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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 Jung Dec 24. 2019

얼렁뚱땅 산티아고 순례길 17 - 피날레

새로운 시작

스물아홉번째날.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이 길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발은 역시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마음과 눈은 때론 거짓으로, 때론 현실적 판단으로 나를 단념시키려 했지만 발이 꿋꿋하게 버텨준 덕분에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오늘은 배낭을 멘다. 5일 만에 메는 배낭이 어색하긴 하지만 10km만 버티면 된다. 이 순간을 위해 그동안 거리를 줄이고 체력과 발목의 힘을 비축했다.



산티아고를 일찍 도착하려는 사람들은 나처럼 10km 마을이나 아니면 더 가까운 5km 지점의 마을에서 많이 묵는다. 그러면 산티아고까지 아무리 늦게 출발하고 천천히 걸어도 오전 중에 도착할 수 있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출발했는데도 길 위에 사람이 없다. 2시간여를 걷자 드디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초입에 들어섰다. 그때까지 아직 순례객을 못 만났는데 잠시 후 한 외국 아주머니가 나를 앞질러 가며 인사를 한다.



'부엔 까미노'

'부엔 까미노'

'내가 오늘 처음 본 순례객이 너야. 이제 내가 1등인가?'



본인이 오늘 산티아고에 1등으로 도착하고 있다고 신나 있는 아주머니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전방에 순례객들의 무리가 계속 나타난다. 아무래도 아주 가까운 마을에 묵었던 순례객들이 이미 대거 도착했거나 하고 있는 듯했다.^^



산티아고 시내로 접어들어 약간 길을 헤맸다. 대도시는 언제나 화살표 찾기가 다른 곳보다 어렵다. 더욱이 순례객들이 많지 않으니 웬만하면 많은 무리들을 따라가는 게 좋다. 그중에는 그래도 똑똑한 사람이 한 명은 있을 테니까.



그렇게 드. 디. 어.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했다.



너무 이르게 도착하지 않으려고 나름 시간을 조절했는데 실수였다. 할 수 있으면 최대한 빨리 도착하는 게 좋다. 9시 이전이었는데도 벌써 성당 앞에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서로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는 사람,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 인증샷 찍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마지막을 느끼고 있었다.



나도 주위의 혼자 온 순례객과 서로 상부상조로 성당 앞에서 인증샷을 찍었다. 사진을 찍은 후 다시 배낭을 메고 순례자 사무실을 찾았다. 사실 일찍 도착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딱히 증명서나 인증서에 연연하지 않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고생한 증거를 하나 받아 갈까 해서이다.



이곳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실에서는 완주 증명서를 발급해 주고 있었다. 순례자 여권이 있으면 100km 이상 걸은 사람에게 기본 증명서를 발급해 주고 약간의 돈을 지불하면 자세한 (거리, 기간 등등) 내용이 들어간 증명서를 발급해 준다.



기본 증명서만 받으려고 간 순례자 사무실에서 깜짝 놀랐다. 내가 길 위에서 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 같은 사람들이 벌써 줄을 서 있었다. 이 정도면 빠른 거겠지 하며 나름 시간 조절을 한 내가 무안해지게 사람이 많았다.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왔고 딱히 할 것도 없으니 그 줄에 합류해 증명서를 발급받았다. 



순례자 사무실을 나와서 이틀 후 다른 나라로 떠나는 진짜 여행을 위한 버스표를 구매하고 나니 정말 이 길이 끝났음을 실감했다.




다음날 아침 터미널에 가서 인근의 '피니스테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원래는 그곳까지도 걸어갈 계획이었는데 부상으로 걷는 건 포기했다. 그곳은 정식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순례길이 끝나고 더 걷는 길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100km 떨어진 바닷가 마을이다. 왠지 끝이라는 느낌이 강한 곳이어서 그곳을 마지막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 달 만에 발이 가만히 있는데 공간이 이동되는 느낌은 꽤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신선함과 편리함을 마음껏 즐기기도 전에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다시 길의 끝인 바닷가까지 조금 걸어야 했다. 버스에서 내리면 바로 그 끝이라 생각하고 샌들을 신고 온 걸 후회하며 먼지 나는 길을 걸었다.



그리고 드디어 길의 끝을 만났다. 그곳에는 0km라고 적혀있는 순례길의 마지막 표지석이 있었다.



파도와 바람이 세차게 부딪히는 절벽 위에서 한동안 바다를 바라보았다. 마지막은 항상 아쉽지만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어 설레기도 한다. 종교적 이유나 무언가를 찾거나 얻겠다는 기대도 없이 막연한 호기심이 점점 자라서 결국 나를 이 길로 이끌었듯, 또다시 시작될 새로운 날들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궁금해졌다.







** 숙소를 예약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전화, 이메일, 인터넷, 앱 등..

공립 숙소는 예약을 받지 않고 선착순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일찍 가기만 하면 된다.

다른 숙소를 찾는 분은 예약 가능한 곳들이 있다.

사람들이 많아지거나 대도시의 맘에 드는 숙소는 이왕이면 예약하고 가는 게 좋다.



1. 지금 묵는 숙소에 다음 숙소 예약을 요청한다. (스페인어가 가능해서 안전하고 확실하다. 대도시나 아주 좋은 숙소는 며칠 전에 예약해야 하는 곳도 있다.)

2. 직접 전화하거나 메일을 보낸다.

3. 숙소 예약 사이트에서 (ex. 부킹닷컴) 예약한다. 예약 수수료가 추가된다. 전화나 메일이 부담스러울 때 맘 편히 조금 더 지불하고 예약하는 방법이다. 산티아고 순례길 앱에서 해당 숙소 정보에 예약이 가능한 곳은 부킹닷컴으로 바로 넘어가는 링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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