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대전쟁이 끝난 후
브런치 메인은 잘 보지 않는 편인데 그날은 무슨 이유인지 메인을 보게 되었다. '아, 여긴 여전히 이혼 이야기가 인기를 끌고 있구나.' 싶었다. 그러다가 별생각 없이 클릭했던 브런치북 한 권을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제목에 끌려 읽기 시작했다가 나도 모르게 끝까지 다 보게 된 것이다. 아주 흡입력 있게 쓰인 글이었다. "우와, 이건 그냥... 글 자체를 너무 잘 쓰네." 하는 감탄을 해 가며, "그래서 이혼을 한다는 거야, 안 한다는 거야?" 호기심 어린 말까지 중얼거리며 보았다. 그렇게 홀린 듯 한 권을 다 읽고 나니 내가 쓰고 있는 남편 이야기가(사실 내가 쓰는 대부분의 글들이)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다. 내가 이걸 왜 쓰고 있지 싶었다.
남편이 어디가 그렇게 좋냐는 질문을 꽤 많이 받았다. 내가 이 곳에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아무도 모르니 쓰고 있는 글 때문에 받는 질문도 아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가족이니 당연하잖아요."라는 대답을 해봤자,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라는 말만 돌아온다.
남편이 잘해줘? 돈 많아? 잘 생겼어?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던져지는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자니 답답하다는 듯 한번 더 묻는다.
"아니, 그런데도 뭐가 좋아?"
그래? 그런가? 그게 차암... 그렇긴 하네. 진짜로. 그러게나 말이다.
그래서, 나도 가끔은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잘해주지도 않고 돈이 많지도 않고 잘 생기지도 않았는데 그럼에도 뭐가 이렇게나 좋을까. 그 누구도 재미있어하지 않는 남편 이야기를 주구장창 쓰는 이유가 뭘까. 사실 깊이 생각하거나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답은 명확하다. 남편만큼 나를 좋아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우리 엄마 정도나 있을까.
부부가 되기 전엔, 부부가 된다는 것은 서로의 민낯과 알몸을 아는 일이라 생각했다. 잘 감추고 있던 치부와 봐줄 만한 곳만 적당히 드러내어 그럴듯한 척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단 한 사람에게만은 나의 민낯과 알몸을 감추지 않는 것, 딱 그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부부가 되고 보니 흐릿한 민낯과 울퉁불퉁한 알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가 정말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것은 나의 바닥이었다. 나조차도 미처 모르고 있던 깊고 어두운 굴과 그 속에 꼭꼭 숨겨둔 어떤 시커먼 바닥. 남편이 아니었다면 평생 모른 척 외면하고 살 수도 있었던 어떤 바닥.
내게 신혼은 낭만과는 거리가 먼 생활이었다.
빨래를 왜 이렇게 벗어놓지? 청소는 왜 또 내가 해야 하지? 나는 아직 배가 고프지 않은데? 우리 엄마도 아닌데 남편 엄마한테 내가 왜 연락해야 하지? 치약은 왜 매번 이렇게 짜고 있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남편은 나와 전혀 달랐으며 도대체 왜 저러지? 싶은 것들 투성이었다. '나는 그러기 싫은데!'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절대 그런 건 하지 않을 작정인데!'라는 다짐을 하고 있을라치면 남편 역시 같은 다짐을 하고 있는 듯했고, 우리는 그러한 서로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너무나도 치졸하고 하찮은 것들을 이유 삼아 매일같이 우주대전쟁을 벌였다. 이 정도 싸움은 외계인이 지구를 정복하겠다고 덤벼들 때 인류를 구원하기 위함이라는 당위성과 명분이 주어질 때나 벌일 수 있는 싸움 아닌가. 고작 이따위 일로 이렇게나 격렬한 분노와 맹렬한 전투심에 사로잡혀도 되는 걸까. 평생을 모른 척 외면하고 있던 나의 바닥을 드러낸 채 씩씩대고 있는 스스로가 너무나도 한심했다.
