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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rimi Nov 17. 2021

평행선


-  진짜로  그만두고 싶어. 정신적으로 너무 고통스럽고, 물론 그래도  견디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많다는 , 다들 그렇게들 살아간다는  너무  알아. 그런데 나는 그게  안돼. 내가 나약하다는  인정하는데, 그래도 공황이 올까봐 두려운 것도, 수시로 정신과 검색해보면서 우울해하는 것도,  싫어. 그냥, 사람이, 인생이, 결국에는 그냥 죽음을 향해 가는 삶일지라도, 그래도   번을 사는 인생이잖아. 언제 떠날지 모르는  인생이고, 어쩌면 내일 당장 아니면 모레 아니면 일주일  죽을지도 모르는  인생인데. 너무 불행해. 이렇게 불행하게 살고 싶지 않아.


남편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나는 오래 기다렸다.


- 왜 당신은 아무 말도 안해? 항상 그렇더라. 왜 내가 내 삶의 고민들을 털어놓으면 당신은 아무런 말이 없어? 그만두지 말라는 말을 못하겠어서 그런 거야? 해줘도 돼. 나는 당신의 생각이 궁금해. 아니면, 내가 또 그냥 잠시 징징거리는 거라고 생각해서 그래? 잠깐 지나가는 감기처럼 이런 슬럼프도 그냥 다 지나갈 거라고 생각해? 왜 아무리 기다려도 말이 없어?


이 때에도 남편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며칠을 기다렸다.


- 도대체 왜 말이 없는 거야. 나는 당신 생각을 알고 싶어. 왜 나는 내 인생의 중대한 고민을 배우자와 나누지 못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왜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생각들, 결정들을 배우자가 아니라 친구, 아님 인터넷에다가 풀고 있어야 해? 당신은 내 인생에 관심이 없어? 아무래도 상관없어? 도대체 왜 말이 없는 거야?


그제야 남편이 말했다.


- 그만 둔다며. 그만 둔다 하니까 그만 두는 구나, 생각하고 있었지.


아, 순간 말문이 막힌다는 게 이런 거구나. 정말 말이 안통한다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벽 보고 말을 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 뭐? 뭐라고? 내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게... 그만두겠다고 통보하는 거였다고? 하... 아니 그러면 왜 또 아무 말도 안해? 내가 그만두면 당장 수입이 줄어들 텐데 그럼 우리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뭐 그런 대화라도 해야지. 아니 당신은 도대체...


- 얼마가 필요한지 나한테 말을 해. 그럼 내가 어떻게든 돈을 더 벌어서 필요하다는 만큼 다 맞춰서 줄테니까.


그동안 우리 부부는 각자의 월급 통장을 각자 관리해왔다. 서로의 경제 관념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고, 결혼생활 8년이 넘어가면서 한 번도 그 부분에서 잡음이 나오거나 서로 불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맞벌이에서 외벌이로 바뀌게 된다면 문제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었다.


- 아니 나는. 하... 아니 있잖아...


나는 도무지 대화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도 안왔다. 다른 별에서 왔다는 게 이런 거구나. 다른 언어를 쓴다는 게 이런 거구나...


- 나는 있잖아, 늘 말해왔지만, 한 번 사는 인생이야.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지 모르는 인생이지만 결국 누구나 한 번 사는 인생인데,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 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는 거야. 남들이 좇는 그런 걸 좇으면서 아등바등하며 살고 싶지 않다는 얘기야. 다른 사람들처럼 비싼 브랜드 아파트? 좋은 차? 애들 사교육? 그런 것들에 대해서 우린 아무 생각없이 살아왔잖아. 빚내서 아파트 샀고, 애들 사교육 남들 시키는 만큼 다 시키고 있고. 그렇게 그냥 살고 있잖아. 그런데 내 말은 말이야.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는 건, 그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는 거야. 어떻게 살아가는 게 행복한 삶인지 다시 고민해보고 싶다는 얘기야. 그런데 왜. 왜 당신하고는 그런 고민들을 나눌 수가 없지? 당신은 돈 버는 기계고 나한테 월급만 갖다 주면 끝이야? 그걸로 다 괜찮은 인생이야?


- 아니 그러니까 그냥 그만두라고. 나도 이건 진짜야. 그렇게 생각했어. 항상 일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힘들어하는 거 나도 못볼 짓이었다고. 그러니까 그냥 그만두라고. 나도 진심이라고.


