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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른이 되어 만났어도 친구였을까?

<해피엔드>

by 김송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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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른이 되어 만났어도 친구였을까?

<해피엔드>


내 인생에 평생 남을 친구가 몇이나 될까. 당당하게 얘가 내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지? 이상하게도 중학생 때부터 손가락으로 친구 숫자를 세곤 했었다. 한 반에 서른 명쯤 앉아서 함께 수업을 듣고 부대끼며 시간을 보내도 반 동급생을 모두 친구라고 할 순 없다. 마음속에서 진짜 내 친구를 세다 보면 손가락 10개가 다 채워지지 않았다. 시끌벅적하게 수다를 떨고, 쉬는 시간 열심히 매점까지 달음박질을 뛰는 사이여도 속으로 ‘잠깐, 얘도 내 평생의 친구인가?’라고 가늠해 보면 씁쓸하게도 졸업하면 다신 연락을 안 할 것 같았다. 그때로부터 무려 20년 후로 강제 빨리감기 되어 버린 지금, 당시의 나에게 결과를 스포해준다면 당시의 절친 중엔 지금 연락처도 모르는 사람도 있고 전혀 친하지 않았는데 여태 만나는 관계도 있다. 그렇게 소중했던 친구인데 우리는 왜 단절됐을까. 나는 그 애의 인생에서 삭제됐고, 그 애 역시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그러니까 참 무의미한 거다. 현재에 기반해 미래의 관계를 상상해 보는 일은.


유치원 때부터 함께 자란 유타(구리하라 하야토)와 코우(히다카 유키토)는 음악연구동아리에서 만난 톰(아라지), 아타(하야시 유타), 밍(시나 펭)과 오늘도 학교 밖을 배회한다. 테크노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은 좋아하는 디제이가 공연하는 클럽에 놀러 가고, 갑자기 클럽을 급습한 경찰에게 신원 조회를 당한다. 기기에 얼굴만 촬영해도 신원 정보가 나오는 근미래에, 고등학생이 클럽에 갔다는 사실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코우가 재일한국인이라는 사실. 유타에게는 가볍게 훈계하고 집으로 돌려 보내면서 코우에게는 영주권 문서를 소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서 동행을 지시한다. 친구들이 전기 차단기를 조작해 정전을 시킨 사이 재빠르게 도망친 이들은 밤의 거리를 달리기 시작한다. 별 것도 아닌 걸로 장난 치고 웃고 떠들며 밤거리를 뛰는 아이들. 대형 고가도로와 높은 빌딩 숲을 뒤로 하고 밤을 걷거나 뛰는 소년들의 풀숏이 유독 많은 이 영화는, 테크노 음악이 쿵쾅대는 클럽을 빠져나와 어두운 거리를 뛰어 학교에 몰래 잠입하는 이 시퀀스에서 정체를 명확히 한다. 우리는 앞으로 이 아이들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감시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것만 골라하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10대의 아슬아슬한 청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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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밤의 학교에 침입한 다섯 사람은 익숙하게 동아리방으로 흘러 들어가고 클럽 DJ가 넘겨줬던 EDM을 틀어 음악에 몸을 맡기며 신나게 친구들끼리 밤을 보낸다. 경비의 눈을 피해 학교 동아리방에서 음악만 즐기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아무 일 없었겠지만 이 악동들의 눈에 교장이 그토록 아끼는 고급 세단이 들어온다. 입으로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학교를 위해'라면서 학교 돈으로 도지사나 교육청에 로비하고 보란듯이 컬러풀한 고급 세단을 몰고 다니는 교장은 아이들에게 "저런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 싶은 존재. 코우와 유타는 교장의 차를 힘을 모아 직각으로 세워 두는 기행을 저지르고 유유히 학교를 빠져 나간다. 다음 날 아침, 새로 뽑은 고급 차가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세워져 있는 것을 발견한 교장은 대노하며 '테러'를 선언하며 학교 전체에 CCTV와 얼굴인식 AI 감시체계를 설치 한다. 답답한 학교지만 나름 평화롭게 지내던 아이들은 이제 학교 곳곳에 설치된 CCTV로 인해 통제 받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당하며 규칙에 위반될 때마다 전광판을 통해 벌점 3점, 벌점 10점 달성, 부모님 호출 등이 전교생에게 노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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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소라 감독의 <해피엔드>는 가까운 미래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가 시작됨과 동시에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지만 실은 <해피엔드>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건들은 현재진행형으로 미국, 한국, 일본 등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 인종, 성별, 지역성 등을 이유로 특정인을 배제하고 혐오하도록 유도하는 것. 내가 속한 커뮤니티 밖의 사람들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들이 규범을 위반하고 내 것을 빼앗아 갈 것이며 우리를 위험하게 만들 거라는 과도한 상상력을 펼치는 것이 가속화되는 극우의 본질이다. 학교의 이러한 독재적인 분위기는 영화 속 일본 사회와도 긴밀히 연결된다.


