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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으는 돼지 Mar 22. 2020

승무원들의 뭔가 다른 결혼식

이 보이는 웃음 천지네요


“자~ 찍습니다~~! 크게 웃으세요!”


사진작가의 이 외침은 결혼식장에서 하객들이 신랑 신부와 함께 사진 찍는 차례가 되면 어김없이 들려온다. 사진작가는 더 밝고 환하게 웃어보라고 계속해서 주문한다. 와중에 사진작가로부터 지적받는 이들도 꼭 몇 있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입을 삐죽거리며 곤혹스러워한다. 또 누군가는 빨리 밥이나 먹으러 가고 싶은데, 오늘의 결혼식 사진작가도 그냥 넘어가지를 않는다고 구시렁댄다.


승무원으로 일하며 항공사 선후배 결혼식에 자주 참석하다 보니 새삼스럽게 보이는 모습이 있다. 식이 끝나고 신랑 신부와 다 같이 사진을 찍거나 신부 대기실에서 신부와 사진을 찍을 때 또는 하다못해 셀카를 찍을 때에도 하나같이 우리 승무원 동료들은 입을 쫙 벌려 이가 보이게 웃고 있었다. 결혼식 단체사진을 들여다보면 신부는 물론 한 무더기의 여자들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지나치게 환히 웃고 있는데, 그건 항상 우리 동료들이었다.


승무원, 하면 대개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로 밝은 미소를 꼽는다. 그런데 사실 승무원 사이에서도 이 '밝은 미소'는 천지차이다. 원래 타고나기를 웃는 게 그냥 예쁜 사람이 있는 반면 승무원 준비생 시절부터 볼펜이나 미소 교정기를 입에 물고 입꼬리가 찢어져라 연습한 사람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비행하면서 승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다가 자연스레 자본주의 미소를 찾은 사람도 있고. 무표정일 때 그다지 인상이 좋지 않은 승무원도 웃는 모습을 보면 웃으니까 참 예쁘네,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다들 웃는 미소가 예쁘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를 드러내고 웃지 못했다. 웃을 때는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웃기에 급급했는데 그것도 아니면 고개를 푹 숙인 다음 웃곤 했다. 웃으면 괜히 얼굴이 일그러지는 느낌이 들어 자신이 없었다. 가뜩이나 쌍꺼풀도 없는 밋밋한 눈이 웃기라도 하면 더 작아지는 것 같아 남들에게 못생겨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마음껏 웃지를 않으니 눈웃음이 없는 건 물론이었다.


그런 내가 승무원이 되어 밝은 미소를 띠고 매일같이 비행을 한다. 기내에서 만나는 이삼백 명 승객들에게 먼저 웃어 보이면서 말이다. 웃는 모습이 타고나게 예쁘지 않았던 나는 승무원 준비생 시절부터 웃는 연습을 겁나게 많이 했다. 나는 지금도 얼굴 근육을 자극하는 얼굴 스트레칭과 웃는 연습을 매일 하고, 생활 속에서 수시로! 마구!! 그냥 막!!! 웃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손 씻으며 거울을 볼 때 이라는 이는 다 봐버리겠다는 태세로 입꼬리를 최대한 양옆으로 끌어당기면서 웃는다. 이게 집에서는 상관없는데 시도 때도 없이 하다 보니 공중 화장실에서 이러고 있다가 누가 들어오기라도 하면 참 그렇게 멋쩍을 수가 없다. 갑자기 정색하기에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계속 그렇게 입을 한껏 찢은 상태로 웃고 있자니 미친년도 아니고. 이래저래 보는 사람도 보여주는 사람도 민망한 장면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그러고 있다가 누가 들어오면 이에 뭐가 꼈는지 신중하게 확인하는 태세로 돌입한다. 그러다 보면 이에 진짜로 뭐가 껴있을 때도 있더라. 이야말로 일거양득이다.


좀 덜 웃은 것 같으면 전화라도 하면서 웃는다. 여기서 포인트는 걸지 않는 전화다. 핸드폰을 들고 귀에 가져다 대긴 했지만 누구에게도 전화를 걸지 않는다. 하지만 남이 봤을 때는 전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 그럼 이제 웃으면 된다. 길 걸으면서 혼자 웃으면 실성한 사람 같겠지만, 전화를 하면서 웃는 건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 안 할 테니까. 페이크 전화 웃음은 내가 종종 유용하게 써먹는 방법이다.


서비스직은 고객 응대 차원에서라도 웃을 때가 있지만 사무직은 일하면서 제대로 한 번 웃지도 못하고 하루를 마칠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얼굴 근육이 굳어버리고 웃는 모습은 경직된다. 그런 점에서 내 직업은 웃어 보이는 게 일이기도 하니, 일하면서 웃는 연습까지 하는 셈이다.



서민정은 데뷔 전에 하루 세 시간씩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만 했다고 한다. 여배우로서 빼어난 미인은 아닌 데다 특출한 끼를 갖추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했던 서민정은 지금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 잡은 눈웃음을 만들기 위해 매일 자신을 향해 웃어 보였다. 웃는 연습을 그렇게까지 해야 되냐는 사람도 더러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입꼬리 올림 성형이나 리프팅 같은 그 어떤 시술보다 더 확실하게 예뻐지고 멋있어질 수 있는 방법이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이라고 믿는다. 얼굴은 이목구비로 기억에 남지 않고 표정과 느낌으로 보다 선명히 기억되는 법이다.  


그래서 명배우들은 연기할 때 눈빛을 다듬기 위해 매일 거울을 보며 자신의 눈빛을 다스린다고 한다. 스크린 속 배우들의 눈빛 연기는 명품 연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얼굴 표정과 표현에서 가장 섬세하다고 할 수 있는 눈동자도 연습을 통해서 다듬고 다스리는데, 하물며 제일 쉽게 드러나 보이는 웃는 얼굴은 연습으로 다질 수 없겠는가. 경락마사지하고 성형외과 가서 입꼬리 올림 성형이니 보조개 성형이니 뭐니 하기 전에, 먼저 웃어봤으면 좋겠다.


당신은 웃는 게 제일 예뻐요. 내가 평생 웃게 해줄게요.


나는 언젠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으로부터 이 말을 듣게 될 날을 기다리며, 오늘 하루 작은 일에도 웃어 보인다. 그리고 이 구절의 주인공은 역시, 당신이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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