 연장된 주제와 파격적인 틀을 지닌 [Psychedelos]를 내놓은 걸까. 앞서 언급된 배경처럼 당시는 금지된 것들이 넘치던 시기였다. 위계와 질서로 과하게 치장된 사회 분위기는 소소한 자유와 개성마저 만용으로 치부하기 일쑤였다. 뚜렷한 해방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던 사람들의 눈빛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실함 속에서도 세상에 대한 환멸과 허무, 염세주의가 병적으로 뻗어나가던 시기, 불과 20여 년 전의 1998년은 그러함이 팽창된 때였다. 격렬함 속에 달콤함을 녹여낼 수 있었던 시나위의 멤버들은 음악적 안위를 버리고 대중의 속마음을 음악으로 대변하는데 의견을 모았다.     


헤비메탈과 얼터너티브의 상충으로 완성된 명작 [Psychedelos]

시나위의 6집은 비이상적인 모습을 띄던 세상을 향한 외침으로 가득 채워졌던 음반이었다. 해를 이어 발표된 시나위의 7집 [Psychedelos]는 6집이 지닌 핏빛 정서가 더욱 강화되어 날을 세워 완성된 작품이다. 침묵의 절망을 그렸던 6집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는 [Psychedelos]는 안일함과 나태함으로 죄악의 결과를 보인 기득권을 향한 가속된 절규로 요약된다. [Psychedelos]에서 시나위는 죽음을 꿈꾸듯 노래하고 연주했다. 동시에 새로운 호흡 속에서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는 꿈과 희망의 조심스러운 관성을 여러 음의 조합으로 보여줬다.

[Psychedelos]가 발표된 그 해 엑스 재팬(X Japan)의 기타리스트였던 히데(hide, 松本秀人)가 3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리고 대중음악계에 큰 파장을 몰고 온 핑클이 데뷔했고, 서태지는 ‘Take Two’와 ‘Take Five’를 타이틀곡으로 하는 5집을 발표하며 컴백했다. [Psychedelos]에서 시나위는 결성 이후 처음으로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며 보다 많은 대중과 소통할 수 있었다. 로드 무비 형식으로 제작된 ‘희망가’의 뮤직비디오에는 핑클과 서태지, 그리고 히데의 잔영까지 고르게 투영된 패션과 비주얼이 눈에 띈다. 특히 ‘은퇴선언’이 히트를 기록했던 전작 [Blue Baby]를 끝으로 탈퇴했던 정한종(베이스)을 이어서 가입한 김경원(베이스)과 김바다(보컬)의 개성 넘치는 이미지는 이전보다 활발해진 방송 활동에 넉넉한 플러스 효과로 연결되었다.


사물을 비켜가서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표정의 변화 없이 내지르는 김바다의 보컬은 한국 현대사 중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이겨내야 한다는 근엄하고 냉정한 기운을 지녔다. [Psychedelos]에서도 김바다는 가창에 더해 신대철과 함께 트윈을 이루며 연주 영역에서도 제 역할을 연출해냈다. 이는 김바다의 이후 활동을 예상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오라였다. 거친 톤보다 풍성한 발성에 중심을 둔 김바다의 보컬은 얇지만 두터운 톤을 지닌 것이 특징이다. ‘해저문 길에서’의 김종서와 ‘크게 라디오를 켜고’의 임재범의 스케일과 톤이 공존하는 김바다의 보컬은 [Psychedelos]에서 정점을 보여줬다.

이전보다 다양한 이펙트를 사용해서 사이키델릭하고 일그러진 색감을 강조한 신대철의 기타는 그가 지닌 아티스트로서의 겹과 결을 여실히 표현해 냈다. 앨범 전곡에서 특히 눈에 띄는 연주는 신동현의 변화무쌍한 리듬 패턴과 테크닉이다. 알려져 있듯이 톰캣(Tomcat)에서 활동하던 김바다를 신대철에게 추천한 멤버가 바로 신동현이다. 5집 이후 참여한 신동현의 드럼은 7집까지 이어진 정통 헤비메탈과 얼터너티브의 상충된 여러 창작물들의 주요한 배경으로 자리했다. [Psychedelos]는 얼핏 6집과 비슷한 흐름을 지녔지만 보다 섬세하고 넓은 스케일을 지닌 곡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이전보다 배가된 음의 테두리가 형성될 수 있었던 이유는 김바다와 함께 톰캣에서 활동했던 김경원의 역할이 적잖게 작용했다.     


‘Psychedelos’가 지닌 상징성과 명연이 함께  수록곡

시나위가 결성 15주년을 맞이하며 발표한 7집의 타이틀 ‘Psychedelos’는 꿈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들이 스스로 절망의 환각에 빠져 헤매는 모습을 의미한다. 내일에 대한 기대가 없는 시대상은 사이키델릭과 얼터너티브에 중심을 잡고 분노와 절규로 응집되어 표출되었다. 이를 대표하는 곡이 바로 ‘개야 짖어라’와 ‘붉은 장미밭’, ‘악의 꽃’, ‘순종의 벽’이다. 퍼즈와 디스트, 변박의 울림이 홍수처럼 넘쳐나는 ‘붉은 장미밭’은 중기 시나위를 상징하는 곡이라 할 만하며, 얼터너티브의 기조 속에 전체 멤버의 광폭한 음의 폭동을 불러일으키는 ‘순종의 벽’은 훌륭한 합을 이룬 넘버이다.

대중성을 지향한 록음악 가운데 손꼽을만한 메시지와 가사로 각인되는 ‘개야 짖어라’에서 연출된 김바다의 보컬은 그가 지닌 음악성의 절정을 담고 있다. 그리고 분노하고 토로해도 변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고통 속에서 헤매는 모습을 담은 ‘미친계절’과 ‘날개’, ‘유서’ 등. 나락을 벗어나고 싶은 그 시절의 바람을 의미하듯 시나위는 이 앨범의 타이틀을 ‘Psychedelos’로 집약했다. 그럼에도 이 앨범에는 꿈과 희망의 송가라 할 수 있는 ‘희망가’가 지금도 여전히 빛나고 있다. ‘금지된 희망’과 ‘숨어우는 바람’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시대와 현실을 너무나 잘 대변한 가사였다. 지난 앨범에 이어 연작으로 자리한 ‘해랑사2’는 이 음반의 백미라 할 수 있는 트랙이다. 변화감이 큰 곡조 속에서 시나위만이 연출할 수 있는 낭만적이고 격정 어린 연주는 감상을 반복할수록 더해지는 묘미가 매력적이다.     



앨범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정체기를 거쳐야 했던 시나위

평단과 대중에게 고른 평가와 가치를 부여받은 이 앨범을 끝으로 김바다는 시나위를 탈퇴했고, 레처(Lecher) 이후 잠잠하던 정한종과 함께 나비효과를 결성해서 2003년 컴백했다. 신대철과 신동현, 김경원은 새로운 보컬 김용을 맞이해서 ‘파란밤’을 타이틀로 하는 7.5집 [Mini Album]을 2000년에 발표했고, 일본을 필두로 해외 시장 진출에 중심을 잡아나갔다. 한동안 침묵의 시간 속에 놓였던 시나위는 2012년 MBC ‘일밤-나는 가수다2’ 무대를 통해서 김바다와 신대철의 조우로 이어졌다.

글/고종석(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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