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9.26.
쓸게 있든 없든 아침에 일어나서 책상으로 와서 앉아있게 되는 것도 참 신기하다. 알람 없이 6시 반에 일어나는 것도. 매일 아침 글쓰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보통 식세기를 정리하는데, 그러다 보면 애들이 깨고, 밥을 차리고, 점점 심술이 난다. 나는 아침에 한 게 뭐가 있나. 고작 부엌에서 달그락? 으 싫다 싫어하면서 애들 학교 갈 즈음이 되면 얼굴까지 감정이 올라오고 터질 듯할 때 둘째랑 학교 가면서 누그러든다. 바람도 맞고, 나무도 보고, 새도 보고 그러면서.
글쓰기 덕분에 부엌에서 해방되었다. 내가 매일 쓴다고 하니 남편은 "오, 작가님 일어나셨어요?" 하고, 키보드 두들기며 안 나오면 식세기에서 그릇을 빼서 정리하고 빵을 굽고 쨈을 꺼내둔다. 과일도 깎아둔다. "오오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밥을 차려줘서 고마워요!"하고 저절로 인사가 나온다. 밥 때문에 일어나기 싫었고, 아침 오는 게 싫었던 나에게 자유를 주었다. 누가? 글쓰기가!
이은경 작가의 <오후의 글쓰기>가 없어서 바로 옆에 있는 이윤영 작가의 <어쩌면 잘 쓰게 될지도 모릅니다>를 빌려왔다. 챕터별로 파란색 종이에 유명 작가의 말이 한 문장씩 들어있는데, 무심코 펼친 곳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매일 글을 써라. 열심히 읽어라. 그러고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한번 봐라 -레이 브레드버리-" 레이 브레드버리 누구더라 누구더라 내가 좋아하던 책이었는데! 아! <화씨 451> 쓴 작가다! 매일 쓰고 있는 나에게 이런 문구가 왔다는 건 잘 쓰고 있으니 계속 쓰라고 응원해 주는 것 아닐까? 더 설레는 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한번 봐라"였다.
무작정 쓰라고 해서 썼는데 이 작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말하니 뭐랄까, 주식을 살 때 그래프가 확 올라가는 것을 꿈꾸는 것처럼 기대되고 설렌다. 물론 기대와 정반대로 그래프가 뚝 떨어질 때도 있지만 그건 회사가 아무리 잘해도 세계정세에 따라 벌어지는 일이니 나의 노력 때문에 그래프가 바뀌는 건 아니다. 하지만 글쓰기는 내가 매일 차곡차곡 다지는 것이니 설령 올라가는 그래프가 보이지 않을지언정 우상향 중일 것임은 확실하다. 글을 안 쓰는 날이 있다 하더라도 글쓰기 실력이 한순간에 지하 10층까지 떨어지진 않을 테니 매우 안정적이다. 최상의 안정적인 상태를 좋아하는 나에게 글쓰기는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이은경 작가의 다정한 관찰자 책에서 '키보드에서 손이 춤을 춘다'라고 했는데 한 번 보고 싶다. 쉴 새 없이 우다다다다 치고 계신 걸까? 근데 그 책에 나오는 일화와 감정이 올라가는 걸 보면 정열의 키보드 치기를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읽는 내내 여러 챕터의 책장이 휘리리리리 넘어갔고, 둘째 아이 담임 선생님 만나자마자 눈물 범벅 됐다는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책에 나온 내용과 내 삶에서 아주 조금이라도 비슷한 점을 찾으려고 애쓰면서 글을 읽는다. 김현주 작가 책을 읽을 때도 나는 내내 나랑 비슷하네, 이건 나랑 다르네 했다. 당신도 사람, 나도 사람, 우리가 사는 건 '삶'이라는 같은 것이니 뭐 하나라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면서 찾는 것이 아닐까? 찾으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혹시 나는 책 속에서 친구를 찾는 걸까?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과 대화하고 싶고, 비슷하지만 또 어떻게 다른지 궁금한 것이 아닐까?
벌써 금요일이다. 시간이 정말 우습게 간다 ㅋㅋㅋ 매일 하는 건 비슷한데 돌아서면 금토일, 또 금토일, 어느새 곧 10월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연휴로 10월은 더 빨리 지나갈 테고 겨울이 올 테지. 애들은 눈이 언제 올까 기다릴 테고 눈이 보이면 산에 가자고 하겠지. 생각만 해도 추운데 눈 밭에서 먹던 라면 맛은 잊을 수 없다. 그래, 눈이 오면 산에 가자, 라면 먹으러 가자!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