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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으는 돼지 Mar 20. 2020

승무원이 기내에서 만난 역대급 연예인

비행기, 연예인, 승무원!


나는 TV를 잘 보지 않는다. 잘 보지 않는다기 보다 아예 보지 않는다는 표현이 맞겠다. 마지막으로 본 드라마는 2005년도에 방영한 ‘내 이름은 김삼순’이니, 친구들 대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드라마 이야기에서 매번 가차 없이 소외되곤 한다. 예능 프로그램은 어쩌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시간을 때울 때 보거나 흥미를 끄는 게스트가 등장했을 경우에 찾아보고는 하지만 이조차도 드물다. 텔레비전을 통한 뉴스도 잘 보지 않는데, 알아야 할 소식들은 인터넷 기사를 통해서 접한다.


그런 까닭에 나는 소위 대세라는 연예인이나 아이돌을 일절 모른다. 빨주노초파남보로 염색한 아이돌들이 비행기에 대거 탑승하더라도 누군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들 역시 이목구비를 가리는 검은 마스크와 푹 눌러쓴 모자로 [아는 척하지 마, 말 시키지 마] 분위기를 연출했으니 몰라봐도 문제 될 건 없었다. 연예인들은 한일 노선에 가장 많이 탑승했다.

한일 노선에 탑승했었던 아이돌 그룹 중에서도 유난히 우리 승무원들에게 씩씩하게 인사해 줬던 그룹이 기억에 남는다. 그들은 승무원이 제공하는 서비스 물품에 일일이 고맙습니다를 연발하며 머리를 꾸뻑 숙였다. 앳된 얼굴에 각진 태도가 부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마냥 귀여웠다. 착륙 후 내릴 때에도 또다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를 외치며 내리려는 그들에게 물었다.

"죄송하지만,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그룹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비행기에서 내리기 위해 나를 지나쳤던 아이들까지 일제히 뒤를 돌아보더니 외쳤다.

"페이머스(famous)요! 페이머스!"

그중에서 한 명은 팀 이름을 누나 팬 한 명에게라도 더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우렁차고 호기롭게 말했다.

“누나! 저희 페이머스에요, 페이머스! 기억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나는 아직은 전혀 페이머스(famous) 하지 않지만 페이머스라고 외치는 아이돌 팀 이름이 왠지 모르게 더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그게 벌써 2년인가 3년 전 일이다. 예의 발랐던 그들이 그룹 이름 따라 정말 페이머스 해져서 TV를 안 보는 내게도 소식이 들린다면 페이머스란 이름을 인정해 줄 테다.


또 얼마 전에는 일급비밀이라는 아이돌이 탔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후배와 함께 한 비행이었다. 후배 역시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인지라 노란 머리 분홍 머리를 한 아이돌 같은 아이들을 보며, 아이돌이란 짐작만 하고는 서비스를 이어나갔다.


우리는 서비스를 마치고 비행기 맨 뒤쪽 갤리에서 냉수를 들이켰다. 이게 물이 아니라 맥주면 좋겠다는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웃어넘기는데, 아이돌 같은 아이가 갤리로 오더니 땅콩을 더 가져다 달라고 했다. 예쁘장하고 귀여운 외모의 아이돌에게 자기가 한 번이라도 더 다가가 서비스하고 싶은 후배가 말했다.


“선배님, 선배님(선배님을 강조하며)! 좀 쉬고 계세요! 제가 다녀올게요!”

나도 지지 않으려 했다. "아니에요, 제가 다녀올게요."

"에이~ 선배님! 선배님한테 어떻게! 제가 제가~!"


나이 많은 후배는 비겁했다. 이럴 때만큼은 선배 대접을 아주 톡톡히 해준다. 나도 꽃돌이들 얼굴 좀 한 번 더 가까이 보고 싶었지만 물러났다. 후배는 땅콩을 손에 집히는 대로 마구 집더니 트레이에 올려 나갔다.

아이돌은 기내 맨 뒷좌석에 앉아있었다. 덕분에 나는 갤리 앞으로 나와 뒤쪽에 서서 스낵을 아주 그냥 한 움큼 들고 간 후배와 아이돌의 대화를 쉽게 엿들을 수 있었다.


“손님, 스낵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제가 특별히 더 많이 가지고 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더 필요하신 것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누나. 누나도 이거 드세요.”

꽃돌이들 중 한 명이 초코파이 딸기 맛을 후배에게 건넸다. 후배는 무척이나 감동했는지 예전의 나처럼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어머 어머!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혹시...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그룹 이름이 뭐예요?”

초코파이를 준 아이돌이 말했다.

“아, 저희... 일급비밀이에요.”

순간 후배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손바닥으로 입을 살포시 막으며 말했다.

“네? 어머. 일급비밀입니까? 아, 죄송합니다. 괜히 제가 물어서….”