거대한 지진을 겪은 후 현 총리는 '국민 안전을 위한다'는 이유로 독재적인 정치를 감행하고 일본 밖에서 들어온 이민자들을 불순세력으로 점찍고 언론을 통해 그들을 배타시하는 제도를 공론화 한다. 거리 곳곳에서는 총리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지만 언론은 이를 폭력시위로 보도해 시민들은 진실을 알 기 어렵다.


유타와 코우의 작은 학교 사회가 영화의 주무대이기에 <해피엔드>는 학교 밖 분위기나 시위 현장은 적극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코우가 카페에서 친구를 만날 때 밖에서 시위하는 소음과 지나치는 몇몇 시위자들의 분위기, 유타가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간 곳에 시위자들이 경찰에 끌려가는 장면 정도로 영화 속 사회가 혼란하다는 것을 언뜻 비출 뿐이다. <해피엔드>가 주목하는 것은 학교 안 감시 체계 속에서 점차 엇갈리는 유타와 코우의 관계다. 재일한국인으로서 학교에서도 차별의 대상이 되는 코우는 점차 독재정권 같은 교장에게 반감을 키우기 시작하고, 이에 독재 체제에 맞서는 후미(이노리 키라라)와 친해지며 영향을 받는다. 반면 유타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음악만 듣고 장난치며 체제를 방관할 뿐이다.


“우린 많이 다르잖아”라고 코우가 얘기할 때마다 “아냐, 우린 똑같”다고 자부하던 유타는 멀어지는 코우의 등을 조용히 응시할 뿐이다. 그런 유타가 답답하기는 코우도 마찬가지. 가장 친한 유타가 동조해주길 바래 “세상을 바꿔야 해, 이러다 다 죽어”라고 얘기를 꺼낼 때마다 유타는 “그렇게 한다고 뭐가 바껴?어차피 죽을 거 즐기다 죽자”며 허허실실한다. <해피엔드>가 집중하는 것은 부패한 권력층과 다수를 위한다는 허울로 통제를 강화하는 파시즘이 아니다. 세상이 흔들릴 때, 밀착된 줄 알았던 관계가 어떻게 분열되고 유실되는 지에 대한 관찰이다. 유타는 친구들과 음악에 몸을 맡기는 이 시간이 지속되길 바라지만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톰은 졸업 후 미국으로 떠난다고 예고하고, 코우는 시위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점차 모임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 변화들이 유타는 달갑지 않지만 주변에선 유타를 철부지로 바라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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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드>에는 두 번의 고의적 멈춤이 존재한다. 오프닝 신 유타와 코우가 여전히 절친이었던 때, 그리고 엔딩 신에서 영화는 “엥? 갑자기 끝났나?” 싶은 장면에서 갑자기 일시정지를 누른다. 지진 장면은 무음 처리되며 땅의 흔들림을 관객은 시각으로만 접해야 한다. 지진을 피해 책상 밑으로 들어간 아이들의 표정조차 보이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지진은 매우 중요한 소재로 여러 번 등장하지만 모든 것을 뒤엎는다거나 굉음이 들리고 크게 무너지는 장면은 관객이 볼 수 없다. 그 미세한 진동을 그저 눈으로만 접하며 우리는 더 큰 불안을 느낀다. 고3, 열아홉의 아이들이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듯 지진은 소리 없이 존재함으로써 더 큰 불안을 야기한다.


