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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으는 돼지 Nov 16. 2020

코로나 시대에 월급 받지 못하는 승무원

                                                                                                                    

 월급 안 주셔도 됩니다, 승무원으로 비행만 시켜준다면... 제발 저 승무원 한 번만 시켜주세요. 승무원을 준비하던 시절 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질 때마다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에는 고소득 서비스 직으로 해외도 마음대로 다닐 수 있으니 하고 싶었던 직업이 다섯 번, 여덟 번씩 시험에서 떨어지자 오기가 생겼던 것이다. 내가 승무원이란 직업에 자질이 있고 없음을 떠나 왜 승무원이 되고 싶은지도 이젠 모르겠고 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을 뽑길래 나를 번번이 떨어트리는지 그저 분한 심정. 그 유니폼 나도 한번 입어보자, 나도 너네 비행기 한번 타보자, 내가 더 일 잘 할 수 있거든? 보여줄 테니까 월급 안 줘도 되니 승무원으로 비행이나 한번 시켜봐, 그런 심보. 


 한때 가졌던 그 심보 탓일까. 진짜 월급이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비행기에서 유니폼을 입고 승객을 맞이해 도착지까지 모시는 일'. 겉으로 보기에 돌아가는 일은 똑같았다. 월급만 나오지 않을 뿐. 월급 날은 이미 3주가 지났고, 회사에선 언제까지 주겠다는 말도 없다. 기약 없는 기다림에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계좌를 확인했다. 10년 전 마음에 품었던 생각. '월급 안 주셔도 됩니다, 승무원으로 비행만 시켜준다면...?' 그딴 미친 생각을 가슴에 고이 품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니! 스물두 살 어린 나이인 만큼 월급이 얼마나 신성한 것인지 잘 몰랐다고 해도 그 어리석은 생각을 한때라도 강하게 가졌기 때문에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난 건 아닌지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요즘 세상에 월급이 안 나오다니, 미친. 지하철도 안 다니는 새벽 시간에 비행하러 가느라 택시 잘만 잡아탔는데, 미친 미친. 심지어 밀린 월급은 언제 받을 지도 모르는데 내일도 돈도 못 받으면서 비행하러 가야 한다니, 이런 미친 미친 미친! 


 요즘 세상에 월급이 안 나온다는 건 말이 안 되지만 요즘 같은 세상이어서 월급이 안 나올 만도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2020년이고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은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계였다. 국내외 항공사의 연이은 도산이 이어졌고, 국내 신생 항공사들은 운항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부터 무급 휴직에 들어갔다. 월급이 밀리는 항공사는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외국 항공사에 다니던 한국인 승무원들은 하루아침에 정리해고를 당해 한국에 들어왔다. 급기야 얼마 전 코로나 사태가 10개월째 이어지며 강제 휴직 상태였던 승무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나는 그 소식을 다른 항공사의 승무원인 친구에게서 카톡으로 들었다. 그 친구 역시 휴직 7개월 째였다. 


 승무원으로 비행하지 않으면 무슨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 하늘에서 일한 경력은 땅으로 이어지기 어려웠다. 현장직인 우리는 컴퓨터에 미숙하고 사무 능력이 부족했다. 몸이 좋지 않아 그만둔 한 선배는 나이가 서른 중반이 넘어서 그런지 카페 아르바이트도 구하기 어렵다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자의가 아닌 타의로 이직을 고려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 시점에, 승무원 학원이나 서비스 강사 말고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다른 직종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 승무원들 입에 가장 자주 오르내리는 주제일 것이다. 


 나부터도 지금 몸담고 있는 항공사가 나의 마지막 항공사일 거라고 생각한다. 무급 및 강제 휴직에 이어 구조조정까지 이루어지고 있는데 다른 항공사의 승무원 채용이 이루어질 리 없고, 만에 하나 채용이 난대도 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항공사마저도 전 직원 월급이 밀리는 실정이니 언제까지 회사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월급이 나오지 않으니 내가 먼저 떨어져 나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게 비행 인생이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하면 아찔한 심정이다. 


 같은 이유로 분명 힘들어하고 있을 신입 승무원을 만나 짬뽕을 먹었다. 다음 달부터 휴직에 들어갈 친구였다. 그녀는 휴직 기간 동안 공무원 공부를 시작해보겠다고 말했다. 휴직이 길어지고 혹시나 회사가 잘 안되면 그대로 공무원 수험생이 되겠다고. 그녀 나이 25살, 뭐라도 할 나이였다. 그래서 한층 가벼운 톤으로 말했다. 


