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부두애 Mar 13. 2021

"많이 느끼고 적게 생각하며"

찰리 채플린 포스터가 주었던 무게감을 느끼며

 "뭔가 생각이 깊은 것 같은데... 뭐라 표현해야 할까... 감정이라는 '아이템'을 많이 갖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런 건가?"

25살, 군대에서 고군분투하며 버티고 있던 어느 날, 옆 자리에 앉아있던 어느 주무관님께서 해주셨던 말이었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많았던 그분은 왜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요? 당시에는 무슨 이야기인지, 내가 감정을 느끼 못하는 냉혈한이라는 건지... 그런 뜻은 아닌 것 같은데 단박에 이해하기 어려웠던 말이었습니다.


그 얘기가 몇 년이나 훌쩍 지나가버린 지금 다시 떠오르는 건... 나이가 들었다는 걸까요? 생각이 너무 많아 걱정도 염려도 계획도 많은 제가 지금은 많이 느끼며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무관님의 말씀도 절로 깨달아졌습니다. 많은 감정을 가진다는 것이 어떤 것임을요.


회사 점심시간이 되면 가끔 저는 혼자 밥을 먹고 커피를 들고 조용하게 산책합니다. 그렇게 걷다 보면, 각박하고 삭막한 현실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들리지 않았던 것들이 들립니다.


'짹 짹 짹'

새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소리에 놀랐습니다. 도시 한복판에 새소리라니? 저는 왜 도시에서는 새소리를 듣지 못할 거라 단정 지었을까요? 녀석들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 자리에서 여전히 소리를 내고 있을 텐데요.


그 음성에 집중하고 있으니 마음속에서 아우성치던 회사에서의 갈등과 걱정들, '앞으로 뭐 먹고살지'하는 하찮은 계획들이 이상하리만큼 조용해집니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 아니다. 퇴근은 해야 되니까 시간은 또 가야겠죠.


산다는 게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직급이 올라가고 성과도 나고 돈도 많이 벌면 마냥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런 삶이라 하여 마냥 편안한 삶은 아닌 것 같습니다. 분명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 삶을 편리하게 해 주긴 합니다만 걱정 없는 삶을 보장해주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단편적인 감정만을 갖고 살아가는 것도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이라는 단어에는 뜨겁고 열렬한 감정도 있겠지만 더불어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배려와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은 독립심, 서로에 대한 이해심과 포용도 포함되어 있는 아주 다양한 색채라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결혼에는 사랑과 더불어 우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하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전 속이 좁은 사람이라 아직 어렵고 힘든 일이 참 많습니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잘 삐치고요.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그릇된 판단을 하기도 합니다. 살다 보니 많은 오해는 내가 용기 내지 않아서 시작되더군요. 말 한마디면 되는데... 그 말 한마디를 못해서 생기는 경우가 많더군요. 제삼자가 보면 아주 사소해 '뭘 그런 걸 가지고 싸우냐고' 답답하게 느낄만한 그런 고구마 같은 일들 말이죠. 너무 많이 생각만 해서 그런가 봅니다.  


망원동 어딘가에 걸려있는 찰리채플린 포스터 (출처 : 네이버 지도)

산책을 가다 보니 전면 벽에 크게 찰리 채플린의 우스꽝스러운 사진과 그의 명언 "We Think Too much and Feel too little"이 포스터로 붙여져 있습니다. 사실 찰리 채플린은 굉장히 잘 생겼습니다. 스스로 우스꽝스럽게 꾸며서 그렇지. 포스터를 보면서 그런 생각부터 먼저 했네요... 하하... 그 포스터가 되게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잘생긴 그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역설적으로 많이 "느끼는" 삶을 찬양합니다. 뭔가 마음에 쿵하고 내려앉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무게감을 견디기 위해 이번 주말에는 애달픈 소설 이야기에 부끄럼 없이 펑펑 눈물 흘려야겠네요. 영어 공부도 해야 하는데, 에라 모르겠다. 우선 느끼고 보렵니다. 적게 생각하고 많이 느끼고 살고 싶습니다. 아니 그럴게요. 내 인생의 목적지가 불확실해도 목적지만 바라보고 사는 삶만 인생이 아니니깐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