개그인지 진짜 비밀이라고 알아들은 건지 분간이 안 갔다. 설령 개그라 해도 내가 다 망측하고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착한 우리 아이돌 일급비밀은 친절하게 다시 설명했다.


“네? 아뇨, 누나! 저희 그룹 이름이 일급비밀이라고요. 일. 급. 비. 밀.”


그들은 함께 웃었고 후배는 갤리로 돌아오더니 눈을 찡긋거리며 그룹 이름이 일급비밀이라고 말해주었다. 네... 일급비밀.. 괜히 같은 유니폼을 입은 승무원으로서 남우세스러워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이렇게 비행을 이어나가면서, 잘 모르는 아이돌 말고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톱스타들도 꽤 많이 보았다. 미란다 커와 나란히 마주 섰을 때는 세상이 역시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다른 인종을 넘어선 다른 생명체 같았다. 브루노 마스와 정면으로 마주 보았을 때는 한때 샤워하면서 매일같이 듣던 그의 노래가 들렸다.


한류스타도 많이 보았는데, 그중에서도 한예슬은 같은 여자인데도 홀딱 넘어갔다. 주먹만 한 얼굴에 비해 큰 눈망울을 반짝이면서 특유의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할 때에는, 더 보고 싶고 더 듣고 싶어서 말뚝 박은 듯이 그녀 앞에 서있기도 했다. 기내가 추운지 담요 하나를 더 부탁했는데 예, 예, 아무렴요! 하는 태도로 굽신거리며 제공했다. 그렇게 애교 있는 말투와 목소리는 남녀노소 모두를 무력화시키기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갤리에서 같이 비행한 선배랑 우리도 한예슬처럼 말해보자고 따라 하다가 곧바로 포기했다.


그래도 내가 제일로 꼽는 기내에서의 명장면을 연출한 스타는 따로 있다. 아주 뚜렷하게 잘생긴 마스크를 가지고 있는 한류스타 O다. O는 비즈니스 클래스에 탑승했고, 우리 선배님이 그가 앉은 구역의 서비스 담당이었다. 


마침내 그가 한일 노선 비행 비즈니스 클래스에 탑승했을 때, 한국인 일본인 승무원들은 난리가 났다. 괜히 한 번이라도 그의 앞을 지나가며 그를 훔쳐보고 싶어서 다들 어찌나 분주하게 왔다 갔다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역시 우리 선배님, 선배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일관하며 다른 승객들과 탑승 인사를 마치고 드디어 그에게로 천천히 몸을 돌렸다. 탑승 환영 인사를 드리러 그에게로 향하던 차에 O가 선배님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선배님은 화색이 되어 그에게로 단숨에 다가갔다. (참고로 우리 항공사 비즈니스 클래스에서는 승객에게 탑승 환영 인사를 개별적으로 드린다.)


선배님은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저희 항공사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저는 비즈니스 클래스 담당 한국인 승무원으로~" 시작하는 멘트를 야심 차게 날리려고 입을 뗐는데, 그가 먼저 말했다.


“Excuse me. Do you know pen?"


한류스타 O는 선배님을 일본인 승무원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물론 일본 항공사이니까 그럴 수 있다. 우리 항공사는 일본인 승무원이 7000명 이상 되고, 한국인 승무원은 130명 남짓이었다. 그래서 아마 영어로 운을 뗀 것 같은데, 그는 분명 know라고 했다. know! 유 노우 왓 아임 새잉? 아마도 잘못 말했던 거겠지. "Do you have a pen?"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겠지.


선배님은 O가 민망하지 않게 바로 "네, 손님. 제가 일본인처럼 보였나 보아요. 저는 오늘 비행의 한국인 승무원입니다. 도착지까지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펜은 여기 있습니다."라고 슬며시 말하며 펜을 건넸다. 그는 잘못 말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어쨌는지 환하게 웃으며 펜을 받았다. 선배님은 심쿵이란 말을 진짜로 겪어봤냐고, 그 웃음이야말로 심장을 내려앉게 하는 미소였다고 했다. 선배님은 O로부터 돌려받은 펜을 아직도 간직하며 소중한 메모를 적을 때마다 쓰고 있다. 

비행을 마치고 입국장에서 그를 마주쳤을 때에도 그는 친히 먼저 승무원들에게 인사를 해주었고, 일본인 승무원들은 일본어 특유의 억양으로 각꼬이- 야사시이- 를 외치며 좋아했다고 한다. 한류스타는 매너도 한류급이다.  


이렇게 가끔 비행기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스타를 만나는 색다른 경험도 있기에, 오늘도 우리는 힘차게 캐리어를 끌고 나선다.


(+이 글을 쓴 시점은 2017년으로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던 내가 최근 이태원 클라쓰에 빠져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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