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룬 파로키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미디어와 산업, 기술이 사람을 향해 겨누는 공격성을 새로이 구성하다

by 단단단아


한 바퀴 돌아온 겨울을 지나며, 2019년 2월 만난 하룬 파로키의 예술을 기록해본다.


첫출근을 앞두고 나에게 남은 '온종일의 자유'가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지 1시간도 되지 않아 집을 나섰다.


재작년 교양수업을 들으면서 알게 된 독어독문학과 교수님으로부터 한 달간 독일어 특강을 배운 적이 있다.

수업 시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스쳐 지나가듯 들었던 이름이 '하룬 파로키'였다. 교수님은 예술과 독일철학, 두 키워드에 대한 이해과 애정이 깊으신 분이었기 때문에 어떤 대화였는지 정확히는 몰라도 작가의 관점에 대한 설명도 간단히 덧붙여 주셨던 것 같다. 하룬 파로키와의 첫만남은 그렇게 스쳐 지나갔다.


AP 사진전과 본 전시를 두고 어디를 갈까, 고민하던 중 경복궁 길을 걷고 싶어 국립현대미술관으로 향했다.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어마무시한 부제를 달고 있는 본 전시는 새로운 형태의 이미지를 통해 구현된 매체 실험과도 같았다. 영상 전시는 스톡홀름 Fotografiska 에서 사진전의 일부로 보았던 것을 제외하고는 처음이었다. 빈백에 누워 관람을 하는 것도, 무성의 영상들이 한 공간 안에 여러 개 자리하고 있는 것도 낯설었지만 이 날 본 전시들 중 하룬 파로키 전시에 대한 기억의 잔재가 가장 깊다. 그 순간의 느낌들을 간직하고 싶어, 전시를 보며 느꼈던 생각들을 남겨본다.




4부로 구성된 <평행>은 이미지가 차곡차곡 쌓이고 결합되어 만들어진 컴퓨터 애니메이션 장르에 대한 이야기이다. 강물의 표면은 실제보다 실제같이 재현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봄바람의 살랑거림, 강가에 자리잡은 식물들의 풀내음, 고개를 들어 마주하는 햇빛의 온도는 존재하지 않는 그 모순에 대해 보여준다.


- 평행1: 영상의 시작은 네모난 모양의 픽셀 덩어리였다. 그 다음은 거칠지만 자세히 보지만 않으면 어색한지 모를 더 작은 픽셀의 흘러가는 물이었고, 이제는 구름이다. 바람의 방향, 햇빛의 투과가 담겨진 구름이다.


- 평행3: 물은 1차원 표면이다. 그 아래에는 산소도, 수풀의 움직임도, 작은 생명의 탄생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시선을 가볍게 벽 너머의 곳으로 옮겨지고, 견고하지 않은 벽은 강과 등을 맞대고 있다. 그 어느 것 하나 독자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모습은 꼭 오늘날의 우리를 떠올리게 한다.




<노동의 싱글 숏> 프로젝트는 '노동'이라는 주제 하에 세계 곳곳의 새롭고 오래된, 낯설고 익숙한 모습들을 담고 있다. 어떠한 해설도 없었지만 영상의 자연적인 소음과 이미지만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나타낸다는 것이 놀라웠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영상은 멕시코의 한 도시에서 프리다 칼로 분장을 한 거리예술가의 모습이다. 거리예술가라는 직업 자체가 대중으로부터 타자화됨으로써 존재하는 직업임에도, 본 영상에서 그녀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 프리다 칼로를 재현한 '주체'였다. 타자화시켜 상대를 표현하는 것이 아닌, 주체의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는 가능한 것일까?




2채널 작품 <Interface> 역시 인상적이었다. 그 동안 우리는 이미 편집되어 완성된 영상만을 접해왔다. 하룬 파로키는 이를 한 번 더 뒤집어 두 대의 모니터에 이미지를 비교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비디오 편집을 구현했다. 하룬 파로키는 본 작품에 대하여 '하나의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와 어떤 공통점을 가질 수 있는가?' 질문한다.

이미지로 이미지를 설명한다는 그 창조적인 파괴가 놀라웠다. 실험실 속 쥐와 작업실의 자신을 동일시하는 장면은 눈을 감고 재생버튼을 누르면 이 앞에 그려질 듯하다.




오늘날 미디어와 산업, 기술이 사람을 향해 겨누는 공격성을 이미지의 새로운 구성을 통해 표현한 전시. 이 한 줄로 본 전시를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집에서 뒹굴거리지 않고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기기를 잘했다. 하룬 파로키와 그의 예술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높이고, 다른 기회를 통해 한 번 더 작품을 감상하고 싶다.



- 다음 글에서는 'MMCA 현대차 시리즈 2018: 최정화 - 꽃, 숲'에 대해 기록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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