 “그래~ 그렇게 해서 진짜 공무원 되면 얼마나 좋아!”

 신입은 짬뽕 건더기를 뒤적이느라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아니에요, 사무장님. 저는 진짜 공무원이 되더라도 승무원으로 비행하는 것보다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게 더 좋은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순간 머쓱했다. 하기야 8년을 비행한 나도 아직까지 그렇게 비행이 좋다고 다른 일은 쳐다도 안 보며 살았는데, 이제 막 1년을 겨우 채운 신입에게 비행은 얼마나 아득한 성질의 일일까. 기내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이 특히 더 예뻤던 신입은 마음속으로 5년, 10년은 더 비행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사무장님은 정말 대단하세요”라고 말하면서 내심 본인도 사무장이 되면 책임지고 가꾸어나갈 비행을 고대했을지도 모르는데. 부끄러울 만큼 내 생각이 너무 짧았다. 


 내일은 아침 7시까지 공항 사무실로 출근해야 한다. 오늘도 월급은 여전히 들어오지 않았고 회사에서 아무 말 없는 걸 보면 지난달 밀린 월급에 이어 이번 달 월급 역시 못 받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나뿐만 아니라 모든 직원이 태연한 표정으로 일하기에 비행기는 뜨고 내린다. 11월 추운 날씨 탓에 아침 비행이면 새벽 일찍부터 나와 점검하는 정비사님들의 코끝이 빨갛다. 기장님들은 극단적 선택을 한 승무원의 기사를 보고 걱정하는 마음이 드는지 괜히 간식거리나 커피를 더 사주시며 안부를 묻는다. 카운터와 사무실에서도 별 탈 없이 현장 업무를 지원하기에 승객들은 어김없이 우리 앞으로 온다. 공항은 코로나 이후 반 이상 줄어버린 노선과 편수로 한적하게 보이지만 모두 비행을 위해 여전히 일하고 있다. 


 “월급 받지 않아도 좋으니 비행만 하게 해주세요” 그 바람대로 나는 지금 월급을 받지 않은 채 비행한다. 그래서 식당 음식을 사 먹기보다 집에 있는 재료로 간단한 요리나 해먹지만, 멜론보다는 양도 많고 값싼 귤을 장바구니에 담고, 제일 좋아하는 콜드 오렌지 주스보다는 마트에서 유통기한 임박으로 30% 세일하는 아침에주스를 마시지만 그래도 아직 비행할 수 있음에 안도한다. 당신 앞에 있는 승무원이 월급 못 받는 줄도 모르고 성질내는 승객도 우리가 언제 또 이렇게 승무원과 승객 사이로 만나겠냐며 애틋하게 쳐다보고, 내릴 때 수고하셨습니다 말하는 승객은 8년 비행 인생 수고했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만 같아 또 한 번 애틋하게 바라본다. 핑크빛으로 보랏빛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모습도 더는 무한히 볼 수 없을 것 같아 가만가만 내려다본다. 부드러워 보이는 구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지난 비행 일지들을 들춰본다. 제목을 보면 '노부부 승객의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랑', '입양 가는 아이 손님과 함께한 비행', '비행기에서 만난 북한 승객', '응원의 눈길이 가득했던 비행', '칭찬카드를 받기 위해 발악하는 승무원' 등 하늘 위 기내에서만 일어날 수 있었던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작은 사건 사고도 꼼꼼하게 기록했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기내라는 공간이기에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일이 앞으로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데 코로나가 다 앗아간 기분마저 든다. 


 얼마나 더 오래 지속될지 모르겠지만, 회사도 나도 이 시기를 버텨서 계속 비행 인생을 이어나가길, 낙관해본다. 우리 신입도 아직 비행에서 배워야 할 게 너무 많다. 공무원 공부 때려치우고 승무원 업무교범이나 공부하며 캐리어를 싸고 비행 준비하는 날이 돌아오기를, 플랜비를 생각하는 와중에도 우린 그저 낙관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아니면 그냥 지나가기를,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지나가길 바라는 시간이 쌓이는 요즘이다. 




이 글을 며칠 전에 썼는데, 오늘은 더 놀라운 소식이 발표되었네요.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고, 진에어 에어서울 에어부산은 단계적 통합을 추진한다고 말이에요. 내년에 국내외 항공업계가 어떤 모습으로 거듭날지 기대보다는 긴장이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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