- 하... 나도 모르겠다. 내가 그토록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꺼내왔고, 괴롭다고 호소할 때 마다 당신은 늘 아무 말이 없었어. 그런데 그렇게 툭 던지는 말이, 나한테는...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하네. 나는 내가 일을 그만두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꺼낼 때마다, 당신이 만약에, 힘들지, 힘든 거 알아, 근데 지금 우리 애들 어리고 여러가지 상황 생각해보면, 조금만 더 다녀주면 안될까? 조금만 더 버텨줘, 라고 말을 했으면. 그 말에 의지를 하고 기대서, 그래, 다들 힘들지만 버티면서 사는 거니까, 라고 생각하면서 당신에게 위로받고 또 이 고비를 넘겼을 거야. 그런데... 당신은 늘 말이 없었지. 인생은 정말, 혼자 살아가는 걸까. 외로우니까 사람이라더니, 결국 그럴 수 밖에 없는 걸까...


대화도 아닌 대화. 나 혼자 내 감정을 쏟아냈을 뿐인 외로운 언어. 그리고 우리 부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 앞에 큰 도서관이 개관을 해서 딸아이가 친구와 약속을 잡아왔다. 주말에 도서관에 놀러 가겠다고 했다. 그 친구 엄마와 만나서 다함께 도서관에 다녀왔다. 동네 엄마들과의 왕래를 즐기지 않는 내 기준에서 꽤 가깝게 지내는 엄마였다. 그렇다고 속마음을 다 털어놓을 만큼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는데도, 그 날따라 마음이 너무 힘들었던 모양인지. 나란히 앉아 책을 읽는 아이들과 멀찍이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두런두런 나누다가 나도 모르게 툭 하고 꺼내놓아 버렸다.


- 저희 남편 엄청 가정적인 거 아시죠? 아이들한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아빠인 거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런데요, 배우자로서는 잘 모르겠어요. 참 대화가 안돼요. 벽을 보고 말 한다는 게 어떤 건지 이제 정말 알겠어요.


- 무슨 얘기였는데?


비슷한 직종에서 맞벌이를 하고 있는 엄마인데다가,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엄마라 편해서 그랬는지, 다른 사람에게라면 쉽게 꺼내지 못했을 이야기를 술술 꺼냈다. 내 말을 끝까지 전부 다 듣고 난 후에 그녀가 말했다.


"자기는 위로가 필요한 거구나."


그랬나? 싶으면서도 왈칵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내 생각에 자기는 지금 일을 그만둘 때가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알아. 자기 되게 이성적인 사람이잖아. 항상 이성적으로 판단하니까, 마음은 너무 힘들고 괴로운데도, 머리로는 이것 저것 다 생각을 하니까 그만두겠다고 결정을 못하는 거야. 아직 갚을 빚도 더 남았고, 애들은 한창 어리고, 부모님은 늙어가시고,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고. 근데 자기는 그 일 때문에 행복하지 못한 거잖아. 그치... 너무 힘든 거야. 근데 남편이 그만두라고 먼저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는 건, 남편도 자기랑 같은 문제들을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어서 그렇겠지. 그렇다고 그만두지 말고 조금만 더 다니라고 말하기도 남편 입장에서는 미안한 거야. 자존심 문제도 있겠지. 그건 그냥 남편 성격이야. 어쩔 수가 없어."


어쩔 수가 없다, 라. 그녀와의 길지 않은 대화에서 위로를 받았으나, 그렇다고 해서 인생이 외롭지 않아진 것도 아니었다.


아직도 남편을 보면 답답하고 서운하고 화가 난다. 배우자는 인생의 동반자라는데, 왜 저 사람과는 인생을 함께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안드는 걸까, 싶은 외로운 마음을 지우지 못한다.


아니면 정말로 인생은, 사람은, 원래 외로운 게 맞는 건데 내 마음이 아직 너무 어려서 그걸 못깨닫고 있는 걸까. 내가 단단하지 못해서 그런 걸까.


두 손을 맞잡고 즐겁게 향긋한 꽃밭을 거니는 것이 연애였다면. 결혼이란. 잡고 있던 두 손을 놓고. 각자의 눈앞에 놓인 가시덤불을 치우느라 정신이 없는 일. 가시에 찔리고 긁혀 손가락에 생채기가 나도 어쩔 수가 없는 일. 지금 내가 힘들고 아프다고 말해서는 안되는 일. 저 사람도 그럴 테니까.


한 동안 내내 그런 생각들만 하다가... 결국에는 복직을 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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