지진은 이 영화 어딘가에 계속 잠복하고 있다. 또한, 중요한 대화는 아이들의 진짜 목소리로 들을 수 없다. 멀리서 대화하는 친구들을 다른 친구가 장난스레 더빙을 하며 전한다. 이건 진짜 그들의 목소리가 아니다. 속마음은 전하지 못하고 미숙하게 장난만 치듯 우리는 진짜 마음을 넘겨짚어야만 한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지진, 온몸을 파고드는 요동은 청소년 시기의 불안과 맞물려 불가항력적으로 닥쳐오는 미래의 변화로 감응된다. 지진도, 시간의 흐름도, 그로 인해 균열에 생긴 우정에도 저항하고 싶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저 바라만 보고 책상 밑으로 숨어 머리를 감싸 안는 것 밖에.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들과 멀어지는 경험, 그것도 정치적인 이유나 사회에 대한 시선이 달라 실망하거나 '이제 서로 다른 길을 가는 구나' 씁쓸함을 느끼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언젠가 찾아 온다. 네오 소라 감독의 첫 장편영화인 <해피엔드>에는 감독의 자전적인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데, 감독 역시 유타-코우-토무-밍-아타처럼 방과 후 누군가의 집에서 밤새도록 어울려 놀던 유년 시절의 친구가 있었다고 한다. 평생 함께 할 소중한 친구, 나를 지지해주는 지반이라고 생각했던 친구들과 일본 사회에 대한 견해 차이를 느끼고 균열을 느낀 후 멀어지는 경험을 했는데, 이는 감독의 세계에도 크게 영향을 끼쳤다. 사회에 대한 시선이 다르다는 것이 소중한 관계를 멀어지게 한다는 사실. 실은 우정을 잃는 것은 누구에게나 뼈아픈 경험이다. 한 시절을 함께 한, 나의 외로움과 우울을 모두 버텨주던 한 시절의 친구는 시간이 흘러 내 삶에서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 영원할 줄 알았던 우리가 그저 시절인연이었다는 듯이. 지진이 나 움푹 파인 그 속으로 ‘우리’가 있었던 미래는 자취를 감춘다.


영화 속 총리가 대국민긴급사태법령을 선포하는 이유는 대외적으로는 ‘잦은 지진으로부터의 국민 보호’이지만, 실은 쉬운 통치를 위해서다. 교장이 ‘학생 안전’을 위해서 설치한 감시 시스템 역시 학생을 위한 것이 아니다. 후미는 감시 시스템에 반발하며 순응하는 이들을 한심해 한다. “우리 세대는 답이 없어. 세상을 바꿀 생각을 안 하잖아.” 누구보다 사회와 세대에 희망을 품고 바뀌길 바라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어차피 안 바뀌어, 우리 세대는 답이 없고 끝났다, 라고 생각하는 인물들은 후미처럼 분노하지 않는다. 이들은 “규칙이 강화돼서 오히려 좋다”며 CCTV에 찬성하기까지 한다.


교장실 농성에 들어간 후미 일당에게 교장은 설득조로 말한다. “너희들은 어차피 곧 졸업이잖아. 체제를 바꾼다고 해도 너희에겐 이로울 게 하나도 없어.” 그렇다. 밤새 교장실을 점거하고 퇴학을 감내해도 이로울 게 없다. 고3이기 때문에 얌전히 있다가 몇 달 후 지긋지긋한 학교를 졸업하는 게 안전하다. 하지만 후미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이익을 보려고 싸우는 게 아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나서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한 상태가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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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학교의 소요를 불러 온 ‘교장 자동차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 유타와 코우는 거대한 물결 앞에서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다. ’우린 똑같다‘고 유타는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실은 같지 않다는 것을 코우는 알고 있다. 성격, 말하는 방식, 태도. 무엇보다 환경이 다르다. 검문에 걸렸을 때 유타는 ‘일본 고등학생’으로 무사히 통과되지만 코우는 ‘비국민’으로 분류되어 영주권문서를 제시해야만 한다. 경찰을 만날 때마다 코우는 절감한다. 나는 다르다. 엄마의 바람처럼 ‘귀화할 때까지 쥐죽은 듯 지낼 것’인지 목소리를 높여 세상과 싸울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소년들은 앞으로도 친구로 지낼 수 있을까. 엔딩 신에서 육교 위 서로 다른 길로 향하는 유타와 코우를 보면 모두 같은 의문을 품을 것이다. 졸업 후, 이들이 따로 연락을 하고 만나서 친구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생일이 지나 이제 어른이 된 이들이 계속 10대 때처럼 지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고 생각이 행동이 변하면 더는 친구로 지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 시절의 인연이었던 것이다. 딱 그 시기 우연처럼 만나 행운으로 함께 했던 우정. 그래도 괜찮다. 지금 멀어졌어도, 더는 볼 수 없고 다른 길을 가더라도. 한 명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믿고, 한 명은 그래봤자 안 바뀌니까 그냥 즐기며 사는 삶을 선택했더라도. 우리가 함께 했던 그 시간은 분명 이 세계 어딘가에 존재 했으니까. 그때 함께 밤 거리를 뛰며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던 그 시간, 함께 듣던 쿵쿵 대는 음악과 함께 울렸던 심장 박동 소리를 우리는 기억하니까.


*고교독서평설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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