자신의 바닥을 내보이며 나의 바닥까지 헤집고 있는 남편은 내가 알고 있던 사람 같지가 않았다. 너무나도 낯설었고 그러한 기분은 난생 처음 느껴보는 거북함이었다. 때때로 나는 내가 망가져가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나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데. 나는 이렇게까지 심술궂은 마음을 먹었던 적이 없는데.
기나긴 싸움 끝에 마침내 서로의 밑바닥을 죄다 드러내었을 때, 남편은 그러한 바닥까지 '나'로 받아들이며 끌어안았다. 내가 끝내 외면하고 싶은 내 모습까지도 모두 '좋아하는 너'라고 말했다.
남편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 네가 방귀 안 뀌는 척하고 있지만 평소에 안 뀌니까 잠잘 때 엄청 많이 뀐다고, 그냥 내 앞에서 껴. 뭘 감춰.
- 어머, 아니거든? 나 방귀 안 뀌거든?
약이 올라 매번 바락바락 우기지만 방귀 안 뀌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남편이 좋아하는 '나'는 남편 앞에서 방귀를 끼든, 잠자는 동안 남몰래 방귀를 끼든, 그저 '나'였다. '방귀 뀌는 나'까지는 나라는 사람의 범위에 두지 않고 있던 나로선 '방귀 뀌는 나'와 마주하는 순간 자체가 너무도 불편했지만 남편은 매번 우리를 마주하게 했다. 그 사람도 너야. 그 사람도 내가 좋아하는 너야. 점점 나라는 사람의 범위와 내가 살아가는 세상과 나의 우주가 확장되는 느낌이었다. 너무 많은 내가 있었고 그 모두가 나였으며 내가 아무리 찌질하고 한심하고 못났어도 한결같이 남편이 '좋아하는 나'였다.
우주대전쟁이 끝난 후 각자 자신의 바닥을 디디고 일어선 우리는 비로소 서로의 민낯과 알몸을 완전히 내놓은 채 '내가 좋아하는 너'를 끌어안을 수 있었다. 남편만큼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남편과 함께 하면서 조금씩 나를 찾아가는 느낌이다. 늘 아무렇지 않은 척, 좋은 사람인 척하기 위해 기를 썼다. 그러다 집에 와선 혼자 웅크리고 앉아 온갖 것들을 후회하며 외로워하는 나를, 나조차도 모르고 있던 구석진 곳의 나를, 남편이 발견해 줬다. 왜 그러냐 물어왔고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했다. 이제야 조금씩 나한테 맞는 내 인생의 장르를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내가 누구라서 나를 좋아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나라서 나를 좋아해주기에 아무 것도 아닌 나지만 가끔은 뭐라도 될 수 있을 것 같고 가끔은 아무 것도 아님에 마음이 놓인다.
그러니, 남편을 좋아하는 건 나의 바닥을 받아들이는 또 다른 방식이다.
오늘도 나의 바닥까지 묵묵히 들여다봐주는 그 시선에 안심한다. 조금쯤은 덜 좋은 사람이어도 괜찮다는 그 시선 아래서 조금씩, 조금씩, 진짜 좋은 사람이 되어 갈 수 있을 것도 같다. 나는 고작 이런 사람이지만, 어처구니없게 별로인 사람일 수도 있지만, 남편이 이런 나를 여전히 좋아해 줘서 오늘도 나의 바닥을 온전히 마주한다. 별 볼 일 없는 스스로를 별 볼 일 있는 사람인 듯 존중하며 살아간다.
남편이 있어 나라는 존재의 바닥 끝까지 다가설 수 있기에 남편을 사랑하는 건 어쩌면 나를 사랑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오늘도 또 이 지루한 글을 여전히 쓰고 있는 것 아닐까.
그나저나, 내가 정말로 잘 때 방귀를 많이 뀌나. 설마... 그럴 리가. 나 진짜로 방귀 같은 거 안 끼는데?!
(부르릉 뿡뿌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